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으로 서울 도봉구에 방 2개짜리 빌라 샀다가 생긴 일

빌라 역전세 대란 우려

‘빌라왕 전세 사기’ 이후 문의조차 사라졌을 정도로 빌라 전세 시장이 튼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매매·전세 거래량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빌라 임대차 시장을 점검했습니다.

◇빌라 전세 매매 거래 동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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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전세 거래량은 3만627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5만3326건) 대비 32% 급감했습니다. 서울시가 전세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1~4월 기준으로 가장 적은 것이죠. 같은 기간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이 3.2% 감소하는 데 그친 것과도 대조적입니다. 빌라 전세 거래량이 위축된 것은 최근 잇따른 전세 사기 사건으로 세입자들이 빌라 전세를 꺼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등은 ‘세입자 실종’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화곡동에서 전용면적 29㎡ 빌라를 임대하는 김모(68)씨는 작년 12월 전세 만기로 세입자가 나간 뒤 반년 가까이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셋값을 이전보다 4000만원 낮춰 지난달 겨우 세입자를 찾고 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취소당했죠.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 동네 모든 전셋집이 전세 사기에 연루된 집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라며 “전세 손님이 끊겨 선량한 임대인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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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빌라는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집값 급등 때 2030 세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매매 및 전·월세 시세가 급격히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급락하고 전세사기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충격을 크게 받고 있죠,

이런 골칫거리를 처분하자니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매매 거래는 684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1만4175건) 대비 51.7% 급감한 것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것입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전년 대비 거래량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곳은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렸던 강서구였습니다. 지난해 1~4월 1737건에서 올해 1~4월 600건으로 65.5% 급감했습니다. 강남구(-64.2%), 금천구(-64.1%), 송파구(-63%), 양천구(-61.8%), 도봉구(-60.2%)도 60% 넘게 줄었습니다.

◇빌라 전세, 끝모를 침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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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입자들은 웬만하면 빌라는 피하자는 분위기입니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를 보면 서울 은평구에서 방 2개짜리 빌라를 임대하고 있는 김모(64)씨는 계약 기간이 한 달 남짓 남은 세입자의 보증금 2억2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새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집을 내놨지만, 계약은 커녕 집을 보러 오는 사람조차 거의 없죠.

김씨는 당장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없어서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빌라 가격이 워낙 떨어진 탓에 주택담보대출마저 거절당했습니다. 김씨는 “빌라를 팔려고 해도 찾는 사람이 없고 판다 하더라도 워낙 헐값이라 큰 손해를 보게 된다”며 “괜히 투자 잘못했다가 큰 고통만 지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보증금을 낮추거나 인테리어를 교체해도 세입자가 안 구해진다는 집주인들의 사연도 줄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 임대인은 “500만원짜리 최신‘빌트인 가전’을 설치해 주겠다는 옵션까지 내걸었는데,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현 세입자로부터 ‘사기꾼’ 의심을 받는 느낌마저 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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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계에선 대란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부동산 시장 한 관계자는 “집주인이 신규 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역전세’가 확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빌라 전셋값이 정점을 찍은 2021년 하반기에 계약한 거래 만기가 차례로 돌아오고 있어서, 올 하반기 대규모 보증금 부실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부동산 시장 한 전문가는 “빌라는 세입자는 물론 집주인 역시 생계를 위해 임대 사업을 하는 서민층이 대부분”이라며 “세입자를 끝내 못 구하면 집주인은 파산하고, 빌라가 경매로 헐값에 팔려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세입자들은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이나 인근 다른 중개사무소를 통해 주변의 전세 시세를 따져보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임대인의 신원이 불확실하다면 계약을 피해야 합니다. 가급적 전세보다는 보증금이 작은 반전세나 월세로 하는 것도 좋죠.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계약 전 주변 시세나 권리 관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불안한 부분이 있으면 보증금을 낮추거나 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