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법·돈’ 영풍家 경영권 분쟁, ‘승자의 저주’ 빠져드나

송응철 기자 2024. 10.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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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누가 이겨도 회사는 오랜 후유증 불가피할 듯
“결국 사모펀드·금융사만 이익” 분석도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영풍가(家)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분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놓고 장씨 집안과 최씨 집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다. 두 집안의 경영권 분쟁은 크게 세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론 확보를 위한 '명분 싸움'과 상대방의 위법성 입증을 위한 '법률 다툼',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쩐의 전쟁' 등이 그것이다.

(왼쪽부터)장형진 영풍 고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뉴스뱅크

치열한 '명분 싸움'과 '법률 다툼'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한 이래 70년 이상 두 집안의 공동경영 체제가 유지됐다. 비철금속제련 부문 세계 1위이자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려아연의 경우에는 장씨 일가가 소유하고, 최씨 일가가 경영하는 구조로 운영됐다.

이런 관행은 최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에 취임한 2022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 회장이 그해 8월부터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 및 매각 등의 방식을 통해 한화와 LG, 현대차 등을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분쟁 초기만 해도 장씨 집안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1.02%로, 최씨 일가(15.35%)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우군 확보 작업 이후 고려아연에 대한 두 집안의 지배력은 비등해졌다.

그사이 두 집안은 크고 작은 다툼을 반복했다. 특히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때부터 고려아연을 차지하기 위한 두 집안의 명분 싸움이 본격화됐다. 영풍·MBK는 이번 경영권 분쟁의 목적이 고려아연 경영 정상화라고 밝혔다. 최 회장이 고려아연을 사유화하기 위해 무분별한 투자를 단행하는 등 전횡을 저지르면서 기업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장 고문 측은 최 회장이 주도한 투자처 38곳 중 30여 곳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영풍·MBK가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미국 폐전자제품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5819억원에 인수하고, 최 회장의 중학교 동창인 지창배 회장이 설립한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약 5600억원을 투자한 점 등을 들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장씨 일가의 경영 능력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그동안 영풍이 환경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 왔고, 대규모 적자로 인원 감축을 진행하는 등 경영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도 했다.

최 회장 측은 MBK파트너스를 '약탈적 자본'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투자수익 확보를 위한 독단적인 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한 뒤 중국 등 외국 자본에 재매각할 경우 국가기간산업 및 이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장 고문이 9월13일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다고 밝힌 이후부터는 법률 다툼이 촉발됐다. 우선 고려아연 계열사인 영풍정밀은 장 고문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공동대표 2명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사외이사 3명이 주주총회 특별결의 없이 고려아연 지분 매각 결정을 내린 것은 배임이라는 취지다.

여기에 맞서 영풍도 9월25일 최 회장과 노진수 전 고려아연 대표이사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 고소했다. 이그니오홀딩스 인수와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대한 투자 결정, 최 회장 친인척 소유로 알려진 씨에스디자인그룹(현 더바운더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고려아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해 달라는 게 영풍의 요구다.

영풍·MBK는 또 고려아연을 상대로 법원에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취득은 배임이라는 논리를 들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소송을 재차 제기하고, 자사주 공개매수에 찬성을 결의한 이사들을 형사 고소했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주총 결의 없이 위법하게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시사저널 최준필

분쟁 향방 결정지을 '쩐의 전쟁'

영풍가 경영권 분쟁은 '머니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상태다. 최 회장이 10월2일 영풍·MBK의 공세에 맞서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3조1000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다. 이로써 두 집안의 경영권 분쟁의 향방은 '쩐의 전쟁'을 통해 결론 나게 됐다.

10월8일 현재 영풍·MBK와 최 회장·고려아연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가는 83만원으로 동일하다. 당초 영풍·MBK의 공개매수가는 66만원이었다. 이후 MBK·영풍이 공개매수가를 75만원으로 끌어올리자 최 회장도 83만원까지 올렸다. 여기에 맞서 MBK·영풍도 같은 액수로 공개매수가를 증액했다.

최 회장도 공개매수가를 재차 상향하면서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MBK·영풍의 공개매수 종료일이 10월14일로, 고려아연(종료일 23일)보다 일주일 먼저 마무리된다. 주주로서는 같은 가격이라면 먼저 종료되는 MBK·영풍의 공개매수에 응하는 게 확실한 차익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고려아연도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올릴 여력이 있다며 일전을 불사할 태세를 보였다. 실제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 자기자금에 차입금을 더해 2조7000억원의 현금을 준비한 상태다. 여기에 금융권 대출을 통해 50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를 약 95만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생겼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월8일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대한 엄정한 관리·감독과 즉각적인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를 지시한 것이다. 상대방 공개매수 방해를 목적으로 한 루머나 풍문 유포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금감원도 이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와 관련해 소비자경보 '주의' 등급을 발령했다.

이를 의식한 듯 MBK파트너스는 이 원장 발언 다음 날인 10월9일 최 회장 측의 추가 인상 여부와 무관하게 공개매수가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추가적인 공개매수가 경쟁은 고려아연의 차입금 증가를 유발, 기업·주주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과열 경쟁 대가는 고려아연에

이미 재계에서는 공개매수가 경쟁 과열로 '승자의 저주'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자사주 공개매수로 인한 자기자금 소진과 차입금 증가 등으로 고려아연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해 고려아연을 품에 안게 되더라도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고려아연의 재무 부담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고려아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차입금 규모는 각각 2조1277억원과 1조4107억원이었다. 여기에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한 단기 차입금 2조1635억원과 기업어음 발행으로 조달한 4000억원을 더하면 총 차입금 규모는 4조원까지 증가했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로만 매년 1500억원 이상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고려아연은 공개매수한 자사주 18%를 전량 소각한다는 입장이다. 소각이 이뤄지면 지난 6월말 기준 9조7590억원인 자본 총계는 7조원 정도로 축소된다. 이처럼 부채 증가와 자본 감소가 동시에 이뤄지면 부채비율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서 재무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고려아연의 신사업 투자에 제동이 걸리면서 미래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해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총 16조7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중 11조8000억원은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와 자원 순환, 이차전지 소재 등을 세 축으로 한 신사업에 대한 투자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공개매수 경쟁 과열로 발생한 부담 대부분을 고려아연이 떠안는 구조"라며 "장 고문과 최 회장 중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고려아연은 오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전주(錢主) 역할을 한 사모펀드나 금융사 등만 이익을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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