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의 아이폰과 '얼치기 애플빠'의 차이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 29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통합우승한 LG트윈스의 승리소식과 함께 5차전까지 이어진 시리즈 내내 주목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구광모 LG 그룹 회장의 손에 쥔 스마트폰이었다.
구 회장은 29년만의 역사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자주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고 그 때마다 방송사나 사진기자들에게 찍힌 스마트폰은 '사과(애플)' 로고가 선명한 최신 아이폰이었다.
2021년 4월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모습이다. 구 회장이 사과폰(아이폰의 별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플이 LG 그룹의 주요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 한해에만 LG이노텍으로부터 15조원 규모(사업보고서 기준: 단일고객으로만 표기)의 카메라 모듈 등을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9조 8400여억원을 구매한 핵심고객이다.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핵심 수요처이기도 하다. 아이폰15에 약 5000만대의 소형 OLED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조원의 부품을 애플이 사 가니 구 회장이 '사과폰'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LG 외에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부품도 '사과 상자'에 담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한 때 쌍용차의 체어맨을 타다가 지금은 현대자동차 G90을 주로 탄다. 이 회장은 국산 차량을 애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업 파트너로서 현대차에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반면 같은 삼성 그룹이지만 삼성SDI 최고경영진들은 최신형 BMW i7 전기차를 탄다. 자사의 5세대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 BMW i7차량을 애용한다는 점을 부각해 BMW는 물론 다른 고객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기업인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반드시 있다.
#2. 최근 가수 성시경씨가 한 순댓국집에서 갤럭시(별칭 은하폰) 스마트폰으로 음식 유튜브를 찍으면서 "얼마 전 어린 지인이 '오빠, 갤레기(갤럭시+쓰레기의 합성어) 써요?'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과거 아이폰도 써봤지만 자신은 갤럭시가 더 편하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앞서 충주시의 유튜브 채널에 한 대학생이 출연해 갤럭시폰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인식을 얘기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출연한 학생은 "그 휴대폰(갤럭시)으로 저를 찍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제 친구가 (남자에게) 번호를 따였는데 상대방이 들고 있던 휴대폰이 갤럭시여서 좀 당황했다더라. 그 후 그 친구는 그 남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답해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3. 이같은 논란은 최근 아이폰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가 높아지면서 해당폰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비하논란과 세대·젠더 갈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세상에는 망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두리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과폰'을 쓰든 '은하폰'을 쓰든 이는 취향의 차이다. 그 기호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또 누가 어떤 이유로 누구를 만나든 말든 그것도 자유다.
문제는 각자의 자유와 별개로 다른 사람의 선택에 대해 공공연하게 대중 앞에 말할 때의 자세다. 미숙한 파노플리(Panoplie: 집단) 효과에 기대어 상대방 또는 그의 물건을 '쓰레기'로 폄훼해 우월감을 가지려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는 상대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일이다.
"갤레기 쓰세요?"라고 무례하게 상대방에게 묻는 것은 그 제품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없는 힐난'이자 언어폭력이다.
애플에 충성도가 높은 '애플빠' 중 일부가 이런 강한 배타성과 상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얼치기 애플빠'로 바뀌는 이유는 뭘까. 이는 제품의 우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폐쇄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과 달리 애플의 iOS는 모든 소비자를 '사과밭'(애플 왕국) 안에 묶는 '가두리 양식'형이다. 애플은 사과끼리만 뭉치도록 한다. 여기에 토마토나 배가 섞이는 걸 싫어한다.
또래 문화에 익숙한 10대들에게는 이 애플 생태계 내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왕따의 자리로 밀어내고 비난해야 자신이 산다. '갤레기'라는 혐오 표현의 출발점이다. 애플은 그 댓가로 독점적 지배력을 가지게 되고, 이익을 다른 기업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지위를 얻는다.
고급스럽게 얘기하면 애플의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것이고, 거칠게 표현하면 애플이 이익을 위해 소비자들을 '사과밭'에 가두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과거 기술왕국 소니가 택했다가 망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어느 우리에 갇혀 있는지, 그 우리를 뛰쳐나올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지 정도는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좋아 보이는 것(Good)이 반드시 옳은 것(Right)은 아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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