[파운드리 리턴즈]③ 美 테일러에 달린 반전…삼성 2나노의 시간 온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3나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에서 기술 선도와 양산 안정성 사이의 간극을 확인했지만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삼성에 다시 기회가 생기고 있다는 평가다. TSMC 독주 체제에 대한 고객사의 공급망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함께 보유한 삼성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TSMC 쏠림에 열린 기회…삼성, 4나노부터 반격

1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선단 공정 전략은 속도전에서 안정화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1.4나노 공정의 2027년 양산 목표를 내걸었지만 최근에는 양산 시점을 2029년으로 늦췄다. 3나노 GAA 경험 이후 세계 최초보다 안정적으로 고객 물량을 소화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삼성이 전략의 무게중심을 바꾼 배경에는 시장 변화도 있다. AI 가속기와 서버용 반도체는 고성능 로직 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로직 칩, 인터포저, 첨단 패키징이 함께 최적화돼야 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최선단 파운드리 생산능력뿐 아니라 메모리와 패키징까지 묶어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가 중요해졌다.

TSMC에 치우친 파운드리 공급망도 삼성 파운드리 재평가의 배경이 됐다.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와 빅테크 고객들은 그동안 주요 고성능 반도체 생산을 TSMC에 맡겨 왔다. 하지만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특정 파운드리에 수주가 몰리는 구조는 납기와 가격, 생산능력 확보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했다. 삼성은 TSMC와 격차가 크지만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동시에 갖춘 대안이라는 점에서 다시 선택지에 오르고 있다.

삼성의 파운드리 회복 전략은 4나노와 2나노를 양축으로 짜이고 있다. 4나노는 당장 라인 가동률과 손익을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 공정이고, 2나노는 3나노 GAA에서 쌓은 공정 경험을 상업 성과로 바꿔야 하는 차세대 승부처다.

4나노가 회복축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AI 추론 칩 수요 확대가 있다. 삼성전자는 HBM4 베이스 다이에 4나노 로직 공정을 적용한 데 이어 외부 고객사 AI 칩에서도 4나노 양산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그록(Groq) 기반 AI 추론 칩은 삼성 4나노 공정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이퍼엑셀의 거대언어모델(LLM) 추론용 LPU(언어처리장치) '베르다'도 삼성 4나노 공정으로 양산 준비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삼성 4나노 라인도 사실상 풀가동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4나노 수요 확대는 삼성 파운드리 손익 회복과도 직결된다. 파운드리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선행되는 사업인 만큼 라인 가동률이 낮으면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AI 추론 칩과 HBM4 베이스 다이 물량이 늘면 같은 설비에서 더 많은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어 원가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반복 생산 과정에서 공정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삼성 입장에서는 4나노 물량 확대가 단순 수주 증가를 넘어 수익성과 수율 안정화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회복 기반이 되는 셈이다.

AI5 생산 앞둔 테일러…2나노 신뢰 회복 분수령

4나노가 단기 회복축이라면 2나노는 삼성 파운드리가 선단공정 경쟁력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승부처다. 삼성전자는 3나노에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구조를 세계 최초로 양산에 적용했지만 대형 고객 물량 확보와 상업 확산에는 한계를 보였다. 2나노에서는 3나노에서 쌓은 공정 경험을 수율 안정화와 고객 양산 레퍼런스로 연결해야 한다. 세계 최초 타이틀보다 실제 고객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테슬라 AI5 테이프아웃은 삼성 2나노 공정이 실제 고객 칩 생산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테이프아웃은 반도체 설계를 마친 뒤 제조용 데이터를 파운드리에 넘겨 시제품 제작과 양산 준비에 들어가는 단계다. 최근 테슬라 AI5 칩이 테이프아웃을 마치고 삼성 2나노 공정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나노 고객 양산 레퍼런스 확보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테슬라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고객과 제품의 성격 때문이다. AI5는 테슬라의 자율주행과 로봇, AI 연산 전략과 맞닿아 있는 핵심 반도체다. 테슬라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고객과 제품의 성격 때문이다. AI5는 테슬라의 자율주행과 로봇, AI 연산 전략과 맞닿아 있는 핵심 반도체다. 차량 내 자율주행 시스템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등에 탑재돼 실시간 AI 추론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능과 전력 효율은 물론 납기 안정성과 장기 공급 능력이 모두 요구되는 제품인 만큼 삼성전자가 AI5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면 2나노 공정의 수율과 생산 실행력을 시장에 보여줄 수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 사진 제공=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은 삼성 2나노 경쟁력을 가늠할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을 북미 선단 공정 생산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아직 본격 양산 단계는 아니지만 핵심 전·후공정 장비 반입과 국내 엔지니어 투입이 진행되면서 초기 가동 준비에 속도가 붙고 있다. 테슬라 AI5가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 단계에 들어가면 삼성은 2나노 공정의 수율과 납기, 고객 대응 능력을 동시에 검증받게 된다. 테일러 공장의 가동률 회복은 단순한 공장 정상화를 넘어 삼성 파운드리가 북미 빅테크 고객을 다시 끌어올 수 있는지 가를 전망이다.

고객 확보를 위한 경영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5월 대만 미디어텍 본사를 비공개 방문해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과 함께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미디어텍은 TSMC에 생산을 맡겨 온 대형 팹리스이고 선밸리는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이 모이는 비공개 네트워크 무대다. 업계에서는 삼성 파운드리가 기술 로드맵만으로 고객을 설득하기 어려운 만큼 총수 차원의 접점을 넓혀 신뢰 회복과 장기 수주 기반을 동시에 다지려는 행보로 보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TSMC를 따라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두 번째 선택지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라며 “4나노에서는 고객 물량을 늘려 수율과 가동률을 회복하고, 2나노에서는 테슬라 프로젝트를 통해 선단공정 양산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축이 함께 작동해야 삼성 파운드리의 반격이 일시적 회복을 넘어 구조적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