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찾은 전 K팝 아이돌 "지갑도 핸드폰도 없고 의견 묵살…법적 기준 필요해"

윤유경 기자 2024. 10. 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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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K팝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 노동과 인권' 토론회
전직 아이돌 당사자들 참석해 발언 "월급 시스템 절실하게 필요해"
최소한 존엄 지킬 안전장치, 정기적 현장조사·데이터 수집 중요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는 연습생 생활과 아이돌 데뷔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왼쪽부터 전 틴탑 멤버 방민수씨,전 브레이브걸스 멤버 노혜란씨,전 단발머리 멤버이자 K팝 연구자 허유정씨. 사진=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제공.

K팝의 화려한 모습에 가려져 외면받는 아동·청소년기 아이돌·연습생의 인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는 연습생 생활과 아이돌 데뷔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이 참석해 현실을 알렸다.

이날 토론회는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이기헌·김준혁·박수현·임미애·장철민 의원 주최로 열렸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11개 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2018년 12월부터 아이돌, 연습생, 아역배우, 보조출연자를 비롯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다양한 노동인권이 존중될 수 있는 방송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토론회 발언에 나선 아이돌·연습생 경험 당사자들은 공통적으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전 브레이브걸스 멤버 노혜란씨는 “아이돌이라는 생활은 지갑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세상과 차단된 부분이 많다.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묵살되기 쉽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실속은 없고 직원분들도 같이 힘들어 월급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스타트업에도 여러 기준이 있는 것처럼, 엔터테인먼트도 법적인 기준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는 연습생 생활과 아이돌 데뷔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전 틴탑 멤버 방민수씨.사진=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제공.

전 틴탑 멤버인 방민수씨는 “아이돌들은 데뷔 후 계약금을 배제하면 아무 돈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월급이라는 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아이돌들이 한 푼도 못 받으며 생활하다보니 결국 안 좋은 곳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방씨는 “절대 다수의 아이돌이 7년의 전속계약 기간동안 처음 받은 계약금 300만 원만 받고 데뷔 후 실패하면 버려진 채 아무런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는 계약을 유지한 채 있어도 더 이상 나가는 비용도 없고 '역주행' 사례처럼 혹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계약 해지를 해주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비현실적인 다이어트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 아동·청소년기 아이돌과 연습생의 건강 문제도 지적됐다. 전 단발머리 멤버이자 현재 K팝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 허유정씨는 “(엔터테인먼트사의) 인력이 한정돼있어 연습생들 간의 관리 책임을 방기하고 그 부담을 동료 연습생들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직원의 기분을 맞춰주고 차별적 대우를 받으며 눈치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며 “스트레스 때문에 중학생인데 원형 탈모가 온 친구도 있었고, 기면증, 불면증, 무월경은 기본이었다. 건강의 많은 문제가 감정노동과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에는 연습생 생활과 아이돌 데뷔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이 직접 참석했다. 전 단발머리 멤버이자 K팝 연구자 허유정씨.사진=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제공.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된 문제점과 대안을 조명한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연속보도를 한 전다현 비즈한국 기자 또한 건강권 침해 문제를 지적했다. 전 기자는 “요즘은 대부분 초등학생부터 연습생을 시작하는데 다이어트를 한다. 아이들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50kcal 젤리를 먹고 밥을 먹지 않으면서 버틴다는 경우도 있었다”며 “보통 학교에서는 몸이 아프면 보건실과 병원을 보낼텐데 기획사는 몸이 아프면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한 본인의 책임이 된다. 오히려 몸이 아픈 친구에게 벌을 주기도 한다. 연습을 하다가 쓰러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최소한 존엄 지킬 안전장치, 정기적 현장조사·데이터 수집 필요

소속사와 아이돌·연습생의 권력적 상하관계는 부당한 대우에도 법적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허유정씨는 “그룹이 해체되고 다음 회사를 선택할 때 1년 안에 앨범이 제대로 안 나오면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썼다. 근데 1년이 지나도 데뷔를 안 시켜줬다”며 “녹음도 해오고 멤버도 구해오고, 레슨 선생님도 구해오고, 이것저것 다해놨으니 데뷔만 시켜주면 된다고 했는데도 활동을 안시켜줬다. 결국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돌은 수명이 있다. 주변 분들 진술서도 받고 무조건 이긴다는 법적 자문도 받았는데, 개인으로서는 부담이 너무 컸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일이 될까봐 포기했다”고 말했다.

관련해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 변호사는 “소속사가 투자금을 다 회수할 때까지 아무 급여를 받지를 못하고 생계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속사 인맥을 통하지 않은 경우 방송 활동이 불가능하니까 소송을 이겼는데도 활동이 막혀있기도 한다”며 “이런 건 법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구조다. 그래서 특수한 동업 관계의 형식이 있지만 사실상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미지급 정산금이 보호되지 않으면 소속사 혹은 소속사 대표가 변제하는 등 아이돌·연습생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기 아이돌과 연습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은 “해외의 10대들도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의 연습생이 되고 싶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지는 등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아이돌만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공연을 다니지만 비용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서 활동하고 있는 10대들이 너무 많다”며 “오히려 역으로 우리가 제도와 현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다른 형태로 문제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임 위원은 아동·청소년 아이돌 실태 관련 정부부처의 정기적 현장조사와 구체적인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22대 국회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을 단축하고 청소년들의 건강권을 우선시하는 내용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방송 제작 현장의 아동·청소년 인권 보호 강화를 목적으로 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K팝 관련 업계 반발에 부딪히며 1년 넘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폐기됐다. 조정희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인권과 과장은 “관련 법 개정은 필수”라며 “이번에 발의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아동 청소년 인권 증진을 위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익명을 요구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도 참석해 의견을 말했다. 그는 아동·청소년 아이돌·연습생들의 인권에 대한 기획사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에는 키도 크고 몸도 좋은 아이돌들이 더 인기가 많아서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키지는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이돌의 경쟁력이어서 성적 관리도 한다”며 “지금 말씀해주시는 문제들이 중소기업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많이 해결되고 있다. 대형 기획사가 중소기획사를 인수해 레이블로 두는 일도 많아지면서 정산 관련 증빙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처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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