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엄마 찾던 7살, 美서 가족전문상담사로…“30년 걸린 용서” [우리사회 레버넌트]
성인 되자마자 美 유학길…그대로 정착
부모에 대한 원망, 딸에게 쏟아내기도
상담 석사 과정서 30년 만에 상처 치유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여기 엄마 없는데.” 1984년 어느 날, 일찍이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 7세 원정미 양이 부산 금정구의 한 골목을 뛰어다니며 가정집 문을 마구잡이로 두드린다.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똑같다. 주택가 골목 밑 재래식 시장 상인들은 모두 문을 닫고 없다. 시장통을 가로지르며 미장원, 구멍가게, 옷가게들을 지나치지만 하나같이 인적은 없다.
원양은 엄마를 찾고 있다. 원양이 기억하기로 엄마는 10살 무렵까지 항상 가출을 시도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때라 직접 뛰어다니며 엄마를 찾는 수밖엔 방법이 없었다. 원양의 눈앞에서 집을 나가겠다며 짐을 싸는 모습도 수차례 보였던 엄마지만, 결국 집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문득 집을 돌아보면 엄마가 사라져 있던 기억은 원양이 30대가 될 때까지도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엄마의 잦은 가출은 오래된 고부 갈등이 원인이었다. 엄마도 사정은 있었다. 엄마는 친부모에게 가정 학대를 당하다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다. 친부모만 벗어나면 괜찮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엄마는 결혼 후엔 시가, 특히 시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다.
원씨의 엄마와 원씨의 어릴적 모습은 닮았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40대가 된 원정미 씨는 원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을 전문으로 맡는 상담치료사가 됐다는 점이다. 정식 명칭은 공인 결혼·가족상담치료사(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다.
원씨는 20대 초반 미국 유학을 결정해 지금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젊은 가족들이 많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원 씨가 유학 2년 만에 같은 유학생 신분이었던 남편과 결혼한 것도 미국 정착이 이유였다. 상담 치료 끝에 가족에 대한 원망을 극복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씨의 가정 환경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곪은 구석이 많았다. “목을 매 죽어버리겠다.” 원씨의 할머니가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협박할 때 주로 하던 말이었다. 원씨는 부모로부터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것도, 부모가 부모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원씨는 언제 고성이 오갈지 모르는 집안 분위기에 늘 두려운 상태였다. 원씨는 가정 분위기에 대해 “늘 긴장하고 불안한 상태였다. 집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씨가 성인이 되자마자 유학을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시 집안의 기대는 오빠에게만 집중됐었다. 원씨는 가족의 일원이었지만, 가족엔 없는 존재였다. 원씨는 오랜 시간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그리고 2년 만에 미국 현지에서 만난 한인 교포와 결혼해 미국에서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남편 역시 대학생 신분이라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원씨가 미국에서의 결혼과 체류를 결정한 것은 그것만이 부모를 떠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와는 상의도 하지 않은 사실상의 통보였다. 상견례는 결혼식 3일 전에 치렀다. 원씨는 “운이 좋아 결론적으로는 잘 살고 있긴 하지만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결혼은 100% 말리고 싶다. 당연히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라는 건가요.” 원씨가 결혼하고 5년 뒤 어느 일요일 아침, 원씨는 교회에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첫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였다.
원씨는 “딸이 7살을 넘을 무렵부터 정말 이유 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딸이 준비물을 잃어버렸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머리 끝까지 화가 나” 한참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야만 분이 풀렸다. 원씨는 “쓸데없는 재잘거림, 징징거림을 들어주기 괴롭다는 생각도 했다.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힘을 써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뒤늦게 원씨는 자신이 아이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결혼 13년 만,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야 대학원에서 심리상담 분야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다. 상담 교육의 첫 시작은 자신의 내면 탐구가 계기였다. 원씨는 “내가 딸이었을 때는 항상 먼지 같은 존재였는데, 막상 내 딸은 어딜 가나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게 미웠다”고 했다.
이후 원씨는 미국 노더테임 대학교에서 결혼 및 가족 치료학, 미술 치료학 석사 과정과 3000시간의 실습 시간을 거쳐 4년 전 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시간 동안 원씨는 부모대한 원망을 깨닫는 한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동시에 거치게 됐다.
현재 원씨가 머물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실리콘밸리에는 IT 기업이 모여 있고 젊은층이 많다. 원씨는 한국의 ‘판교’와 실리콘밸리가 비슷하다고 했다. 최신 트렌드가 가장 먼저 도입되는 동시에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 경쟁 의식도 강한 편이다. 이곳에서 원씨는 한국의 저출생 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본다.
원씨는 “자녀에게 ‘효율’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다”며 “노력과 돈을 들이면 그만큼 보상이 돌아와야 하고, 아이가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길 바라는 욕심에 오히려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이 같은 가정을 보며 자신은 저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결혼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있다”고 덧붙였다.
“엄마가 나를 임신하지 않았으면, 아빠랑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엄마는 불행하지 않았을 거예요.” 원씨가 인턴 시절 학교에서 상담사로 일하며 한 이혼가정의 아이로부터 들은 말이다. 가정폭력으로 이혼했지만 양육권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던 가정 사례였다. 원씨는 “어린 시절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상담하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부부싸움은 어른들끼리의 문제이고,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씨는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즉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회적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육아란 계속해서 힘든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빠 고마워"…여배우 유튜브 나온 이준석 영상 결국 비공개, 왜?
- “남자는 엉덩이가 커야 돼, 나랑 자자”…30대女, 직장 동료에 엉덩이 비비며 ‘성추행’
- 개그우먼 김현영 “스크린 파크골프, 다양한 연령층에 전파하겠다”
- ‘영구제명’ 손준호 “中공안 협박에 거짓 자백해”
- 일본만 난리인 줄 알았는데…한국도 환자 ‘폭증’, 무슨 병이길래?
- 김수미 건강악화설에…아들 "밤샘 촬영 때문, 문제 없어"
- ‘신림동 흉기 난동’ 조선 무기징역 확정
- 뉴진스, 긴급 라이브 방송…"민희진 대표 복귀시켜달라"
- “세탁기 5만원, 진짜?”…주문 폭주에 56억 손해 본 회사, 알고 보니 ‘직원 실수’
- 정선희, 故 안재환 실종신고 안한 이유…"극단적 선택 상상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