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로 메탈슬러그 탱크 만들기
3D 프린터를 사고 별별 물건을 다 만들어 봤어요.
등짝을 맞아가며 산 3D 프린터는 단순히 장난감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학을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술을 전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 책까지 썼다니까요.
3D 프린터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장난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장난감을 사도 누가 뭐랄 것 없는 어른이 되었지만 누가 뭐라고 할 남편은 되었거든요. 그래서 만들고 싶은 장난감 파일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해 놓기만 하고 만든 적은 별로 없더라고요.
https://www.thingiverse.com/thing:2301417
좋아하는 고전 오락실 게임 [메탈슬러그]에 나오는 탱크를 받아놓고는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출력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만들 수 없었던 이유는 탱크가 크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만들 것도 생기고 새로운 게임도 해야 되고 드라마는 여전히 재미있기도 해서 자꾸 뒤로 밀려났습니다.
발칸포 부품은 출력한지 1년이 훨씬 넘어 3D 프린터 주변에 굴러다니기 시작한 거죠. 이 게으름의 굴레를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작년 설날에 결심하고 올해 설날에 다시 결심했습니다. 게으름의 굴레는 담배 끊는 것보다 힘든 건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무한궤도의 서포트는 1년이 다 되어 제거되었습니다.
설정을 잘못하면 생기는 출력물과 출력물 사이에 거미줄은 심지어 제 3D 프린터의 안 좋은 예로 사진을 찍어두기까지 했었지요. 그러니 이 탱크 만들기는 3D 프린터를 처음 샀을 때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인 셈입니다. 거미줄은 설정을 손보는 게 좋지만 그냥 라이터로 녹이는 편이 쉽고 빠릅니다.
탱크의 실제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 3D 파일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파일은 정확한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거든요.
플라스틱이 식으면서 크기가 줄거나 모양이 휜 부분은 퍼티로 메우고
면을 고르게 다듬기도 합니다.
이 탱크는 뒤에 이렇게 연통이 있는데 이상하게 3D 프린터로는 출력이 되지 않더라고요. 필라멘트의 두께가 설계보다 두꺼우면 생기는 문제입니다. 적당한 플라스틱을 잘라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연통을 붙이는 부위도 모호해서 순간접착제로 적당한 곳에 붙이고 베이킹 소다를 뿌려줍니다. 뭔가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기술인데 베이킹 소다가 순간접착제를 흡수하면서 돌처럼 딱딱해집니다. 사실 베이킹 소다뿐만 아니라 가루면 뭐든 됩니다. 설탕으로 해본 적도 있어요.
기관포도 움직이면 좋겠다 싶어서 아이들의 레고 블록 중에 관절 부품을 몰래 가져다 달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난감에서 떨어져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부품들을 모아다 여기저기 붙여 주었습니다.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 줍니다. 이런 구멍들도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거든요.
탱크라면 몇 개쯤 있을 법한 고리도 클립을 구부려 달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철물점 락카 스프레이로 색을 칠합니다. 나중에 벗겨지면 그럴듯해 보이지 않을까 은색을 뿌렸는데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가스가 모두 날아가 군데군데 뭉치고 이상해졌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붙인 다른 장난감 부품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좀 지저분해 보이지만 괜찮아요. 탱크인걸요. 심지어 게임 [메탈슬러그]는 해상도도 무지 낮아서 이 모형이랑 똑같은 거라고 우겨도 될 거예요.
https://pin.it/3fP4ZHr
정말 똑같죠?
알아요 하나도 안똑같다는거....
색칠공부라는 얇은 책이 있었어요. 동내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주로 캐릭터 그림이나 공주가 색 없이 인쇄되어 있었지요. 선 안에 색을 채우면서 색칠을 공부합니다. 어떤 염료를 사용해도 좋았는데 저는 생각 없이 색을 메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어른을 위한 본격적인 색칠공부 책도 많습니다. 3D 프린터로 만든 메탈슬러그 탱크 모형은 어린 시절 색이 빠진 색칠공부를 생각나게 합니다.
원래 디자인도 보면 이렇게 노란 부분도 있고 어두운 부분도 있고요. 이제 색칠공부를 다시 시작해 봅시다.
제1장. 도화지 준비하기
색칠공부 책을 문방구나 서점에서 구입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도전할 밑그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주변에 문방구나 서점도 없고 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찾기도 귀찮아 3D 프린터로 입체 밑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제2장. 바탕색 칠하기
그림 그리기 입문자에게 바탕색은 그림을 빨리 완성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일단 하늘색으로 몽땅 칠하면 시간이 다 되어 선생님이 그림을 걷어가더라도 그리다 만 것 같은 느낌은 덜하지요.
물론 바탕색은 하얀색이야!라며 아무것도 안 칠해도 되지만 저는 어른이기 때문에 회색으로 칠합니다. 철물점에서 산 회색 락카 스프레이입니다. 워낙 용량이 커 수 년째 야금야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3장. 기본색 칠하기
이제 원하는 색을 칠해 봅시다. 저는 지난번에 영겁의 배송을 기다려 구입한 배터리 에어브러시를 사용하기 했습니다. 그게 붓보다 빠르거든요.
큰 아들이 유치원에서 쓰던 아크릴 물감을 창문 닦는 윈덱스로 희석합니다. 아크릴 전용 신너나 알코올도 좋고 그냥 물로 해도 된다고 합니다. 유리 세정제도 좋다고 해서 적당한 농도가 될 때까지 섞어줍니다. 세정제 색 때문에 처음에는 파란 기운이 도는 것 같지만 잘 섞고 나면 물감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파란 물감에 흰색을 넣어 밝은 곳을 칠해줍니다. 어른이니까 이 정도는 해주어도 됩니다. 물론 무한궤도와 고무신은 검정이죠.
이제 오리지널 디자인에 있던 노란색을 칠해줄 차례입니다. 지금은 마커 펜도 다양한 색이 많아 이렇게 작은 부분에 사용하기에는 붓보다 편리합니다.
선명한 색이 필요한 부분은 하얀색을 미리 칠하면 좋습니다. 하늘 그린다고 파란색으로 왕창 칠한 다음 햇님 그리면 햇님이 우중충해지죠.
작은 붓은 있지도 않고 나중에 빨기도 귀찮기 때문에 마커를 종이에 눌러 물감을 조금 떨어트리고 이쑤시개를 찍어 칠합니다. 더 가늘게 칠하고 싶으면 칼로 날카롭게 깎아도 좋고 이쑤시개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됩니다. 습관처럼 이만 쑤시지 않으면 됩니다.
제4장. 선 그리기
색칠공부는 선이 처음부터 인쇄되어 있어요. 안쪽에 색을 넣으면 되지요. 하지만 호기롭게 입체 모형을 선택하면 이 선은 나중에 넣어야 합니다.
검은 물감을 희석해서 모서리를 따라 흐르게 만드는 게 원칙이지만 가는 팬으로 칠해도 됩니다. 3D 프린터로 만든 물건은 층마다 모서리가 생겨서 팬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 평평하게 면을 갈아주어야 하지만 그건 엄청 힘들고 귀찮은 일인데다가 색칠공부라는 원래 목적을 넘어서는 수고입니다.
저는 모델 전용 먹선팬을 사용했지만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최웅군이 그림 그릴 때 쓰던 로트링 펜을 쓰면 더 분위기가 나겠지요.
제5장. 스티커로 예쁘게 꾸미기
스티커는 꾸미기의 시작과 끝입니다. 아무리 엉성한 색칠도 스티커로 가릴 수 있고 색상에 대한 안목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검증된 색으로 구성된 스티커는 따분한 시선에 다시 한번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장난감 만들다 남은 스티커는 이런 순간을 위해 아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붙이고 새 이쑤시개로 조심스럽게 문지릅니다.
스티커 중에는 물에 녹여 붙이는 데칼도 있는데 무척 얇기 때문에 붙이기가 까다롭지만 훨씬 그럴듯해 보이지요.
그냥 물에 불려 붙여도 좋지만 울퉁불퉁한 곳이라면 데칼을 녹이는 액체를 붙일 곳에 미리 발라두면 더 잘 붙습니다.
그러니 붙인 다음에 이 액체를 한 번 더 발라주면 더 좋아요. 이렇게 사용할 스티커가 모두 소진되기 전에 새 장난감을 사면 됩니다.
제6장. 명암을 더하기
이제부터는 성인의 색칠공부입니다. 선 안쪽에 한 가지 색으로만 색칠한다면 그저 평면일 뿐입니다. 3차원 세계를 2차원 종이 위에 올리는 색칠 공부라도 원래는 3차원이었다는 사실을 평면에 남길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명암이죠.
이 탱크는 처음부터 3차원이었으니 명암을 넣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물으신다면 맞습니다. 저도 검은색 파스텔로 어둡게 색을 칠해놓고서 이걸 왜 하고 있지 잠시 현타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제7장. 마무으리
파스텔을 사용했으니 잘 붙어 있으라고 정착액을 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그래도 왜 시작했을까 고민스러운 파스텔이 풀풀 날려 만질 때마다 손에 묻을지 모릅니다.
정착액이라 봐야 철물점에서 함께 산 무광 투명 스프레이지만 뿌려두면 왠지 마무리한 것 같아 뿌듯해지지요. 뭐 파스텔로 명암을 넣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렇게 메탈슬러그 탱크로 배워보는 색칠공부가 끝났습니다.
이제 처음 디자인과 비교해 보면 ....
전혀 다른 색이 되었습니다. 대체 왜 파란색을 칠하게 된 건지 다시 한번 현타의 시간을 갖다가 찾았습니다.
https://metalslug.fandom.com/wiki/SV-001_(Metal_Slug)
이게 오리지널 이미지입니다. 파란색 맞습니다. 배기구가 갈색이라고요? 색칠 공부는 원래 하고 싶은 데로 칠하는 거예요.
비록 이 탱크가 정말로 있는 탱크가 아니라 게임에 등장한 게 전부라고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몰아 본 탱크 중에는 아마 가장 긴 시간 운전했을 거예요. 그렇게 긴 시간 (비록 게임 조이스틱으로) 몰아 봤다면 내 탱크가 더 진짜 같아야 하는 건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리고 진짜 같이 색을 더하는 방법을 있어 보이게 ‘웨더링(weathering)’이라고 해요.
이제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뽀얀 탱크를 더럽히겠습니다.
물론 아끼던 모나미 볼펜처럼 오래 사용하면 사진처럼 자연스럽게 더럽혀지니 탱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보면 웨더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일단 볼펜을 꼼꼼히 살펴보면 코팅이 벗겨져 안쪽에 금속이 반짝반짝 드러나고 그 경계가 어둡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도장이 상하기도 하고요.
아끼는 볼펜인데 칠이 벗겨지고 쇠약해지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어 탱크 만들기를 멈추고 한참을 슬퍼했습니다.
벗겨진 페인트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마커 펜으로 점을 찍습니다. 치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건 스펀지를 이용하거나 도장 전에 헤어스프레이를 미리 뿌리는 전문 기술이니 저는 그냥 점찍기입니다.
이제 벗겨진 안쪽이 보여야 하니까 크롬 마커를 종이에 떨어트리고 이쑤시개 끝에 살짝 바릅니다.
방금 칠한 검정 얼룩 안쪽에 칠합니다. 튀어나온 부분이나 마찰이 많을 것 같은 곳에 하면 좋겠지요.
간단해도 제법 그럴듯합니다.
기왕 메탈 펜을 꺼 냈으니 드라이 브러싱을 할 차례입니다. 이름처럼 붓에 물감을 말린 다음 문지르는 기술인데 간단하지만 효과는 그럴듯합니다. 메탈 마커 펜에 잉크를 못쓰는 뻣뻣한 붓에 바르고 종이에 문질러 닦아냅니다.
그리고 금속처럼 보여야 할 곳을 문지릅니다. 하지 않은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하면 차이가 납니다. 손가락에도 해보면 손가락도 금속처럼 보이지요.
오일 웨더링 마커로 기름이 흐른 표현을 합니다. 이런 펜이 있다니 쓸 때마다 신기합니다.
그래도 진짜 자연스러워 보이려면 천으로 닦아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번 쓴 마스크를 사용합니다.
웨더링 펜 세트를 사면 기름때도 있지만 이렇게 붉은 녹을 표현할 펜도 있어요.
밝은 녹도 만들 수 있지요.
그리고 커피를 마실 시간입니다. 슬슬 색칠하기가 싫증 나기 시작하기도 하고 다 큰 어른이 장난감 만들기에 골몰하는 것도 피곤해졌지만 그보다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남은 커피 찌꺼기가 필요했거든요.
커피를 내리고 남은 가루를 볕에 잘 말립니다. 그늘에 말리면 곰팡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검은색과 갈색 아크릴 물감을 섞고
그래도 영 흙 같지 않아 노란색도 넣어 섞은 다음
한참 말린 커피 가루를 넣어 줍니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걸 만드는 기분에 살짝 들뜨기 시작하는데
이 가짜 흙에 목공용 풀을 넣어 주면 무언가 더러운 걸 만들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당연히 커피 냄새도 여전히 진합니다.
이제 무한궤도가 진흙 위를 지나가면 더러워질 만한 곳에 바릅니다.
무언가 지저분하게 만드는 일은 묘한 즐거움을 줍니다.
놀이터 흙으로 성을 쌓으며 즐거워했던 것처럼요. 옷을 더럽혀 엄마에게 혼나던 억울함은 우레탄 블록으로 된 요즘 놀이터에서는 찾을 수 없겠지요.
그래서 커피가루를 말리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나 봅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도 비디오 게임에서 긴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캐릭터를 즐기기는 마찬가지지만 손을 더럽히거나 그래서 손가락이 아픈 경험을 하지는 못하겠지요. 어떤 게 더 좋다고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모형 만들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며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