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를 나누며_Slán go fóill

출처: pinterest_kim smith

아이를 등교시키고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갔다. 우리 동네 마트는 대개 오전 시간에 가장 붐비는 것 같은데 이 시간의 마트는 그냥 물건을 사는 곳이라기보다 동네에서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장소로 그 역할을 더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오전 9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카트를 세워두고 물건을 사기보다는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담소 나누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들과 다르게 나는 그저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서 바구니에 조용히 넣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할머니 한분이 내게 월터가 그림을 그리다가 균형을 잃고 의자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월터 할아버지와 나

남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살기’ 위해 찾아온 아일랜드에서 월터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고, 또 자신의 친구들의 커피모임에 나를 초대해 준 사람이다. 월터는 고향을 떠나 사랑을 찾아온 나의 용감함을 ‘아름답다’라고 말해주었고, 또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자신의 정원의 꽃들로 만든 다발과 또 그것을 꽂을 수 있는 화병을 가지고 집을 찾아와 주기도 했다. 또 아일랜드 예술원의 회원이기도 한 월터가 최근에 한 가톨릭 성인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볼 수 있는 한 최대로 많은 거룩한 사람의 얼굴과 이목구비를 찾아보고 공부했지만 우리 아이의 귀처럼 잘생긴 귀를 본 적이 없다는 일종의 찬사를 전해 주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내게 그 말은 나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힘이 있었다.

월터의 정직함과 진실성을 신뢰했던 그의 친구들은 월터가 소개해 준 나를 그들의 그룹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해 주었고, 또 그 후로 나에게 또 나의 가족에게 아낌없는 우정을 베풀어 주었다. 그들은 모두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면 두 팔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또 가끔은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가벼운 험담을 내게 말하는 것을 재미있어할 만큼 나와 거리를 두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던 월터가 뒤로 넘어졌다.

그런 나의 친구 월터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완전히 뒤로 넘어졌다고 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서 살고 있던 그는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한참 뒤에야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평소에 월터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정원의 꽃도 따서 가져가고, 와서 피아노도 치면서 놀다 가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한국의 관습상 어른의 집에 아무 때고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했던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 소식을 남편에게 알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오후 바로 그가 머물고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한국과 다르게 아일랜드 의료체계에서 요양기관은 만약 노인이 24시간의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 있고, 또 요양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거나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지만 독거노인이거나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생활하는 정도의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에는 노인요양주거 시설로 옮겨서 일정 기간을 지내게 된다. 월터는 병원에서 퇴원해서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24시간 케어를 위한 간병 팀의 조직이 될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푸른색의 깊은 눈매를 지닌 월터의 따뜻한 미소와 유머러스한 말투는 언제나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곤 했다. 그를 만나면 타향살이의 설움과 외로움을 위로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월터는 마치 감정의 수도꼭지가 잠겨버린 것처럼 건조해 보였다. 사실 그가 우리 가족을 알아본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변화된 모습을 알아차리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우리 아이였다. “엄마. 월터 할아버지가 잠이 덜 깬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자면 늘 덕을 쌓으며 살았던 월터의 삶의 태도 덕분에 그가 집으로 돌아왔던 날 그리고 그가 2-3명의 간병 팀을 구성해서 24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케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은 마치 지방 신문에 실릴 수 있을 정도로 동네 사람들의 주요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월터의 가장 친한 친구 제리는 그가 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월터만큼 나는 제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제리의 아내 앤이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마치 서서히 바람이 빠지고 있는 풍선처럼 어깨가 움츠려 들고 있었다. 그런 제리에게 월터의 병환은 또 다른 슬픔과 좌절이 되고 있었다.

나는 월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 그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또 최근에는 큰딸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에도 그는 큰딸의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아내를 꼭 빼닮은 큰딸의 집은 어쩌면 이 순간 그가 머물 수 있는 가장 안락한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지역 공동체(community)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누군가가 아프거나 누군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공동체의 힘은 발휘가 된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매일 아침 말하자면 부고(訃告)를 알리는 웹사이트를 일부러 챙겨서 확인하는 편이다. 퇴근을 앞두고 남편이 내게 전화를 했다. 월터가 지난밤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고, 저녁에 장례식장에 찾아가자고 했다.

장례식장은 지역사회에 한 개씩 준비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고 빈소를 찾아간다. 나와 남편이 도착했을 때는 빈소를 찾은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7월의 한 여름이지만 15도 정도의 시원한 저녁이라 기다리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고, 시원한 바람이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늘은 석양이 물들고 있었고, 새들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늘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어떤 도움이라도 줄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며 위로와 지지를 해 주던 월터의 따뜻하고 선한 품성이 그가 떠나는 날의 오후의 풍경과 닮아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그가 젊었을 때의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서 로비에 놓여 있었다. 아내와 함께 찍은 결혼식에서의 청년 월터, 또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월터의 사진을 지나치며 마치 그의 일생이 지나쳐 가는 것 같았다.

그가 반듯하게 관에 누워 있었다. 월터의 가족들과 친지들은 찾아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또 짧은 순간이었지만 월터의 마지막 나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월터의 얼굴을 보자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의 가족들의 슬픔 앞에 내 울음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의 관이 다른 장례식에서 봤던 것들과 조금 다르게 마치 커다란 바구니처럼 생긴 관에 월터가 누워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어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월터의 관이 땅 속에서 빨리 분해가 되도록 만들어진 말하자면 친환경 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했던 선택마저 그의 선함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월터의 집 쪽으로 가 달라고 했다. 그의 집과 그의 정원이 멀리서 보이는 길 그리고 그와 처음으로 만났던 동네 어귀의 등대 앞 절벽을 지나면서 그의 깊은 눈매를 생각했고, 또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그 순간의 그의 목소리를 떠 올렸다. 떠오르는 해만큼 석양의 지는 해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부실 때가 있다. 반쯤 든 눈을 들고 그를 생각하며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천국에서도 행복하세요. 정말 감사했어요. 나의 친구 월터 할아버지.”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아일랜드 작은 마을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일랜드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너를 이해하고 나를 더욱 알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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