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야구에도, KIA는 꽤 강하다

KIA 주장 나성범이 지난 2일 SSG와의 경기에서 9회말 동전 투런을 기록한 뒤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올 시즌 KIA 타이거즈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나?”라는 탄식이 나오는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다가도 “이걸 이긴다고?”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승리를 만들어내곤 한다.

어찌 됐든 0.543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4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령탑도 냉정하게 “전력은 하위권이다”라고 말한다.

“개개인으로 보면 하위권이지만 하나로 뭉쳐서 잘 가고 있다”가 이범호 감독의 평가다.

건강한 김도영이라는 극강의 장점은 있지만 토종 선발진은 전반기를 보내면서 이닝 고민을 남겼고, 테이블 세터 고민은 매일 반복되고 있다.

굳게 자리를 지켜왔던 정해영이 흔들리면서 시즌 중반 성영탁이 마무리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특유의 강점으로 성영탁이 부지런히 뒷문 단속을 했지만 쉽지 않은 자리, 결국 KIA는 다시 집단 마무리 카드를 꺼내 든 상황이다.

선수들의 경험 부족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이제 막 프로에 뛰어든 1·2년 차 선수들이 엔트리에 포진해 있다.

그래서 ‘세상에 이런 실수’도 나오고 있다.

올 시즌 유독 약한 NC와의 맞대결에서 KIA는 다시 한번 ‘경험 부족’이라는 극명한 단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3일 KIA는 ‘강적’ NC 구창모를 만났다.

이 경기의 결과는 3-11대패였다.

결과로는 일방적인 패배지만 승부를 가져올 수 있던 결정적인 장면은 있었다.

4회말 박상준의 동점 적시타가 나왔을 때만 해도 KIA가 전날 끝내기 승리의 여운을 이어 분위기를 뒤집는 것 같았다.

3-3 원점으로 돌아간 승부, 1사 1·3루의 상황이 이어졌던 만큼 이범호 감독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고민은 시작과 함께 끝났다.

동점을 만들었던 박상준이 순식간에 견제사를 당해 덕아웃으로 들어왔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작전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 순간에 아웃됐다”며 그 순간을 승부처로 꼽았던 이범호 감독.

그는 이 경기가 끝난 뒤 코칭스태프 미팅을 진행했다.

박상준은 올 시즌 처음 정식 번호를 받고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경험에 비해 침착한 모습이 강점이지만, 아직 통산 100타석도 소화하지 않은 신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구창모를 상대로 동점을 만드는 안타를 기록했으니 심장이 뛰었을 것이다.

바로 다음 플레이를 위해 냉정했어야 했지만 실수가 나왔다.

이범호 감독은 패배를 기록한 다음 날 “상준이가 안타를 치고 나갔으면 흥분했을 것인데, 코치들도 같이 흥분하면 안 되니까 같이 신경 쓰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젊은 선수들이 방망이 잘 맞고 할 때 저런 부분 조심시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범호 감독은 경기를 뛰고 있는 어린 선수들을 세밀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면서, 실패의 순간을 곱씹었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다시 또 쓴 실패를 돌아보면서 이틀 연속 미팅을 진행해야 했다.

이번에는 더 결정적인 주루 실수가 나왔다.

4-5로 뒤진 9회말, 박재현이 선두타자로 나와 외야로 공을 보내고 3루까지 내달렸다.

무사 3루의 상황이 연출되면서 분위기가 KIA로 기우는 것 같았다.

3루에 있는 주자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손에 꼽는 스피드를 보유한 박재현이었기 때문에 일단 동점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규성의 짧은 좌익수 플라이가 나오면서 박재현이 움직이지 못했다.

1사 3루, 이번에는 김호령이 더 멀리 좌측으로 공을 띄웠다.

홈승부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박재현의 움직임에 당황했다.

3루를 밟고 뛰어 들어와야 했던 박재현이 이미 홈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동점이 아니라 오히려 더블 아웃이 될 수 있었던 긴박한 순간이었다.

박재현은 일단 전력으로 3루로 귀루해 아웃은 면했다.

하지만 차게 식은 분위기, 경기는 박상준의 삼진과 함께 KIA의 패배로 끝났다.

“도대체 왜?”라는 물음이 가득했던 패배.

공부를 했다던 이범호 감독은 다시 또 오답노트를 작성해야 했다.

태그업 플레이는 따로 언급할 것 없는 당연한 플레이였을지 모르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박재현의 머리에는 “홈에 들어간다”라는 문장만 입력됐다.

“컨택이면 뛴다”라는 입력값에는 ‘단’이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그 조건은 생각할 여유가 없던 2년 차 어린 선수의 황당 주루였다.

기본을 지키지 못해서, 올 시즌 유독 약한 NC에 연달아 덜미를 잡힌 KIA.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이 좋지 않았기에 우려의 시선은 있었다.

떠들썩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주눅이 들지 않을까’, ‘아쉬운 패배에 팀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KIA의 덕아웃이 달라졌다.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오늘’이 중요해졌다.

이범호 감독이 박재현의 본헤드플레이 이후 주장 나성범에게 주문한 것은 ‘평상심’이었다.

실패는 잊고 똑같은 마음으로 다시 또 시작하기를 바라는 사령탑의 마음이었다.

시즌을 보내다 보면 어느 날에는 영웅이 됐다가 어느 날에는 역적이 된다.

경기 순간에는 모든 역량을 쏟아내야 하지만, 144경기를 하는 만큼 경기가 끝난 후에는 빠르게 재정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아쉬움도 빠르게 지우고 매일 새로 시즌을 시작하듯이 경기를 해야 한다.

‘원팀’으로 지치지 않고 대장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리셋’이 중요하다.

‘너 때문에’라는 생각이 돌기 시작하면 팀은 흔들리고 무너진다.

사람이라 물론 아찔한 실수를 바로 잊기는 힘들다.

여기저기 활발하게 경기장을 누비던 박재현도 실수를 한 다음 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 때문에 실내 훈련이 진행됐다고 했지만 원래 박재현이었다면 비가 오는지 그쳤는지 확인하느라 부지런히 경기장을 오갔을 것이다.

잠잠했던 박재현이지만 팀은 똑같이 움직였다.

5일 우천 세리머니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온 박재현이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면서 전날 주루 실수를 사과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어제는 어제. 그리고 우천취소가 되면서 박재현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천 세리머니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온 박재현은 관중석을 향해 넙죽 큰절을 했다.

프로답지 못했던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사죄의 절이었다.

이어 이번에는 정확하게 3루 리터치를 한 뒤 홈으로 시원하게 뛰어 들어왔다.

덕아웃에서 박재현을 지켜보던 선배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전날 9회를 재현하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KIA가 올 시즌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달리는 이들이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친 게 아쉽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야구는 팀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아쉬운 전력에도 KIA가 예상을 깬 선전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아웃을 보면 성적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의 실수가 나왔을 때, 황당한 패배가 기록됐을 때 덕아웃 분위기를 보면 다음을 예상할 수 있다.

박재현이 17년 차이가 나는 선배 나성범에게 ‘따발총 세리머니’를 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KIA 덕아웃 풍경이 됐다.

동료이자 경쟁자이기도 한 복잡한 관계지만, KIA 선수들은 진심으로 동료의 성공을 기뻐하고 실패를 아쉬워하고 있다.

동료의 성공은 질투가 아니라 동기 부여가 됐다.

이범호 감독은 “재현이 때문에 이긴 경기도 많고, 앞으로 재현이 때문에 지는 경기도 생길 것이다. 그게 야구다. 안 좋았던 것을 오늘 또다시 해야 하는데 야구다”며 “팀은 개개인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개개인으로 보면 전력이 하위권이지만 선수들의 뭉쳐서 좋은 시너지를 내서 중상위권에 있다. 베테랑들이 잘 해주고 있고, 젊은 선수들도 거기에 대응해서 잘해줬다. 타이거즈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선수들이 기죽지 않고 힘내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찔한 실패에서 본 긍정적인 희망, KIA는 꽤 강하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