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결을 다시 다듬은 용인 성호샤인힐즈 리모델링

용인 성호샤인힐즈아파트의 리모델링은 공간을 새로 쓰는 작업이라기보다, 집이 가진 기억의 결을 다시 고르는 과정이었다. 기존 구조는 그대로 두고, 그 안을 흐르던 생활의 리듬만을 조심스럽게 다듬었다. 사반세기가 지난 곳이라서 막아야 할 것은 막고, 굳이 열어두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닫으면서도 빛과 기척만은 서로를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 이곳 아파트 리모델링은 새로움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살아도 마음이 닳지 않도록 공간의 온도를 낮추고, 일상이 스스로 자리를 찾게 한다. 집은 더 이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서서히 이해되는 존재가 된다.

진행 이형우 기자│글 자료 노현상 대표(㈜유니브원) | 사진 ㈜유니브원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 용인시 기흥구
용도 공동주택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면적 104㎡(31평형)
설계기간 2025년 11월
시공기간 2025년 12월 ~ 2026년 1월

설계 및 시공 ㈜유니브원
02-447-0415
blog.naver.com/univone

MATERIAL
천장, 벽
실크벽지
바닥 거실·주방 - 포세린타일 600×600
방 3개 - 강마루
창문 NS 다이렉트
도어 영림도어
중문 - 슬라이딩도어
주방가구 영림가구 & 세라믹 상판
에어컨 삼성시스템에어컨
벽과 바닥, 빛과 차분한 여백이 빚은 간결함
이 집의 현관은 누군가를 맞이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간결함이다. 과장된 장식도 시선을 붙드는 오브제도 없다. 대신 벽과 바닥, 빛과 차분한 여백뿐이다. 눈에 띄는 것 하나는 반투명한 슬라이딩 도어다. 완전히 닫혀 있지만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이 문은 사생활은 지키되 빛과 기척은 공유하는 역할이다.
차단이 아닌, 조율을 선택한 경계.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척이 공간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생활의 중심이되 독립된 무대를 주장하지 않는 거실
거실은 이곳 집의 중심이지만 주인공처럼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천천히 공간을 순환한다. 소파와 테이블, 벽과 창,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다. 거실의 첫인상은 ‘잘 꾸며졌다’가 아니라 ‘편안하다’에 가깝다. 거실과 다른 공간을 잇는 복도는 시야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집 전체의 흐름 속에 있으며 생활의 중심이지만, 거실이 독립된 무대가 되지 않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이 거실은 하루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풀리는 공간이다.
거실은 집의 중심이지만, 시선이 분산돼 중심이 아닌 듯한 공간이다. 주방과 동선이 자연스럽게 겹치며 생활의 흐름을 만든다.
열려 있지만 질서가 스며 있는 곳, 주방
주방은 거실처럼 열려 있으면서도 질서를 지닌다.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라는 태도가 공간 전체에 스며 있다. 보여주기보다는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방은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가장 감정이 덜 개입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 집의 속도는 여기서 결정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매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열려 있되 독립적인 주방.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과장된 무대가 되진 않는다.
침실이 보내는 신호,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곳 집의 침실은 잠을 자는 방이라기보다 하루를 내려놓는 장소에 가깝다. 공간은 넓지만 비어 있고, 가구는 충분하지만 말수가 적다. 말 많은 컬러를 제거한 효과이다. 침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 집은 더 이상 복잡한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침대 헤드 쪽 디자인 월은 대칭이 아닌 흐트러진 밸런스가 특징이다. 자로 잰 듯한 각진 사회생활에서 실수투성인 우리 삶의 표현이다. 사실 이런 것이 우린 편하다.
공간을 비우고 가구의 컬러를 최소화하며, 흐트러진 밸런스를 강조해 편안함을 돋운 침실. 파우더룸도 앉기보다는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꾸몄다. 자기 관리는 과시가 아니라 습관이다.
세탁실과 작은방. 안방 베란다 한켠에 설치한 세탁실의 문을 닫으면 키큰 수납장처럼 보인다.
럭셔리와 실용을 두루 갖춘 화장실
이곳 화장실은 기능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과시하지 않는 공간이다. 욕실은 늘 두 가지 극단 사이에 놓인다. 호텔처럼 연출되거나, 철저히 실용으로만 남거나. 이 공간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멈춘다. 매일 사용하지만 감정이 과도하게 개입되지 않는 상태를 택했다. 조명은 밝지 않다. 대신 벽을 따라 간접적으로 퍼지며 재료의 질감을 드러낸다. 회색 타일은 차갑지만, 약 4500K의 빛을 만나면 부드러워진다.
치수治水, 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물이 다른 영역으로 흐르지 않고 공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