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에선 풀 취급 받는 고사리가 한국 밥상에 남은 이유

봄이 되면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낯설지 않다. 우리는 고사리를 반찬으로 먹고 제사상에도 올린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식물이지만 고사리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중국과 일본에도 고사리는 자란다. 하지만 음식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버섯을 제외한 산나물을 거의 먹지 않았고 일본 역시 일부 들나물만 식탁에 올렸다. 고사리는 풀에 가까운 존재였다. 먹을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겼다.
중국과 일본에서 고사리는 음식이 아니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성삼문이 남긴 시조에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고사리는 생명을 이어주는 음식이 아니다. 고사리를 먹었다는 말과 굶어 죽었다는 말이 함께 쓰였다. 당시 중국에서 고사리는 음식이 아니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는 고사리를 생산하지만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한다. 일부 지역에서 소비되지만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 지역에 한정된다. 중국 사회 전반에서는 여전히 상식으로 먹는 식재료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왜 고사리를 먹었을까

반면 한국에서는 고사리가 오래전부터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산나물은 밭에서 기른 채소보다 뒤처진 음식이 아니었다. 조선의 문인들은 산나물을 진기한 음식으로 표현했고 벼슬아치의 상에도 올랐다.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임금의 기록에서도 같은 인식이 확인된다. 세종대왕은 온양온천 행차를 앞두고 반찬을 제한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산나물과 들나물조차 올리지 말라고 했다. 이는 산나물이 값싼 음식이 아니라 절제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고사리는 실용적인 나물이기도 했다. 봄철 저장 식재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말려 두고 오래 먹을 수 있었다. 섬유질이 많은 나물이라 곡식 위주의 식사에서 빠지기 쉬운 요소를 채웠다. 기름을 거의 쓰지 않아도 조리가 가능해 일상 식단에 맞았다.
고사리, 한국인들은 이렇게 먹어왔다

고사리는 생으로 먹지 않는다. 채취한 뒤 말리고, 먹기 전에는 충분히 불린 뒤 삶아 쓴맛을 뺀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식재료로 쓸 수 있다. 나물로 무치거나 국에 넣고, 제사상에서는 기름기 없는 기본 나물로 자리 잡았다.
고사리를 가난의 상징으로 보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이후 굳어졌다. 산나물을 먹지 않던 일본의 시선에서 고사리는 풀에 불과했다. 이 인식이 한국 식문화를 낮춰보는 방식으로 퍼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부터 서민까지 고사리를 귀히 다뤘다.
고사리는 풀도 아니고 궁핍의 흔적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고사리는 저장과 조리에 모두 맞았고, 생활에 맞게 선택된 나물이었다. 이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사리 섭취 방법 5가지
1. 생고사리는 바로 먹지 않는다 말린 뒤 사용한다
2. 말린 고사리는 충분히 불린 뒤 삶아 쓴맛을 뺀다
3.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나물 조리에 적합하다
4. 국과 나물 반찬으로 활용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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