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일탈회계는 끝났지만…유배당·지배구조 ‘잔불’ 여전

유배당 계약자 몫·삼성전자 지분 처리 논란 지속…‘계약자 보호·지배구조 개편’ 시험대
[사진=삼성생명]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란이 3년 만에 일단락됐지만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과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금융당국은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게 회계 원칙을 바로잡았다고 평가하지만 수십 년간 사실상 ‘부채처럼’ 관리돼 온 계약자 지분이 자본 항목으로 흡수되거나 회계상 0원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배당·계약자 보호·지배구조를 둘러싼 새로운 쟁점들이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일탈회계 중단으로 돌아간 ‘원칙 회계’…커지는 유배당보험 회계 투명성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은 최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고, 생명보험협회가 요청한 “유배당보험 배당금 지급 의무에 대해 일탈회계를 계속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대해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생명 등 생보사가 그동안 유지해 온 예외적 회계처리 방식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이러한 결정의 근거는 IFRS17이 요구하는 ‘원칙 회계’다. 기준에 따르면 주식·지분에서 발생한 미실현 이익은 처분이나 배당이 구체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보험부채로 인식할 수 없다. 즉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서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평가이익은 “언젠가 계약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채 항목에 올려둘 수 없다는 뜻이다.

삼성생명은 1980~1990년대 판매한 유배당보험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지분을 매입했다. 유배당보험은 보험사가 운용 수익 일부를 계약자에게 배당하는 구조로 설계돼 지분을 처분해 이익이 발생하면 그 일부를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동안 삼성생명은 계열사 지분에서 발생한 잠재 이익 중 유배당 계약자 몫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으로 분리해 관리해 왔다.

국제 기준상 미실현 이익은 자본(기타포괄손익누계액 등)으로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계약자에게 장차 지급될 수 있는 몫”이라는 논리를 들어 이를 부채로 분류했고 금융당국도 일정 기간 ‘일탈회계’라는 예외를 인정해 왔다. 도입 초기 IFRS17에 따른 자본 변동성 확대와 시장 혼선 우려를 감안한 조치였다.

▲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논란이 3년 만에 일단락됐지만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과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지배구조 등은 여전히 진통이 에상된다. 사진은 이찬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 이후다.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 보유 지분율이 금융산업구조개선법상 한도(10%)를 넘어서면서 일정 부분 지분 매각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지분을 팔 계획이 없다고 전제해 온 일탈회계의 명분이 흔들리자 회계기준원과 시민단체는 IFRS 전면 도입 국가라는 위상에 걸맞게 예외를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역시 계도기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IFRS17 아래에서 더 이상 예외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삼성생명은 2025년 결산부터 유배당 계약자 몫을 부채가 아닌 원칙에 따른 방식으로 재분류해야 한다.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쌓아둔 금액은 더 이상 별도 부채 항목으로 표시할 수 없게 되고 전년도 재무제표도 비교 가능성을 위해 재작성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관련 금액을 자본 항목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말 기준 삼성생명 재무제표에서 계약자지분조정 규모는 약 12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주가를 10만원으로 가정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약 16조원에 달한다. 법인세 약 4조원을 제외한 12조원 정도가 자본으로 편입될 수 있다. 이 경우 삼성생명 자본총계는 약 40조9000억원에서 50조원 안팎으로 증가하게 된다. 회계 기준 변경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자본 확충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유배당보험 회계의 ‘가시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유배당 계약자 몫은 다른 보험계약과 섞여 외부 이해관계자가 별도로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회계 구조도 복잡해 시민단체나 투자자, 감사인이 계약자 몫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를 단독으로 추적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앞으로는 유배당보험 계약이 일반 보험계약과 분리돼 재무제표에 표시되고 해당 계약이 회사의 재무상태·성과·현금흐름에 미친 영향도 주석으로 상세히 공개된다. 회계상 예외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가려져 있던 유배당 계약의 실질이 본격적으로 시장의 감시망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0원’ 처리 가능성과 계약자 권리, 삼성전자 지분 지배구조까지 논란 현재진행형

▲삼성생명 회계 기준 변경 이후 배당 관련 집단 소송이나 권리 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일탈회계가 정리되면서 표면적인 회계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유배당 계약자의 권리와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지배구조 문제라는 더 복잡한 쟁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수십 년간 부채처럼 관리돼 온 계약자 몫을 앞으로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여부와 삼성전자 지분이 배당·밸류업·3%룰과 맞물려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여부는 풀어야 할 숙제다.

유배당 계약자 몫의 회계처리 문제를 보면 IFRS17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밝힐 경우 유배당 계약과 관련된 보험부채는 이론상 0원으로 계산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회계 전문가들은 “매각 계획이 없는 지분에 대해 실현될지 불분명한 이익을 부채로 잡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기존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은 자본으로 이동하거나 0원으로 인식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계약자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유배당보험은 ‘운용 수익을 일정 부분 계약자에게 돌려준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판매된 상품이다. 그동안 삼성생명이 계열사 지분 평가이익 중 계약자 몫을 별도 항목으로 쌓아 온 사실 자체가 일종의 ‘잠재적 채무’로 인식돼 왔다. 이런 항목이 회계 기준 변경을 이유로 갑자기 자본으로 흡수되거나 0원으로 표기될 경우 계약자들은 실질적인 권리가 사라진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유배당 계약자 몫을 자본으로 단순 편입하는 것은 계약자·주주·회사 이해관계를 하나의 항목에 뭉뚱그려 놓는 것과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수십 년간 부채처럼 관리해 오던 항목을 갑자기 0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지급 의사가 없다는 신호로 시장에 읽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당 관련 집단 소송이나 권리 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지배구조도 문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대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에 이르는 지배 구조의 핵심 고리다. 그간 단순 투자자산을 넘어 사실상 ‘우호 지분’으로 기능해 왔는데 대규모 매각이 이뤄질 경우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보험업법상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규정은 보험사가 동일 회사 지분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하도록 제한한다. 삼성생명은 총자산과 보유 지분 가치 규모를 감안하면 이 한도를 상당 폭 상회하는 상태다. 그간 3%룰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됐지만 실제 법 개정이나 본격 집행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회계 논란 정리 이후 3%룰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경우 삼성전자 지분 매각 여부는 재차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시민단체 관계자는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은 종결됐지만 앞으로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이 재무제표 어디에, 어떤 논리와 기준에 따라 반영되는지, 삼성전자 지분이 3%룰·밸류업·주주환원 정책과 어떤 형태로 연결되는지에 따라 배당·지배구조·계약자 보호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칫하면 유배당 계약자 몫을 줄이고 지배구조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로 회계 논리가 동원됐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임현범 르데스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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