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때 울고, 실신까지… 아직도 부족한가요”
“입시 현실 외면해선 안 돼” vs “학업성취 떨어졌다는 건 오해”
해직교사 특별채용을 지시한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새 서울시교육감을 뽑는 보궐선거가 2024년 10월16일 치러진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를 위해 후원금을 모은 교사들을 학교로 복귀시킨 것에 대해 “지금도 후회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물러났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계속 거리를 떠돌도록 할 수 없다는 시민사회와 교육계의 염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당시 교육감의 책무였다”는 것이다.
그의 유죄 여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는 것처럼 그의 ‘혁신교육 10년’을 평가하는 시선도 진보 진영에서조차 극과 극이다. 시험에 목매는 교육,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벗어난 교육을 지향했다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과도하게 경쟁적인 우리 교육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교육의 향방이 다시 유권자 손에 달렸다. 한겨레21은 학생·교사·학부모 세 교육 주체에게 교육감 선거 쟁점 중 하나인 ‘경쟁 교육’에 대해 물었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어떤 주장과 오해가 있는지도 살폈다. —편집자주
‘53.2%’
202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성향 후보 3명(조전혁 23.5%·박선영 23.1%·조영달 6.6%)의 득표율을 합산한 수치다. 당시 보수 진영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조희연 전 교육감은 38.1% 득표율로 당선됐다. 보수 진영이 이번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만큼은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재로선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등 후보가 난립하지만,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상황이 유리해졌다.
많이 듣던 그 이름… 곽노현, 조전혁 또 출마
진보 진영에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가장 크다. 곽 전 교육감은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진보 진영 경쟁 후보에게 단일화 대가성 선거자금을 건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2012년 교육감직을 상실(대법원 징역 1년 확정)했다. 교육감 선거는 독립성을 위해 정당 공천이 불가능하지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시민 상식선으로 볼 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며 출마 재고를 요청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진보 진영에선 강신만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 김경범 서울대 교수,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안승문 전 서울시 교육위원,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등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보수 진영의 유력 후보인 조전혁 전 의원은 정치색이 강한 후보다. 그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념으로 오염된 학교를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 정권 코드에 맞춘 비합리적인 탈원전 교육, 무분별한 젠더리즘, 동성애 코드 등이 걸러지지 않고 학교에 침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는 공교육에 두 가지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 또 다른 하나는 ‘능력 있는 개인 만들기’”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는 현 역사교과서, 경제사회교과서가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건국영웅·부국영웅’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능력 있는 개인 만들기’는 현재의 학생 평가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학력 향상을 위해 충분한 만큼의 시험을 부활시키겠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서 사비를 들여 레벨 테스트를 받고 실력을 파악해야 하는 이상한 현실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교육과 대척점에 있는 공약들이다. 조 전 교육감은 시험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이 진로탐색·체험학습·토론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학기제를 확대했고,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를 추진했으며, 입시 위주 교육보다 토론, 발표, 체험활동 등을 위주로 교육하는 혁신학교 확대를 추진해왔다.
자사고 학생 “목숨 건 공부보다 건강하게 자라고파”
지금 상황을 교육 주체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학군지 ‘맘카페’ 여론을 보면, ‘혁신교육’을 추진해온 조희연 전 교육감의 교육감직 상실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중학생 학부모 ㄱ씨는 “학교에서의 시험, 평가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커졌다. 토론 등 교육이 좋은 건 알지만 어차피 입시를 앞두고 시험 성적을 통해 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부모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 격차가 분명한 한국 노동시장에서 ‘학력’은 학생들의 ‘취업시장 상품가치’를 높이는 주요 수단인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입시 위주 교육을 외면하는 것은 이상적이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ㄴ군의 생각은 다르다. 중학교 때 전교 회장을 할 만큼 학교생활에 진지하게 임하는 그는, 자사고를 다녀보니 ‘반대하는 입장’까진 아니지만, 과연 이런 교육이 “학생들한테 이로운지, 공교육에 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느끼곤 했다고 털어놨다.
“공부에 의지가 있는 친구들이 모여 있으니까 면학 분위기가 인문계 일반 고등학교보다 좋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거든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 시험 기간만 되면 실신하는 친구도 있고, 시험 끝나자마자 우는 친구도 있고. 이렇게 과도하게 경쟁 구도로 몰아넣는 게 과연 학생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기에 좋은 걸까…. 목숨을 걸고 공부하기보다 조금 더 완화된 환경에서 조금 덜 경쟁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일반고 전환 예정이라 시험이 아닌 추첨제로 학생을 뽑았거든요. 그나마 성적대가 다양한 축에 속하는데,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는 대체 어느 정도로 심한 걸까 생각도 해봤고요.”(자사고 1학년 ㄴ군)
중3·고3 자녀를 둔 김아무개(서울 동대문구)씨도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고 그 학교에서도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게) 공교육이 탄탄하게 다져지면 좋지 않을까. 어떤 학교를 가더라도 그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정치와 법’ 과목을 가르치는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서울 교육을 두고 ‘지금의 이 경쟁도 부족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되물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해요.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학군지가 몰려 있는 동네잖아요. 전혀 교육과 상관없는 한국은행 총재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상위권 대학에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더 해야 한다’고. 이런 말이 나올 정도인데 뭘 더 바라느냐, 이게 교육감 선거에서 나올 핵심적인 질문 같아요. 우리 교육이 여기서 더 입시 위주 교육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냐.”(전대원 대변인)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24년 8월27일 서울대 심포지엄에서 “왜 우리나라의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어떤 정책을 해도 떨어지지 않고 작은 외부 충격이 있으면 급격하게 상승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느냐”며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자녀가 학교 갈 나이 되면 서울로 오고 또 강남으로 오며, 그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또 다음 세대가 똑같은 목적으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키고 이 구조적 문제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아이가 학력이 떨어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중1·중3 학부모이자 아이들을 혁신학교에서 길러낸 서울 강동구의 송윤희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혁신교육을 지지한다.
“저희 아이가 중3이라서 최근에 고등학교를 준비한다고 학원에 물리 과목을 들으러 갔는데요.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는 수업인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몬스터 음료(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앉아 있었대요. 한창 성장기인데 몬스터 음료를 마시는…. 지금 현장이 이래요. 저희 아이들이 나온 초등학교가 혁신학교였고, 거기서 제가 학부모회장을 했어요. 강동구에 살아서 송파·잠실·대치동 근처니 학부모들과 고민도 많이 나눠봤어요. 근데 제가 봤을 땐 혁신학교라서 학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깊게 공부하는 친구가 많거든요. 교육 과정이란 게 아이들 발달 상황에 맞춰서 교육 전문가들이 설계한 거잖아요. 아이들이 궁금할 때, 발달 상황에 맞을 때 하는 학습이 효과적이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자발성도 잃어버리게 되는 거 같고요. 정승제라고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 얘기하는 거 보면 ‘얼마나 많은 양을 푸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문제라도 깊이 고민했다가 풀리는 경험을 해보는 게 진짜 수학 공부’란 얘길 하거든요. 사실 저도 중간중간 불안하고 대치동에 있었으면 못 기다렸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학부모가 공교육을 안 믿고 사교육으로 다 보내잖아요. 저는 공교육 안에서 아이들이 사교육을 따로 많이 받지 않아도 되는 교육감님을 지지하려고 해요.”(학부모 송윤희씨)
강신만 “혁신교육 계승”, 김경범 “입시 개혁이 핵심”
조전혁 예비후보는 2022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혁신학교와 자유학기제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반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이번 보궐선거 출마의 변에서 자신이 “혁신교육의 설계도를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지구가 안정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며 혁신교육 계승 의지를 밝혔다. 2022년 선거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과 단일화에 합의했고 이번 선거에도 출마 의사를 밝힌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은 좀더 적극적으로 혁신교육을 옹호한다.
“혁신학교 때문에 학력성취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대단히 오해예요. 왜냐하면 혁신학교는 정책적으로 좀 어려운 지역에 많이 배치돼 있어요. 그런데 강남에 있는 일반 학교와 혁신학교 학업성취를 비교하는 식으로 비판해요. 그게 아니라 한 학교의 혁신학교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야죠. (보수 쪽에서는) 옛날에 축구선수들 때리고 억압하면서 길렀던 것처럼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하고 주입하고, 그런 방식으로 월드컵에 참가는 할 수 있겠죠. 그런데 4강이나 우승으로 가긴 힘든 거죠. 학생들에게서 창의성이나 자발성이 사라지는 한계가 있으니까요.”(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
입시 전문가인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모든 교육 논쟁의 핵심은 대학입시 개혁에 있다고 본다. 경쟁을 완화하는 진보 교육으로 나아가려 해도 대학입시 제도라는 더 큰 구조가 매번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고통을 줄이는 첫걸음이 대학입시 개혁이고, 대학입시 개혁의 출발점은 9월 수시모집 폐지”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교육감이 입시를 바꿀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교육감 능력으로 할 수 있느냐? 아니죠. 그러면 교육감이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대학입시를 만들기 위해서 국회와 협력해야죠. 정부와 더 좋은 대학입시를 만들자고 논의를 시작해야죠. 근데 지금은 아무도 그 논의를 시작하지 않지 않습니까? 대학입시를 이 상태로 두고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김경범 서울대 교수)
교육 주체 간 신뢰회복과 소수자 교육도 관건
입시나 교육 문제 이전에, 서이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학생·학부모·교사 간 ‘신뢰 상실’ 문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교육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미숙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서로 신뢰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의 이권을) 계산하면 무슨 정책이든 의미가 있겠느냐.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게 교육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건 아이들 학습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했던 사회적 소수자 관련 교육 정책을 계승해주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초·중·고를 다니는 세 자녀 학부모 용은중씨는 “혁신교육지구 교육후견인제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게임 중독이 심한 한부모 가정 내 아이가 있는데, 아버지가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다. 비슷하게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는 아이들을 마을에 있는 약사 선생님이 수학지도를 하면서 아이를 살피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이 이뤄져왔다. 이런 정책이 교육감이 바뀐다고 엎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학생 학부모 송윤희씨는 “장애 학생을 다른 학교에선 안 받아주거나 분리 수업을 해서, 장애 학생과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오기도 한다. 체육수업 때 장애가 있어 등나무 밑에 앉아 있는 친구를 보고 ‘너도 끼어야지’ 하면서 같이 밀고 뛴다거나 현장학습 때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는 그런 경험을 장애가 없는 학생들이 한다. 차기 교육감이 이 문제에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고, 조 전 교육감이 특수학교 관련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 부분이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조희연 교육감이 특수학교, 특수학급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는 (더 나아가) 통합교육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장애아동이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똑같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는 통합교육 지원 확대가, 새로운 교육감 정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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