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한국 대학…유학생 없으면 재정 구멍[외국인 300만 시대③]

2024. 10. 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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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2024 국제하계대학(ISC) 입학식 및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외국인 학생들이 응원을 배우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풍경1.
평일 오후 강원도 속초관광수산시장 튀김골목. 피부색이 짙은 한 남성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오징어 순대 맛보세요”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다. 맞은편 닭강정 집에서도 곱슬머리의 젊은 남성이 능숙하게 호객 행위를 하며 손님들에게 메뉴판을 건네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과 네팔,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대학생들이다. 오전 시간엔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점심 이후 시장으로 넘어와 일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풍경2.
올해 9월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배달대행 기사로 불법 취업한 외국인 유학생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대부분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학 비자나 구직 비자로 체류하고 있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외국인이다. 오토바이 등을 이용해 배달대행 기사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비자를 가진 외국인의 배달업 취업은 불법이다. 하지만 배달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오토바이 운전 가능’ 등의 조건이 확인되면 외국인 유학생이 투입되고 있다. 배달업 종사자들 사이에선 “이들이 국내 교통 법규에 익숙하지 않다”며 우려와 불만이 거세다. 관련 커뮤니티에선 ‘외국인 배달원 신고하는 방법’ 등의 게시글이 공유되고 있다.

풍경3.
지난해 11월 경기도 오산 한신대 부설 한국어학당.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 23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외국인등록증 수령을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가야 한다’는 학교 측 전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는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교직원들은 건강 문제를 호소한 1명을 제외한 22명을 미리 예매해둔 귀국행 비행기에 태웠다. 학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강제로 집단 귀국시켰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대학 측은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사실을 통보하면 학생들이 도망쳐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한국 정부가 딜레마에 처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대학 재정난 문제를 돌파해 보자는 취지로 외국인 유학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지만 국내에 입국한 뒤 잠적해 불법 취업 근로자로 변모하고 있는 유학생들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에 따르면 일반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중도탈락률은 2019년 4.7%에서 2023년 7.1%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문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중도탈락률은 14.4%를 기록했다. 중도탈락한 외국인 학생의 경우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등록금 15년째 동결, 외국인 지갑 터는 대학

2000~2008년 대학 등록금의 연평균 인상률이 6%가 넘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등록금 부담을 줄여달라는 외침에 정치권에선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왔고 정부는 2009년부터 각 대학에 등록금을 동결하도록 권고했다. 2012년 이후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놨다.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동결을 강제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대학 수입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등록금에서 나오지만 그사이 소비자물가는 30% 넘게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등록금은 감소한 셈이다. 

입학생 수도 줄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1984년 1384만7000명이던 국내 학령인구(6~21세)는 올해 714만7000명으로 감소했다. 2060년에는 377만 명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학생 수 자체가 줄자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운 지방 대학이 생겼다. 수도권 대학은 정원 규제를 받아 입학생 수를 늘릴 수 없다. 

출구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은 ‘정원 외’로 학교에 들어올 수 있다. 등록금 인상에도 제한이 없다. 고등교육법상 물가상승률 법정 상한 규제를 받지 않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대학 재정난을 해소할 대안으로 채택된 배경이다. 

실제 대학교육연구소 분석 결과 193개 국·공·사립 일반대·산업대·교육대 중 2023학년도 학부 등록금을 인상한 곳은 17곳(8.8%)에 불과했지만 대학원이나 정원 외 유학생의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69곳(35.8%)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인천대 1년 등록금은 400만원(인문대)인데 2019년 인천대 한국어학당 1년 등록금은 480여 만원으로 조금 더 많이 받는 식으로 운영한다. 

여기에 정부가 빗장을 활짝 열었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2027년까지 30만 유학생을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스터디 코리아 300K)을 내놓았다.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 대학에 입학할 때 제출해야 하는 한국어 성적 기준을 완화하거나 공인 시험 점수가 아니어도 한국어 교육기관 수업 이수 증명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도 일단 받는다는 얘기다. 

또 불법 취업·체류를 막기 위해 깐깐하게 만든 재정 능력 심사 기준도 낮추고 유학생 아르바이트 허용 시간도 주 25시간에서 30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졸업 후에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영주·귀화 비자 취득까지의 절차도 간소화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에 공부하러 온 외국인 유학생은 올해 처음 20만 명을 넘었다. 정부가 유학생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25년 만이다. 지난해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의 보고서를 보면 전국 대학의 입학정원은 47만 명이다. 단순히 비교하면 한국에 들어온 유학생이 한 해 신입생의 절반 가까이 되는 셈이다.

유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은 한양대(8264명)였고 경희대(6929명), 연세대(6621명)가 뒤를 이었다. 유학생 중 69.8%가 학위 과정생이었고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생 등 비학위 과정 유학생이 30.2%였다.

한양대·경희대·연세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의 경우 중국·미국·일본 등에서 유학생이 넘어왔다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방 대학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강원도에 있는 경동대는 네팔(639명), 베트남(299명), 방글라데시(163명) 등이 주류였다. 이 대학은 지역 관광산업 및 유학생 중심으로 특화된 글로벌캠퍼스를 강원도 고성에 따로 만들기도 했다.

실제 올해 외국인 유학생 90.8%는 아시아 지역 출신이었다. 다음은 유럽(5.1%), 북미(2%), 아프리카(1.4%), 남미(0.5%) 등이었다. 국적별로는 중국(34.5%)이 가장 많았고 베트남(26.8%), 몽골(5.9%), 우즈베키스탄(5.8%)이 뒤를 이었다. 비수도권 외국인 유학생은 2022년 41.7%에서 올해 44%로 늘어났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유학생 불법 고용 기승

“아르바이트 등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학생이 많아요.”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어요.”

최근 한국 대학에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보다 일하러 오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대부분 베트남·우즈베키스탄·몽골 등 아시아 국적이다. 유학 비자로 체류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2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입을 벌어들이는데 이는 본국 공무원이나 대기업 초봉의 3배 이상 되는 수준이다. 

지방 상인들과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상인들은 “외국인 유학생이 없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1만원이 조금 넘는 시급으로는 한국인 대학생 인력을 고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조리와 홀서빙 및 카운터 각 분야에서 자영업자들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20년 43.6%·45.3%, 2021년 45.4%·44.5%, 2022년 52%·55.9%로 매년 증가했다.

다만 유학생의 취업은 불법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유학생 비자(D2·D4)를 소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아르바이트를 금지하고 있다. 지도교수의 추천(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을 받은 경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단순노무 등 시간제 취업이 가능하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취업 허가를 신청하면 한국어 능력과 대학 유형에 따라 최대 주 30시간까지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유학생 시간제 취업 허가를 받은 유학생은 2만1437명에 그쳤다(법무부 통계). 반면 외국인 유학생 불법 취업 적발 건수는 2021년 407건, 2022년 948건, 2023년 1306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김지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유학생들은 자국에 비해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로 인해 학업에 몰입하기 어렵고 중도탈락의 가능성도 커진다”며 “학생의 기초 학력과 한국어 능력 부족 등도 부적응의 원인으로 꼽힌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국가 지원금 확대가 답?

대학 재정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국가 지원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처럼 대학교육 복지로 접근해 대학의 재정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며 “국가 장학금 대상을 확대하고 무이자 상환 등의 조건으로 지원하는 것 등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대학이 살아야 지방 도시가 살 수 있다”며 “정부 지원금이 대학 예산의 5%도 안 되고 규제가 많다.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유럽, 미국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교육교부금이 고등교육에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중등 교육 지원에 쓰이는 교육교부금은 1972년 도입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그해 걷힌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조성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교육교부금은 향후 4년간 연평균 5조원씩 늘어날 전망이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교육교부금이 늘어나면서 ‘넘쳐나는 곳간’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을 많이 유치하고 우수 인재들을 한국의 인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학교 졸업 후 한국에 계속 체류를 희망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실제 취업까지 이어지는 데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2022년 외국 유학생 졸업자의 국내 취업 비율은 8.2%(2만7321명 중 2253명)로 본국 귀국(28.6%), 국내 진학(11.0%) 등 조사 항목 중에서 가장 낮다. 대학이 유학생 유치에 급급해 한국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졸업증을 쥐어주는 사례가 적지 않고 유학생 전공 중 67%가 인문사회 분야여서 생산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공과 거리가 먼 탓도 있다. 현장 투입 가능한 전문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한 법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보, 입학 지원과 사정, 학사제도 등의 근거가 되는 별도의 법과 제도가 미비한 것. 예컨대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한 홍보비나 수수료 지출은 사립학교법과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반하기 쉽다. 법률상 특례로 대학의 권리를 규정하고 지원의 근거를 갖추는 등의 논의를 해야 한다.

정부 정책의 통일성도 필요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20년에 낸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실태 분석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교육부는 공격적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중점을 뒀으나 법무부는 불법 체류자 입국 금지와 노동시장 보호 등에 초점을 둔 방어적 태세를 정책 목표의 기본 방향으로 두고 있다”며 “동일 정책에 대한 주무 부처 간 목표 불일치가 발생하고 대학 현장에서는 실무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성이 없는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유학생 체류 문제를 관리하고 있는 점도 고민할 과제다. ‘불법체류율’이 10%를 넘는 등 기준을 벗어나면 정부가 유학생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을 제한해 대학은 불법체류율 관리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  

실제 인천대는 2019년 한국어학당에 다니던 베트남 국적 어학연수생 161명과 우즈베키스탄 출신 어학 연수생 3명 등 총 164명이 잠적하는 사태를 겪으며 2021년 어학연수생 비자 발급 제한 대학으로 지정된 바 있다. 당시 인천대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던 상황인 것. 2017년 160명 정도였던 유학생은 2018년 951명, 2019년 1892명으로 늘어났다. 현재는 528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잠적하는 학생들을 찾기 위해 학교가 직접 나서기 힘들다”며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잠시 보관하면 출입국관리법에 위반되고 집을 찾아가면 주거침입죄에 걸린다”고 토로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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