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고금리 시대 '부채'의 두 얼굴

[재무제표 읽기] 성격도 규모도 다른 기업의 빚, 재무제표에 다 나온다

많은 투자 전문가들은 '부채'가 해당 회사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항목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모름지기 투자자라면 관심 있어 하는 기업이 지금 정확히 얼마의 빚을 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그 기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빚(부채). / ChatGPT4

빚 없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을까? 사실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영업이익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빚 대신 연이어 투자를 받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다. 스타트업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투자는 결국 이익을 나눌 주주를 늘리는 꼴이니, 경영권 방어 뿐만 아니라 배당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공가능성이 100%에 가까운 사업이라면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부채가 현명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예외없이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사채, 유상증자, 차입금 등 다양하다. 하지만 자본(투자)과 부채 어느 쪽을 통해 조달하느냐에 따라 성공의 질이 달라진다. 초보 경영자라면 우선은 이자만 내는 ‘남의 돈’이 편해 보이지만 시중 금리가 높아지면 곤란해진다. 현재 대출이자가 4~5%가 평균인데 재무 건전성이 나빠지면 이자는 10%까지 치솟는다.

전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빚을 어깨 위에 쌓인 ‘피로’에 비유하곤 하는데 만약 그 무게가 점점 커진다면 걷기 힘들어 작은 장애물에 넘어질 수 있다. 그 결과는 크게 다쳐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부채 때문에 무너진 기업의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 때 한국을 대표하는 타이어 전문 기업이었던 금호타이어는 2023년 기준 부채총계가 약 3조5000억원으로 부채비율 228%였다. 2018년 회사가 중국 상웨이코리아로 회사가 넘어갈 당시 부채비율 역시 214%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매년 수조 원의 매출액을 올리고도 빚을 청산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과도한 부채는 회사 존립 위협할 수도 있다...딜라이브의 '이자비용'

부채는 재정적 불안정, 자금 유동성의 문제, 투자 제한 등의 여러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아픔은 ‘은행 이자’다. 유선방송 사업자로 한때 서울경기권을 주름잡던 (주)딜라이브가 2023년 한 해 지불한 은행 이자가 179억원에 달했다.

2023 (주)딜라이브 감사보고서. / DART

딜라이브 자산총계가 6210억원이고, 영업수익 4341억원을 기록했지만 장∙단기차입금 총액이 3194억원에 달해 은행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실제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50억원이지만 당기순손실 376억원에 달했다. 바로 은행이자 등 금융비용 때문이다.

부채는 호경기를 도래해 갚아낼 수도 있지만 ‘무리하게 쓴 빚에 기둥뿌리가 흔들린다’는 말처럼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부채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부채비율 산식을 살펴보자. 부채비율은 매우 단순한 계산이다. 내 돈(자본)과 남의 돈(부채)의 크기를 비교한 비율에 불과하다. 다만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이는 내 자본의 2배나 되는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으니 외부 압력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부채비율이 높다고 모두 '나쁜 회사'는 아니다? 코스모신소재의 '빚'

기업이 조금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면, CEO보다 더 불안해 하는 것이 채권자다. “○사장, 회사 그렇게 운영해서 내 돈 떼이는 거 아냐”라는 식의 채권자 압박이 시작되는 순간 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신용은 추락한다.

그렇지만 단지 부채비율이 높다고 ‘나쁜 회사’로 속단할 필요는 없다. 손익이 좋고, 시장성 좋은 신사업을 위한 대규모 CAPEX(시설투자) 투자를 위해 외부에서 조달하는 단기 부채는 사업에 대한 강한 확신을 뜻하기 때문이다.

2021년 2차전지 관련 사업으로 사업 전환을 하던 코스모신소재의 재무상태표 부채항목을 보면 단기차입금, 전환사채, 장기차입금 등 온갖 부채가 등장한다.

회사가 일시에 모든 자금조달 방법을 활용해 유형자산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이다.

‘과하게 빚을 땡긴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코스모신소재는 ‘양극활 물질 부문에서만 매출이 1640억원에서 5004억원으로 2배 증가했다. 이는 빚 내서 지은 공장이 사업의 효자가 된 케이스다.

좋은 빚도 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매입채무'와 '선수금'

2023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보고서. / DART

또 투자자는 빚의 성격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매입채무'와 같은 거래처 관계에서 생긴 빚과 '선수금'처럼 미리 받은 주문에 대한 ‘의무사항’을 표시한 부채는 좋은 빚이다. 최근 해외 수출로 급성장 중인 방산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채비율은 공식상 317%에 달한다. 금호타이어보다 높다.

이 회사의 부채총계는 14조600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펴보면, 미리 주문을 받은 '선수금'이 7조원이 넘는다. 현금과 보유한 금융자산까지 계산하면 실질 부채는 약 43%에 불과하다. 게다가 9조3000억원의 매출액과 6911억원의 영업이익까지 고려한다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채는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다.

우리 생각 속에 빚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 부채'는 좀 다르다.

빚을 낼 수 있는 신용까지 자산으로 치기 때문이다.

어려운 낌새만 보여도 득달같이 찾아오는 빚쟁이가 있다는 점은 개인이나 회사나 똑같다.

다른 점은 개인의 경우 누가 얼마 빚지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알기도 힘들다. 하지만 기업의 빚은 재무제표에 다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