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는 안 팔리는데 중고차는 인기 최고라는 바로 그 SUV

'1세대 트랙스'는 먼저 출시된 형제 모델 '아베오'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으면서 무거운 어깨로 등장한 신차였고, 다행히 그 책임감을 짊어지기에 충분히 탄탄하게 만들어진 모델이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내실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포장지에 신경을 쓰지 못해 상품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한 느낌이랄까요.

국내 시장의 소형 SUV 카테고리를 개척한 선구자임에도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애매한 상품 구성과 아담한 크기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후발주자들에게 시장을 빼앗긴 비운의 모델이 됐죠. 차 좋은 건 알겠는데, 그저 키 큰 아베오로 느껴지는 이 차에 한 체급 큰 현대 투싼, 스포티지와 맞먹는 가격을 지불하려니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았던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후 약점을 보완한 '더 뉴 트랙스'가 크게 개선된 상품성에도 불구, 오히려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판매량이 20%가량 증가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올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가만 있을 리 없겠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최신 경쟁차들에 밀려 다시금 판매량이 큰 폭으로 하락했어요. 설상가상 같은 집에서 최신 디자인과 풍부한 편의장비를 무장한 야심작 '트레일 블레이저'가 2019년 출시되면서 마치 코나와 셀토스에 밀려 잊혀진 기아 스토닉처럼 그나마 남아있던 관심마저 사그라들었죠.

다행히 국내에서의 아쉬움은 해외 고객들이 달래줬는데요. 애초에 글로벌 시장을 위해 기획된 만큼 오리지널 트랙스 뿐만 아니라 '오펠 모카', '뷰익 앙코르' 같이 내외관 디자인 및 구성을 달리한 형제 라인업까지 갖춰 전세계 140여 개국에 절찬히 판매됐습니다. 내수 판매량과 비교하면 그냥 잘 팔리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 GM을 먹여살린다고 해서 과언이 아닐 만큼의 수출 효자 상품이었죠.

여담으로 이 트랙스의 형제차들 역시 국내에서 개발됐기 때문에 곳곳에서 테스트카들이 목격되기도 했죠. 네모네모 디자인으로 투박함이 묻어났던 트랙스와 달리 날렵한 생김새로 느낌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국내에서 살 순 없었지만, 이 '모카'를 선호했던 분들도 꽤 많았습니다. 이 차들도 인천에서 생산했으니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죠.

이 밖에 크고 작은 말썽들도 있었지만, 브레이크 장치의 구조적인 문제로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제동 시 간헐적으로 '뿡뿡'하는 소음이나 심한 경우 '뱃고동' 소리가 나는 일명 '방구소리' 이슈, 어느새 머드 축제보다 유명해진 그 미션은 개선된 제품이 탑재되긴 했지만, 여전히 저속에서 바보가 되거나 간간히 심한 변속 충격을 선사했고, 특히 토크가 높은 디젤 엔진과의 궁합이 맞지 않아 유난히 디젤 모델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빈도가 높았죠. 가솔린 엔진의 경우 엔진 오일의 냉각수가 혼입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형 SUV 중에서는 감가가 가장 큰 편이라 중고차로는 메리트가 있었는데, 장거리 운행이 잦은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트랙스로 입문한 뒤 매력에 빠져 이후 쉐보레의 상위 모델로 넘어가는 분들이 꽤 있었죠.

한편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하던 인천 '부평 2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이 차는 결국 단종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그래도 후속 없이 '말리부'와 달리 창원 공장에서 생산되는 신형 크로스오버에 이 '트랙스'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다행히 이름을 이어갈 수 있게 됐죠.

앞서 '시커(SEEKER)'라는 명칭으로 중국 시장에 선보여졌던 쉐보레의 신형 크로스오버가 국내 시장에 정식 출시된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다시 한번 열띤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10월, 북미에서 '트랙스'라는 이름으로 이 모델이 공개됐는데, 쉐보레의 최신 SUV 패밀리룩을 적용한 날렵한 스타일과 한 채급 불어난 몸집으로 아예 다른 차라고 봐도 무방했고, 중국 시장에는 새로운 이름으로 투입됐지만 앞서 설명했듯 쉐보레의 베스트셀링카 중 하나였을 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모델이었기에 트랙스라는 브랜드를 이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명백히 '트레일 블레이저'의 하위 모델이었던 전작 트랙스를 떠올리면 좀 의아한 네이밍이긴 하죠. 그걸 의식해서인지 지난달 국내에 정식 출시된 2세대 트랙스는 차명에 '크로스오버'라는 서브네임을 붙여 차량의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이전에는 세단과 SUV를 선택하는 소비자층이 물과 기름처럼 분명히 나뉘었던 반면 이제는 승용차의 한 종류, 하나의 스타일로서 인식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진 지 오래죠.

SUV 열풍이 불어오면서 굳이 험로를 갈 일이 없더라도 SUV의 스타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제조사들은 세단과 SUV의 장점을 한 데 버무린 크로스오버라는 선택지를 제공했었죠. 이런 맥락에서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세단의 감각에 SUV의 실용성과 스타일 만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모델로 기존의 SUV 트랙스는 물론 단종된 준중형 세단 크루즈와 소형차 아베오의 빈자리를 한꺼번에 커버하는 모델인 것이죠.

외관은 앞서 출시된 트레일 블레이저와 마찬가지로 트림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 특징이었는데, 날카로운 디자인을 바탕으로 기본 모델과 터프함을 강조한 '액티브', 더욱 스포티하게 꾸민 'RS'로 구분했습니다. 크로스오버 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모델답게 종전의 SUV 라인업과는 확연히 다른 생김새였는데, 커다란 바퀴, 넉넉하게 두른 플라스틱 가니쉬, 매끈한 반원형이 아닌 각을 살린 휠아치로 터프함을 살리는 한편 유리 면적을 차체 대비 좁게 만들어 차를 보다 늘씬하고 날렵해 보이게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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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전폭 대비 낮은 전고는 이 차의 성격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습니다. SUV를 표방하는 트레일 블레이저와 전작 트랙스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죠. 강렬한 앞모습에 비해 뒷모습은 다소 심심한 분위기였는데, 양 끝단으로 밀려난 리어램프는 차를 실제 수치보다 넓어 보이게 만들었지만 눈 사이에 간격이 너무 넓은 느낌이랄까요? 조금은 맹해 보이는 인상이었어요. 특히 램프 디자인은 닛산에 외주를 준 게 아닐까 싶은 분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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