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社 돌파구로 부상한 ESS…"EV 공백 못 메운다"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전기자동차(EV)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배터리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ESS는 전기차보다 시장 규모가 작고 수요구조도 달라 전기차 수요 둔화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성 역시 배터리 자체의 마진보다 정책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전기차 배터리를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

AI 데이터센터·정책 힘입어 커지는 ESS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EV 중심의 성장구조가 흔들리며 ESS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저장 및 관리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 축소와 금리 부담, 소비여력 둔화 등이 맞물리며 성장 속도가 둔화한 전기차 시장과 상반되는 흐름이다.

실제로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글로벌 ESS 설치 용량은 지난해 92GW(기가와트)에서 2035년에 244GW로 확대되며 연평균 약 1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미 ESS 수요는 2024년 58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67GWh, 2026년 88GWh로 늘어난 뒤 2028년 103GWh, 2030년에는 123G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연계 수요가 동시에 확대되면서 북미가 글로벌 ESS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지역으로 부상한 영향이다.

게다가 미국은 ESS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관세 인상과 세제요건 강화에 나섰다. 대중국 ESS 배터리 관세율은 지난해 30.9%에서 올해 43.4%로 상향됐다. 세액공제 적용을 위해 비중국산 조달 비율을 충족해야 하는 규제도 강화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3사는 전기차 생산설비 일부를 ESS라인으로 전환하거나 ESS용 리튬인산철(LFP) 설비를 증설하는 등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ESS가 EV 수요 공백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중장기적으로도 글로벌 배터리 수요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ESS와 EV의 수요 형성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ESS는 전력망 안정화와 재생에너지 보완을 위한 설비라 수요가 필요한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EV는 차량 판매 증가에 따라 배터리 수요도 누적되는 구조다. 특히 ESS의 목적은 전력효율 개선과 출력 안정화라 전력수요 증가가 배터리 투입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중국發 가격 경쟁에 정책 의존까지 '수익성 한계'

게다가 북미 ESS사업의 경우 영업이익이 배터리 자체의 경쟁력보다 세액공제 등 정책 지원에 크게 좌우된다. 시장에서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할 경우 셀 자체의 마진은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추정한다. 외형 성장이 이어지더라도 수익성 개선으로 직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시장 경쟁 역시 부담 요인이다. ESS용 배터리는 LFP 중심으로 표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술이 차별화될 여지가 크지 않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은 가격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ESS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83.8%에 달한다. 이에 대규모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 확보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엔솔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사진 제공=LG엔솔

아이러니하게도 EV와 ESS 간 생산라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은 변수다. EV 수요가 둔화할 경우 일부 설비를 ESS로 전환해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특정 시점에 장기간 공급 부족이 이어지기 어렵고 가격 상승 폭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ESS는 EV보다 양산 경험이 짧고 전용공정 전환 과정에서 초기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 이 과정에서 출하 지연이나 원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어 사업 초기에는 수익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ESS는 전기차 중심 성장구조의 변동성을 일부 완충할 수 있을 뿐 이를 대체할 독립적인 성장 축으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ESS는 분명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EV를 대신할 만큼의 규모와 수익성을 동시에 갖추기는 어렵다”며 “실적변동성을 완화하는 보완적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EV 수요가 회복돼야만 배터리 업황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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