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대통령 지시로 심은 흔하디 흔한 나무의 ‘대반전 효능’

나물로도 약재로도 쓰이는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귀화 식물
족제비싸리 / '숲마실 TV 산림 임업 농업 약초 6차산업' 유튜브

산자락을 걷다 보면 자줏빛 꽃이 이삭처럼 길게 늘어진 관목을 만난다. 족제비싸리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식물은 한국의 근대사를 품고 있다. 6·25전쟁 후 황폐한 산을 되살리기 위해 심어진 이 나무는 이제 길가와 강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족제비싸리'라는 이름은 꽃 색깔이 족제비 털과 닮았고, 줄기에서 나는 구린내가 족제비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 데서 왔다. 꼬투리 모양도 족제비 꼬리를 닮았다. 족제비싸리에 대해 알아봤다.

황폐한 땅을 살린 강인한 뿌리

족제비싸리 / '텃밭친구' 유튜브

족제비싸리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떨기나무다. 높이는 1~3m로 자란다. 가지에는 잔털이 있지만 점차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11~25개로 달걀 모양 또는 타원형이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5~6월에 핀다. 자줏빛이 도는 하늘색 꽃은 강한 향기를 낸다. 이삭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에는 샘점이 있다. 꽃부리는 기판뿐이다. 열매는 9월에 맺힌다. 협과로 콩팥 모양의 종자 1개가 들어있다.
북아메리카 원산이다. 1930년대 중국 동북부를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전역에서 자란다. 경작지, 냇가, 길가, 산자락에서 흔하다. 공해, 추위, 건조에 강하다. 생명력이 왕성하다. 사방공사와 사면 피복용으로 심어졌다.

사방공사란 수력 및 풍력에 의해 토사, 자갈이 이동해 발생하는 각종 재해를 예방하고 복구하는 공사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공사인 셈이다.

족제비싸리는 6·25전쟁 후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대량 식재됐다. 1960년대 사방의 날에는 씨를 뿌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토사 유출 방지를 위해 족제비싸리를 심으라고 지시했다.

제철은 꽃이 피는 5, 6월과 열매가 익는 9월이다. 콩과 식물로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도로 산울타리나 녹비용으로도 쓰였다.

족제비싸리는 다른 종과 구별된다. 꽃이 원통 모양이다. 나비 모양 꽃을 가진 콩과 식물과 다르다. 잔털이 약간 있는 점에서 털이 많아 하얗게 보이는 털족제비싸리와 구분된다.

꽃이 짙은 자주색인 점에서 벽자색 꽃을 피우는 애기족제비싸리와 다르다. 다른 이름으로는 자수괴, 수화괴, 자취괴, 미국싸리, 왜싸리가 있다. 잎이 아카시나무와 비슷해 일본아까시나무로도 불린다.

약과 술로 변신하는 족제비싸리

족제비싸리 / '약초1번지' 유튜브

족제비싸리는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더 유명하다. 잎, 줄기, 뿌리, 열매를 모두 약으로 쓴다. 말린 전초를 하루 10~20g 달여 마신다. 꽃과 씨앗은 담금주로 활용된다. 꽃은 씻지 않고 그대로 담근다.

씨앗은 3개월 숙성 후 먹는다. 맛은 쓰다. 성질은 서늘하다. 줄기를 문지르면 구린내가 난다. 중국 향신료나 비누 같은 냄새가 특징이다. 겨울에는 냄새가 더 강해진다. 과다 섭취하면 무기력증이나 환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2개월 이상 장기 복용은 피해야 한다. 몸이 차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은 섭취를 삼간다.

요리로도 쓰인다. 농촌에서는 과거 어린줄기를 꺾어 즉석 젓가락으로 썼다. 새순은 살짝 데쳐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맛은 쓰고 떫다.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린다. 꽃은 꿀벌이 좋아하는 밀원식물이다. 꿀맛은 강렬하고 약간 매운 풍미가 있다. 식용 시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것만 써야 한다. 도심의 족제비싸리는 오염 우려가 있다.

몸과 땅을 살리는 효능

족제비싸리는 약초로 다재다능하다. 한방에서는 자수개라 부른다. 강심작용이 있다. 협심증 치료에 쓰인다.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억제한다. 피부를 건강하게 한다. 항암 작용으로 암세포를 억제한다. 혈액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동맥경화, 뇌졸중, 관상동맥질환을 예방한다.

간세포를 회복하는 효과가 있어 숙취 해소와 알코올 해독에 좋다. 스태미너를 증진한다. 갱년기 골다공증을 개선한다. 녹내장, 백내장, 야맹증에 효과적이다. 항염증 작용으로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 위궤양을 다스린다.

이뇨작용으로 붓기를 줄인다.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한다. 고혈압, 중풍, 당뇨병, 심장병에도 쓰인다. 암포르핀 성분은 진정작용을 한다. 발작성 심계항진, 심장 신경통, 자율신경 실조증에 효과가 있다.

과거 농촌에서는 다목적으로 활용됐다. 줄기는 가늘고 곧다. 감을 꿰어 곶감을 만들 때 썼다. 비닐 못자리 골조로 사용됐다. 울타리를 만들거나 방비나 빗자루 재료로소 썼다. 겨울에는 땔감이 됐다. 잎은 사료로 쓰였다.

껍질은 섬유 자원이었다. 손을 자르면 분홍색 진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아이들은 이를 매니큐어처럼 손톱에 발랐다. 족제비싸리는 한국 근대화의 증인이다. 황폐한 땅을 되살리고, 사람들의 생활을 도왔다. 산림이 울창해지며 과거만큼 주목받진 않지만 여전히 다재다능한 역할로 빛이 나는 식물이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