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생일잔치’에서 ‘인디신 오아시스’로…“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
생일잔치로 시작해 인디신 축제로
무대 사라진 음악인들의 오아시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의 확인”
홍대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다양성 살려 음악의 위로 전할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많이 축하해주세요!” 대선배 김창완이 화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맙다는 그 말밖에. 힘들어도 말달리자. 세상 파도 재워주는 너”. ‘경록절 축가’다.
해마다 찾아오는 2월 11일. 이날 저녁이 되면 홍대 앞은 ‘축제’가 시작된다. 2005년 28번째 생일파티가 시작이었다. 작은 치킨집에서 열린 파티를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었다. 2016년엔 홍대 앞 최대 라이브 클럽 무브홀로 장소를 옮겼다. 코로나19가 도사리기 직전 마지막 오프라인 생일파티를 찾은 사람은 무려 800명이 넘는다. 아니, “800명까지 세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맥주 100만cc, 칵테일 1000인분, 고량주 100병, 막걸리 100병, 사케 100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일파티가 끝나는 시간은 ‘지옥까지’. 주인공의 ‘한결같은 지옥 사랑’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2월 생일파티는 18시간 1분 동안 온라인에서 열렸다.
“이토록 유난스럽게 생일잔치를 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저밖에 없을 거예요. (웃음)”
‘홍대의 터줏대감’, ‘인디신의 핵인싸’ 한경록(45)의 생일잔치는 이렇게 ‘홍대의 3대 명절’이 됐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이자 주문처럼 ‘록앤롤’(Rock and Roll)을 외치고 다니는 ‘캡틴락 컴퍼니의 수장’. “친구가 좋고, 음악이 좋아” 시작한 생일파티는 지난 3년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무대가 간절한 이들에게 나타난 ‘인디신의 오아시스’다.
■ “무대는 음악인의 정체성”…뭐라도 해보자 싶어 커진 경록절
‘전례없는 감염병’은 무대를 차단했다. 우리만의 밴드 문화가 자생한 홍대는 코로나19와 함께 무너졌다. 수많은 인디밴드가 태어난 클럽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음악인들은 음악을 잃었다. 최근 서울 마포음악창작소에서 만난 한경록은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팬데믹은 예술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시국에 꼭 음악을 해야겠어?’, ‘그렇게 놀아야해? 즐겨야해?’라는 시선을 보냈죠. 하지만 음악에도 여러 기능이 있어요. 음악이야말로 위로와 희망이 되고, 치유의 힘을 줘요. 그 힘이 알게 모르게 어마어마해요.”
누군가에겐 ‘생계’이고 ‘삶’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선 “유흥”이라고 받아들였다. ‘경록절’은 음악을 놓아야 하는 상황 앞에 놓인 음악인들을 위한 무대가 돼줬다.
“대부분의 인디밴드가 밴드만 해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나는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죠. 무대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이에요. 무대가 없으면 정체성을 잃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판이 커지게 됐어요.”
올해 경록절은 무려 3일간 108팀의 음악인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온라인 공연을 열었다. 대선배 최백호 한영애부터 인디신을 이끈 중견 밴드, 다소 생소한 이름의 밴드도 함께 했다.
지금까지 이런 생일파티는 없었다. 자신의 생일에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 사람도 흔치 않다. 급기야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규모”까지 이르렀다. 온라인 ‘경록절 공연’은 생중계 송출 비용에 수수료, 인건비도 만만치 않았다. 규모가 커져 협찬을 받았고, 이번 생일엔 크라우드 펀딩으로 1247만 원을 모아 무대를 꾸몄다.
한 사람의 생일잔치는 음악인들의 ‘소통의 장’이자, ‘생존 무대’였다. “한 땀 한 땀 수공예품처럼 만든 페스티벌”이었다. 결국 경록절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 특별상까지 받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좋아서”다. 세상이 기대하는 ‘거창한 의미’도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7년 동안 음악을 해왔는데, 이 정도 됐으면 뭔가는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해요. 적어도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주고, 소주 한 잔이라도 사주고, 후배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크라잉넛은 27년산 블렌디드 위스키, 캡틴락은 싱글몰트 위스키”
크라잉넛이 세상에 나온 건 1993년이다. 동부이촌동에서 함께 자란 다섯 명의 악동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록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음악은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우리도 좋아하는 것, 즐거운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2년 뒤 1995년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 오디션에 합격했다. 전설의 첫 앨범이 그 무렵 태동했다. 1996년 밴드의 히트곡 ‘말 달리자’가 등장했고, 1998년 최초의 인디앨범에 이 곡이 담겼다. “억눌린 시대와 도사리는 불안”, “금융위기가 잠식한 어두운 사회 분위기에 대한 탈출구”가 된 곡이었다.
한경록과 크라잉넛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는 음악인이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카세트 테이프 시절이던 때에 등장해 CD를 거쳐 음원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모두 겪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연 문화가 바뀌는 것도 함께 했다. 인디밴드로 27년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데뷔 초엔 “노동자 계급도 아닌 너네가 무슨 펑크냐”며 “흉내만 낸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서양이 만든 펑크 프레임에 갇혀야 하는 것이 펑크라면 우린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조선펑크’라는 독창적 장르가 만들어진 이유다. 120여 개의 자작곡을 써내는 동안 “슬럼프도 있었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던 때”도 있었다. “관계에 지칠 때”도,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할 때도 있었다. 수많은 히트곡도 나왔다. 한경록은 “27년이 됐지만, 아직은 청춘”이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긴 시간이 지나니 “이제야 우리 노래에도 자아가 생겼다”고 한다.
“소소하게 알려졌지만, 슈퍼스타와 같은 삶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인디밴드로 자부심과 당당함은 있었지만, 특권의식도 없었고요. 우리끼리 알뜰하게 꾸려가다 보니 허세를 부릴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밟아온 동력이 자립심을 키웠던 것 같아요.”
한경록은 크라잉넛 활동 중 ‘록앤롤의 캡틴’이 되겠다며 2017년 캡틴락 컴퍼니를 세웠다. 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바로 ‘캡틴락’이다. “크라잉넛은 크라잉넛대로 잘 가고 있으니, 나 혼자일 땐 어떤 색깔이 나올까 궁금했어요. 크라잉넛이 27년산 블렌디드 위스키라면, 전 싱글몰트 위스키가 돼보자 싶었어요.”
캡틴락 컴퍼니에서 한경록은 솔로 가수, 기획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그는 “여기에선 내가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고 말했다. 호기심과 창작을 향한 열정이 끊임없이 샘솟는다.
“굳이 따지자면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처럼 살고 싶어요. 제가 다빈치처럼 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다빈치가 엄청 많은 걸 했잖아요. 그렇게 재밌는 걸 다 하고 싶어요. 무언가를 창작해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즐거워할 때 저 역시 희열을 느껴요. 그런 작업들을 예술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캡틴락이 태어난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 1세대 인디밴드의 ‘동행의 꿈’…“홍대는 르네상스의 피렌체”
꾸준히 걷고 있는 길 위에서 배운 가치는 ‘동행’이다. 그는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인디신이 다 함께 잘 돼야 우리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후배 인디밴드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지원군의 역할을 하는 이유다. 한경록은 2020년부터 마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마포음악창작소 ‘M인디열전’의 MC로 활약 중이다. ‘M인디열전’에서 맺은 인연들은 ‘경록절’의 초대손님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 달 10일엔 전국 음악창작소 16개 중 14개 창작소가 모여 발매하는 컴필레이션 앨범 기념공연의 MC로 후배들을 이끈다.
그의 모든 활동은 ‘인디음악계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한경록은 “우주가 연결된 것처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캡틴락 컴퍼니는 장르와 경계를 두지 않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모집 중이다. 영역을 확장해 ‘홍대의 다양성’을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고 있다.
“헌팅 포차와 같은 유흥 문화가 있기 전 이곳 홍대엔 분명 우리만의 예술과 문화가 있었어요. 어느날 달라진 홍대를 보는데, 문득 씁쓸해지더라고요. 내가 사랑한 홍대가 이런 곳이었나 싶기도 했어요.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가볼 생각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홍대의 다양한 문화를 되살리고, 록앤롤 시티로 가꿔보고 싶어요.”
한경록과 크라잉넛은 언제나 오늘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는 “지난 27년 동안 먼 미래를 고민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근심, 걱정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잘 되겠지’ 생각해요. 잘 될 테니, 지금은 즐기자고요. 캡틴락의 사훈이 ‘다음에 잘하자’예요. 뻔한 이야기지만, 지금이 모여서 다음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오랜만에 스탠딩으로 열릴 크라잉넛의 공연(12월 17일·홍대 왓챠홀)에서도 ‘다음에 잘하자’며 지금을 어루만진다. 크라잉넛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사실 다 괜찮진 않아. 매번 잘되진 않아. 그게 당연한 거야. 그래, 잘 안 될거야. 그래도 괜찮아. 다음에 잘 하자’. 그런 취지의 위로예요.”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와 고단함을 잠시 내려두라는 크라잉넛 방식의 위로다. 그날이 지나면 새날이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경록은 반짝인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 ‘여전한 청춘’이고, ‘영원한 악동’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서커스 매직 유랑단’)면서도 내일을 향한다. 언젠가 경록절이 되면, “사람들의 꿈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노래에 담아 우주로 날려보내는 것”이 목표다.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그것을 보며, 우리의 꿈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그곳에 한경록이 바라보는 미래가 있다.
“중세시대에 흑사병이 돌고난 뒤, 르네상스가 부활했잖아요. 코로나가 끝나는 날, 우리는 코로나에도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고 기록될 거예요. 마포 홍대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피렌체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 곳에서 음악으로 시대를 위로하며, 희망의 꽃을 피우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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