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역행 '미스코리아 대회' 고집하는 한국일보, 이유 들어보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나온 부적절한 질문이 논란이 되면서 불똥이 주최 측인 한국일보에도 튀는 모양새다. 성차별과 성상품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할 언론사가 성상품화에 앞장서는 미스코리아 사업을 계속 이어온 데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최근에는 육아휴직을 쓴 여성기자를 인사 과정에서 차별한 사실까지 알려져 '성차별 언론'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기사 : 미스코리아 대회서 질문이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현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둘러싼 논란은 '딥페이크 질문'에서 시작됐다. 지난 24일 열린 '2024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참가자들이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은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질문이라며 주최 측을 질타했다.
주최 측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주최사가 한국일보 자회사(글로벌이앤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제 비판의 초점은 점차 한국일보로 옮겨지고 있다. X(옛 트위터) 이용자들은 주최 측인 한국일보를 향해 "딥페이크 질문보다 아직도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다는 게 더 놀랍다", "한국일보에서 젠더 관련해서 좋은 기사를 내고 그랬어도 흐린 눈으로 보게 되는 이유", "여성인권 공개포기쇼…한국일보 비판할 때 쓰면 좋은 말 같아요", "언론사가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어떻게 보고 인식하는지 숨기지도 않는 수준의 질문"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1957년부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주최해 왔으며, 2020년대 초부터는 한국일보 자회사인 글로벌이앤비가 주최하고 있다. 글로벌이앤비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홈페이지에서 회사에 대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연예뉴스‧패션‧뷰티 매거진을 중심으로 매니지먼트 사업과 미디어 커머스 사업 및 공공지원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이끌어가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구성원들 "뉴스룸은 성차별‧혐오 기사 쏟아내는데… 이번 기회에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해야"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예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지난 2021년 "콘텐츠의 지향점과 정반대 사업을 여전히 운영 중인 것은 큰 모순"이라며 "답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폐지 혹은 완전한 결별뿐"이라고 촉구했다.
한국일보지부는 "한국일보 구성원은 오래 전부터 성상품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미스코리아 사업 폐지를 촉구해왔다"며 "그때마다 회사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을 내세워 사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 성상품화 논란을 줄여나가겠다고 했다"며 사측을 비판했다.
이들은 "뉴스룸은 매일같이 성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와 기획물, 외고를 쏟아낸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콘텐츠 지향점과 정반대 사업을 여전히 운영 중인 것은 큰 모순"이라며 "시대적 가치에 배반하는 전통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부 반대에도 사측은 계속 미스코리아 사업을 이어갔고, 대회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지면에 홍보성 기사도 실었다.
<한국일보>는 25일 자 보도를 통해 본선 심사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고풍스런 드레스부터 하이힐 대신 건강미 넘치는 운동화, 아이돌 못지않은 군무까지. '시대적 아름다움의 변천사'라는 주제로 치러진 2024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후보자들은 각자 지닌 매력을 맘껏 뽐냈다"고 전했다.
"굽이 높은 구두 대신 편안한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을 강조하는 한편, "유리천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세대 갈등의 격차를 줄일 방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관한 질문이 던져졌고 몇몇 후보자는 통찰력 있는 답변으로 박수를 받았다"며 대회가 외적인 면에만 치중되지 않았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딥페이크 질문'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윤주영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성평등위원장은 이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회사 사업이다 보니 홍보 차원에서 대회가 열리면 사회부 막내급 기자나 연예 담당 기자가 차출돼 대회 스케치 기사를 싫어도 써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윤 위원장은 "구성원들은 이미 오랫동안 미스코리아 대회 개최를 반대해 왔으나 사측은 '수익 사업이다 보니 회사 운영에 있어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논란이 크게 불거졌으니 이번 기회에 대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구성원들의 의견이 노조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육아휴직 사용했다고 연수 기회 박탈, 여성·소수자 기사 많이 쓴 기자들도 탄압"
문제는 한국일보 사측의 성차별적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최근에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기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은 지난 달 29일 진행된 외부 기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을 위한 면접 도중 A 기자에게 '최근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았다. 연수보다 계속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 연차에서 연수를 다녀오면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질문을 했으며, 결국 A 기자에게 탈락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일보 기자 107명은 "참담함을 느낀다"며 지난 23일 비판 성명을 냈다. 기자들은 "그간 한국일보는 기사와 오피니언 칼럼에서 시대착오적인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자 차별을 꾸짖었고, 저출생을 야기하는 사회 곳곳의 구조와 제도를 비판했다"며 "그동안 숱하게 비판하고 지적해 온 이같은 보도에 한국일보는 떳떳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며 "회사는 지원자의 탈락 사유를 경영진과 인사권자의 종합적 판단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면접 심사와 탈락 통보 과정에서 육아휴직을 주요 결격 사유로 공공연히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분명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편집국 소속 한 기자는 이날 <프레시안>에 "사내 구성원들의 비판 성명이 나가고 관련 기사가 나오는데도 사측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법대로 하라'란 식의 안하무인 태도"라고 전했다.
이 기자는 "사측은 해당 기자가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뿐 아니라 평소 소수자, 젠더 관련 기사를 써왔다는 데 점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며 "기자들이 소수자·젠더 기사를 많이 쓰거나 심지어 외부 기고에서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에도 '우리가 소수자 언론이냐'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고 폭로했다.
이어 "그런(소수자·젠더 기사를 많이 쓴다는) 이유로 많은 기자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이라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현재 경영진이 물러나야 한다는 데까지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윤 위원장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논란, 육아휴직 기자 불이익 조치 등 최근 한국일보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측의 젠더 감수성 부족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육아휴직 때문에 연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도 젠더 감수성 부족 때문에 생긴 문제이고, 성상품화 논란이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계속 진행하는 데다 문제적인 질문을 거르지 못했단 점 또한 젠더 감수성 부족 문제 발생한 일이라 두 사안은 결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젠더 문제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의 괴리가 크다. 일선 취재기자들은 젠더 문제와 관련해 많이 성숙한데, 사측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며 사측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일보 문제를 계기로 언론계 내 성차별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슬아(여경)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이날 <프레시안>에 "미스코리아 대회의 경우 한국일보사 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할지라도 주요 의사결정권 가진 이들이 문제의식이 없다면 반영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젠더 관련 문제가 연속적으로 터진 만큼 한국일보는 사내 성평등 문화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나아가 "딥페이크나 언론계 내 성폭력 문제의 경우 언론에 보도가 잘 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일보사뿐 아니라 언론계 전반적으로 성평등 인식‧문화를 다같이 점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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