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다 바라보며 '멍~'…"육아·시험·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휴식"

조아서 기자 2023. 5. 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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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2023 해운대 멍 때리기 대회’ 개최
27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린 ‘2023 해운대 멍 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멍 때리고 있다.2023.5.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부산ㆍ경남=뉴스1) 조아서 기자 = “매일 남을 돌보는 데 시간을 쓰다가 나를 돌아보기 위해 멍 때리러 왔어요”

27일 ‘2023 해운대 멍 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직장 동료 옥정은씨(30)와 임소연씨(27)는 “요즘 불멍, 물멍 등 다양한 형태의 ‘멍’이 있는데 그만큼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라며 ‘멍 때리기’는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린 ‘멍 때리기 대회’는 지난 2014년 서울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부산에서는 올해 처음 개최됐다. 대회에는 총 70팀(100명)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사전 접수한 총 1285팀 중 1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교수, 간호사, 택배기사, 파티시에, 구청장, 수험생, 축구 경기심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은 물론,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힐링’을 필요로 했다.

부산외국어대 교수이자 부산영어방송 기자로 활동하는 태건 스미스씨(40)는 “한국에 온지 16년이 넘었는데 옆에서 지켜 본 한국 사람들은 잘 안 쉰다”며 “덩달아 못 쉬고 있어 쉼이 필요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 함께한 40번 참가자 김성수 해운대구청장 역시 “참가자들 모두 하루하루 복잡하고 바쁜 피로 사회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겼으면 한다”며 “저도 빠듯한 구청장 일정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즐겨 기쁘다”고 소회했다.

27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린 ‘2023 해운대 멍 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다.2023.5.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육아에 지친 어머니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독박유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가했다는 한여진씨(38)는 2살짜리 이란성 쌍둥이의 엄마다. 한 씨는 “8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라 너무 이쁘고 소중하지만 육아가 너무 힘들다”며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단 90분만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본인을 워킹맘이라고 소개한 안정은씨도 “아침에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등교 준비시키랴 매일 같이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있다”면서 “오늘 하루는 아이들과 저에게 평화와 휴식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험에 지친 청소년 참가자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수험생활에 지친 해운대문화여고 고3 서예림·김신비·박선경 양(18)은 “대학 입시 때문에 바쁜 와중에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 왔다. 신청한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 팀이 뽑혀 기뻤다”며 “학교 선생님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어이없어 했다”며 웃었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부산정보고 1학년 최예준 군(16)은 “자격증 시험을 하루 앞두고 공부하기 싫어서 바다도 보고, 멍도 때리러 왔는데 1등을 할 줄 몰랐다”면서 “큰 선물을 받을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1등에게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의 황금 트로피와 상장 등이 주어줬다.

우승자는 구경꾼들의 투표를 반영한 ‘예술 점수’와 심박수 체크로 도출하는 ‘기술 점수’를 합산해서 선정된다.

부기, 김성수 해운대구청장 등 대회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멍 때리기를 하고 있다.2023.5.27/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이날 이색 참가자 ‘부기’는 등장하자마자 많은 시민들의 응원을 받았다. 부기는 “오전부터 남포동에서 인플루언서와 홍보영상을 촬영하고, 부산항 축제 개막식에 참여한 뒤 해운대로 급히 날아왔다. 최근 엑스포 홍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합법적으로’ 쉬기 위해 참가했다”면서 “갈매기와 사람 심박수가 다른데 어떻게 측정할지 걱정”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유쾌한 농담 가운데 ‘웃픈’ 참가 사연을 밝힌 부기처럼 이날 많은 참가자들은 ‘죄책감 없이’ 또는 ‘허락받은’ 휴식을 참가 이유로 밝히기도 했다.

'멍 때리기 대회'를 만든 시각예술가 ‘웁쓰양’은 “한국은 경쟁이 심한 사회라 끊임없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대인들이 한날 한시 같은 곳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면 덜 불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처음 대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할 이날의 90분이 인생의 다음 행로에 좋은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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