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핵심’ 공시 참여 1%도 안돼…종목 신뢰성도 논란
밸류업 프로그램은 올해 2월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하며 첫 발을 뗐다. 당시엔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본시장의 저평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겠다고 나선 것이 처음이었기에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속빈 강정에 가까웠다. 전체 상장사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자율적으로 공시하고, 기업 가치 개선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밸류업지수)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 상품·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하는 수준이었다.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끌어 낼 강력한 유인책은 미흡하고, 각 상장사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시 참여율도 낮다. 25일 한국거래소 공시채널에 따르면, 현재 기업가치제고계획을 공시한 기업은 22곳에 그친다.
그나마 기업 유인책인 ‘밸류업지수’를 두고서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수에 편입된 종목이 대표 지수와 큰 차별성이 없고, 시장이 기대한 밸류업 대표 종목이 탈락한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고 있는 KB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가 지수에 들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밸류업지수 발표 직후 기관 고객 대상으로 공개한 투자 노트에서 “(거래소가 발표한) 종목 100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은 기업이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높여 가치를 올리고, 이에 따라 우리 증시를 부양하는 취지인데 증시 부양과는 관련이 없는 ‘고 PBR 저 ROE’ 종목이 밸류업지수에 대거 편입됐다”고 지적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사의 주주 친화 정책을 유도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지만, 정작 지배주주는 높은 상속세율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주가 부양 의지를 갖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도 “대기업을 지배하는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는 일반적으로 소액주주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관건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14.2%인 국내 주식 비중을 2029년까지 13%로 낮추기로 했다. 자산 규모가 1000조원을 넘어 가파른 속도로 불어나면서 국내 쏠림 우려를 고려한 판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의 밸류업 모델인 일본의 경우 공적연금(GPIF)이 자국 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밸류업 성공을 견인했다는 점을 들어 국민연금의 적극적 역할론을 당부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 증시가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상황에서 수급 주체로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이익이 반도체·화학 등 특정 업종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다는 얘기다. 안 교수는 “한국은 1970년대 육성한 자동차·철강·조선·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에 여전히 머물러있기 때문에 산업 전체가 쇠퇴하고 있다”며 “대만이 TSMC를 키워냈듯, 기업과 더불어 정부가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학균 센터장은 “밸류업 추진 과정에서 여러 정책이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단기적 과제가 아닌 만큼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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