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필름만 붙여도 차내가 시원해진다..현대기아, 나노 소재 기술 공개
“신차 썬팅하듯이 차량 유리에 나노 기술이 적용된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을 시공한 결과 복사 냉각 효과로 여름에 차내 온도를 7도 이상 낮췄습니다 수 있습니다. 이미 이중 접합유리 사이에 이 필름을 적용해 테스트하고 있어 이르면 1,2년 내에 신차에 이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 겁니다. 필름 가격도 1 ㎡당 5만원 정도라 상용화에 문제가 없습니다. “
20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현대기아, 나노 테크데이 2023'에서 만난 현대기아 남양연구소 선행기술원 소속으로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을 개발하고 있는 이민재 책임 연구원의 말이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 이렇게 작은 크기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배열을 제어해 새로운 물성을 지닌 소재를 만드는 것을 나노 기술이라 부른다.
현대기아는 이날 미래 모빌리티의 근간이 될 나노 신기술 6가지를 공개했다.
① 손상 부위를 스스로, 반영구적으로 치유하는 '셀프 힐링(자가치유) 고분자 코팅'
② 나노 캡슐로 부품 마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③ 자동차와 건물 등 투명 성능 요구되는 모든 창에 적용 가능한 '투명 태양전지'
④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자랑하는 모빌리티 일체형 '탠덤(Tandem) 태양전지'
⑤ 센서 없이 압력만으로 사용자의 생체신호를 파악하는 '압력 감응형 소재'
⑥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투명 복사 냉각 필름' 등이다.
나노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일상 생활에서 편리하게 쓰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기아는 이르면 2,3년 후에는 도장 공정에도 나노 코팅 기술을 적용한다. 이럴 경우 범퍼나 도어 같은 곳에 작은 긁힘이 생기더라도 셀프 힐링 기술 덕분에 상온에서 한 두시간 이내에 곧바로 원래 상태로 복원이 가능하다.
출퇴근 같은 20km 정도 단거리 주행이라면 전기차 충전도 필요가 없다. 차체 보닛과 천장에 높은 효율의 탠덤 태양전지를 적용해 자체 생산한 전기로 출퇴근 주행이 가능해서다.
물론 이런 신기술을 상용화하려면 수 년, 아니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나노 기술이 실제 적용될 경우 자동차 산업에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초기 조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나비 효과(The Butterfly Effect)'에서 착안해 '나노 효과(The nano effect)'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모빌리티 산업에서 소재 단계에서의 기술력이 완제품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6개의 나노 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을 별도 전시 공간에서 직접 체험해봤다.
현대·기아는 1970년대부터 소재 연구를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첨단 소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갖추고 대규모 투자와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선행기술원장 이종수 부사장은 “소재는 세상 모든 모빌리티의 출발점이라 전동화, SDV,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혁신 역시 소재라는 원천 기술이 뒷받침돼야 완벽한 구현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소재 단계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면 부품이나 완제품이 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으며, 최적의 소재가 다양한 개별 기술들과 결합했을 때 전체적인 완성도 또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
■ 자동차 상태를 자동 보존하는 나노 코팅 기술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은 차량의 외관이나 부품에 손상이 났을 때 스스로 손상 부위를 치유하는 기술이다. 상온에서 별도의 열원이나 회복을 위한 촉진제 없이도 두 시간여 만에 회복이 가능하고 반영구적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은 셀프 힐링 소재가 코팅된 부품에 상처가 나면 분열된 고분자가 화학적 반응에 의해 맞닿아 있던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상온에서 자연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기존 것과 차별점이다.
셀프힐링 고분자 코팅을 총괄하는 여인웅 책임연구원은 “우선 카메라와 라이다 렌즈 표면에 나노 고분자 코팅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수 년내 고분자 코팅을 도장 도료나 외부 그릴에 접목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도장 표면의 긁힘을 스스로 치유해 자동 복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은 셀프 힐링의 또 다른 방식인 나노 캡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확장해 개발된 스핀 오프(spin-off, 파생적으로 발생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부품에 저 마찰과 내마모성을 부여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킨다. 나노 캡슐이 포함된 고분자 코팅을 부품 표면에 도포하면 마찰 발생 시 코팅층의 오일 캡슐이 터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윤활유가 흘러나와 윤활막을 형성하는 원리다.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담당 김보경 책임연구원은 “오일 캡슐 기술은 액체와 고체 윤활제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것이 특징”이라며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윤활 효과를 수행한다는 강점도 있어 자체 시험 결과, 부품에 도포된 오일 캡슐 코팅은 부품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전부 마모되지 않고 윤활 기능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발열과 마찰이 큰 차량의 핵심 동력 전달 부품에 적용돼 내구성과 효율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전기차 모터와 감속기어의 회전량 손실을 줄여 전비 개선을 도모하고 부품 수명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현대·기아는 엔진의 구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드라이브 샤프트(Drive Shaft)에 이 기술을 적용해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나노 소재 기반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
전기차 시장에선 주행 가능 거리 확대와 충전 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현재의 전기차는 배터리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각종 전자 장치의 증가로 전력 사용량이 많아져 에너지 효율 향상이 큰 과제다.
이날 공개한 나노 소재 기반의 태양전지는 전동화 차량은 물론 건물 유리창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어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기술로 꼽힌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태양전지는 불투명한 실리콘 소재라 건물의 창문이나 차량의 유리에 적용할 수 없었다. 이날 공개한 '투명 태양전지'는 페브로브스카이트(Perovskite) 소재를 이용한 태양전지 기술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효율이 높아 태양전지로 제작했을 때 발전효율이 실리콘 태양전지 대비 3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도 이 소재를 활용한 태양전지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기아는 기존 셀 단위(1㎠) 소면적 연구에서 벗어나 대면적(200㎠ 이상)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모듈 단위로 커진 상황에서도 1.5와트(W)급 성능을 보이는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한 것은 세계 최초다.
투명 태양전지 개발 담당 기초소재연구센터 이병홍 프로젝트 리더(PL)은 “기존 불투명 실리콘 태양전지는 전동화 차량의 지붕 위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돼 왔지만 투명 태양전지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며 “차량의 모든 글라스에 적용돼 더 많은 발전량으로 전기차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고 건물의 창문을 대체해 에너지 소비를 절감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태양전지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낮은 효율이 최대 단점이다. 현대차·기아는 실리콘 태양전지 위에 차세대 태양광 소재인 페로브스카이트를 접합해 만든 '탠덤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두 개의 태양전지를 겹쳐서 제작하면 서로 다른 영역대의 태양광을 상호 보완적으로 흡수해 35% 이상의 에너지 효율 달성이 가능하다. 현재 일 평균 태양광 발전만으로(국내 평균 일조량 4시간 기준) 20km 이상 주행거리 확보가 목표다.
탠덤 태양전지 담당 권정 책임 연구원은 “자체 시험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30% 이상 에너지 효율을 기록했다”며 “전기차의 후드, 루프, 도어 등 태양광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는 부위에 적용하면 일상 주행이 가능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동차 소비전력을 낮추고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어 주는 나노 소재 기술
이날 공개한 ‘압력 감응형 소재’는 별도의 센서 없이 소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전기 신호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자동차의 경우 발열시트 폼(foam)을 적용하면 탑승자의 체형 부위만 정확하게 발열이 가능하다. 필요하지 않는 부위의 발열을 억제함으로써 소비전력 절감을 돕고, 전동화 차량의 경우에는 추가 주행거리 확보가 가능해진다.
소재 개발의 핵심은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 Tube, CNT)다. CNT는 수 나노에서 수십 나노미터 지름을 가진 탄소 집합체다. 튜브 모양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가볍고 튼튼하며 전기전도도 및 열전도도가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시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면 탄소나노튜브의 접촉이 증가해 저항이 줄어들고 전류량이 늘어나 해당 부위에 발열이 발생하는 원리를 활용했다
탄소나노튜브 담당 윤덕우 PL은 “시트 폼의 유연한 물리적 성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용액을 최대한 얇게 코팅해 반복되는 마찰에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구성도 확보했다”며 “별도의 센서 없이 탑승자의 정확한 자세 감지가 가능하고, 호흡, 심박수와 같은 생체 신호를 감지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부가 서비스까지 활용 범위는 자동차를 넘어 일상 생활까지 광범위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물체가 복사열을 흡수하는 양보다 방출하는 양이 많아 온도가 내려가는 현상을 복사 냉각이라고 말한다.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은 차량의 유리에 부착돼 더운 날씨에도 별도의 에너지 소비 없이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낮추는 친환경 기술이다.
차량의 글라스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양산성을 고려해 대면적화까지 성공한 사례는 현대차∙기아가 세계 최초다. 다층 필름 구조로 이뤄진 이 소재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과 같은 열을 차단하고 효과적인 복사 냉각을 위해 원적외선대의 열을 방사한다.
기존 썬틴용 틴팅 필름이 외부의 열 차단만 가능한 반면,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은 열이 외부로 방출되는 기능이 추가돼 에어컨 사용을 줄여 탄소 저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전동화 차량을 비롯한 PBV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는 유리 면적이 넓어지는 추세라 이 기술의 활용도는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름철 냉각이 중요한 건물이나 태양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추가적인 에너지 사용 없이 효율적인 열 관리와 탄소저감이 가능할 전망이다.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을 개발하는 이민재 책임연구원은 “자체 시험 결과 복사 냉각 필름을 부착한 차량은 기존 틴팅 보다 최대 7℃가량 실내 온도가 낮아졌다”며 “땡볕에 차량을 주차해도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여름철 에어컨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탄소배출량을 0.3~0.8% 저감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김태진 에디터 tj.ki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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