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HBM 부진 속 비용 확대...실적 정상화 '지연'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10조원을 밑도는 영업이익을 내며 실적 정상화에 목말랐던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성과급 관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됐다고는 하나, 이를 참작해도 반도체 실적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경쟁사와 견줘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평가된다. 상반기에 자신감을 보였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이 납품 지연 문제로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가운데 범용 메모리 위주의 평균판매가격(ASP) 둔화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9조1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되며 반도체 침체가 심화된 지난해 1분기 이후 이어진 영업이익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올 2분기 10조440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실적개선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오히려 전 분기 대비 12.8% 감소했다.
부진의 결정적 원인은 반도체(DS)부문에서 발생한 일회성 비용이다. 삼성전자는 별도 설명자료에서 DS부문의 성과급 관련 일회성 비용의 영향으로 전 분기보다 실적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임직원에게 매년 초 지급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이 충당금 형태로 반영되면서 실적에 부담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OPI는 사업부마다 연간 목표 실적 이상을 달성하면 초과이익의 20%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임직원과 성과를 공유하는 제도다. 삼성전자 DS부문이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상반기에만 연간 목표치에 준하는 실적을 내면서 지급해야 할 OPI 규모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3분기에 발생한 관련 충당금이 1조원에서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메모리 재고자산평가손실 충당금 환입 금액 감소와 원·달러 환율 하락 등 이익률을 훼손하는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시장에서는 불가피하게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발생한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을 달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경쟁사에 비해 더딘 실적개선 속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HBM과 서버용 고용량 D램, 기업용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제외하면 메모리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실적을 최대한 방어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앞서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하반기에도 메모리 사업 환경이 우호적일 것이라고 관측했지만, 이익 성장세가 경쟁사보다 느리다는 사실은 우려를 키운다. 삼성전자에 앞서 지난달 25일 분기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은 비GAAP 기준으로 전분기보다 85.4% 증가한 17억45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달 실적발표를 앞둔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7000억원 수준으로 전 분기 대비 약 20% 확대됐다.
삼성전자는 서버와 HBM 수요가 견조함에도 일부 스마트폰 고객사의 재고 조정과 중국 메모리 업체의 구형(레거시) 제품 공급이 증가해 실적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시장은 인공지능(AI)의 혜택을 받는 HBM과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이 이어지는 반면 개인용컴퓨터(PC)와 스마트폰 등 일반소비자용 정보기술(IT) 시장은 수요 둔화가 두드러지는 양극화가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비해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판매 비중이 높고 고부가가치 D램인 서버용 더블데이터레이트(DDR)5와 HBM 공급 규모는 작다. 제품 구성이 수익성에 불리해 고객사 재고 조정과 중국 업체의 공급 증가 등 외부 변수에 취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공급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예정이었던 HBM3E(5세대) 8단의 사업화 지연도 실적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품질인증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올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3분기 HBM3E의 매출 비중을 전체 HBM의 10% 중반, 4분기에는 4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로 예정된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보다 명확한 HBM 사업계획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DS부문을 총괄하는 전영현 대표이사(부회장)는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고객과 투자자, 임직원에게 위기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실적설명회에서 경쟁력 복원 방안과 관련해 시장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이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