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차세대 전투기 FCAS 좌초 위기, "KF-21에게 찾아온 기회"

유럽 3개국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 FCAS(Future Combat Air System)가 좌초 위기에 몰렸습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손잡고 2040년대 하늘을 지배할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겠다던 계획이 불과 몇 년 만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죠. 문제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프랑스 다쏘(Dassault)가 약속했던 워크쉐어 배분을 무시하고 독점적 주도권을 요구하면서 독일과 스페인의 반발을 샀고, 이제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대로는 계획을 계속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때 유럽 방위산업 협력의 상징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요?

약속을 깬 프랑스, 분노한 독일과 스페인


FCAS 프로젝트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워크쉐어 배분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애초 3개국은 출자 비율(3개국 모두 33.3%)에 따라 개발 업무와 이익을 나누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다쏘가 자신들의 출자 비율을 넘어서는 주도권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시작됐죠.

독일과 스페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였습니다.

독일 메르츠 총리는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합의된 워크쉐어 비율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지켜보던 스페인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스페인 방산업체 인드라의 데 로스 모소스 CEO는 11월 3일 "계획에 33%를 출자한다면 33%의 이익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인드라와 스페인 국방부의 입장은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죠. 독일과 스페인, 양국의 입장이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프랑스는 사실상 2 대 1로 고립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종말로 치닫는 프로젝트


독일 방위 전문 매체 하르트푼크트(Hartpunkt)는 "지난 몇 주 동안 FCAS 프로그램이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후가 강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오랜 논쟁 끝에 메르츠 총리와 에어버스는 "다쏘에 대한 더 이상의 양보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시사했습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문제에 관한 정치적 해결책을 연말까지 찾을 예정이었고, 10월에는 3개국 국방장관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으로 이 회의마저 취소되고 말았죠.

하르트푼크트는 FCAS 중단에 대비한 플랜 B의 필요성까지 권고하고 나섰습니다. 프로젝트가 완전히 좌초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유럽 최대 규모의 방산 협력 프로젝트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다쏘의 논리 vs 협력의 원칙


프랑스 언론들도 이 위기적 상황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는 다쏘의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자사의 핵심 기밀을 경쟁업체와 공유하고 싶지 않은 다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쏘는 라팔 전투기의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쌓아온 방대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경쟁사들과 나누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언론들도 근본적인 문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의된 룰을 깨면 독일이나 스페인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더 큰 문제는 프랑스가 단독으로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막대한 개발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프랑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입니다.

정치적 합의를 배신한 대가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 갈등의 본질을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FCAS는 프랑스-독일 협력을 상징하는 정치 주도 계획이었다. 이웃 나라들은 기밀을 지키기 위해 주도권을 요구하는 다쏘를 오만하다고 비난하지만, 이 주장은 기술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라팔의 지속적인 개량으로 쌓아온 기술을 토대로 단독 개발을 주장하는 것도 기술적 관점에서는 이해할 만하다는 것이죠.

하지만 르몽드는 냉정한 현실도 지적합니다. "프랑스가 단독으로 개발 비용을 부담하면 다른 국방 지출이 희생되는 것은 뻔하다."

이어 "애초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FCAS 개발과 차기 전차 개발의 주도권을 나눠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도권'이란 개발 방침이나 프레임워크 전체를 이끄는 입장을 의미하는 것이지, "중요 기술 개발을 독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차기 전차 개발에서는 이런 문제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프랑스 정부의 선택


결국 대립의 진원지는 정치적 합의를 무시하려는 다쏘 측에 있다는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이제 프랑스 정부는 중대한 기로에 섰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의 다쏘를 지지하고 FCAS 계획을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다쏘에 결단을 촉구하고 협력 틀을 유지할 것인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쏘를 지지하면 독일, 스페인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고 유럽 방산 협력의 미래가 어두워질 것입니다.

반대로 다쏘를 설득하지 못하면 프랑스 방산업계의 반발을 사고 기술력 유출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로서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죠.

무너지는 유럽 방산 협력의 꿈


FCAS는 단순한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이 미국이나 중국에 맞서 독자적인 방산 기술력을 확보하고, 회원국 간 협력을 통해 비용을 분담하며 효율적으로 차세대 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죠.

2040년대 하늘을 지배할 6세대 전투기를 만들어 유럽의 방위 주권을 확립한다는 비전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 기업의 이기심과 정치적 합의에 대한 배신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독일과 스페인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이상, 프랑스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사실상 종료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조 원대의 투자와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죠.

유럽 방산 협력의 미래를 좌우할 FCAS 프로젝트. 프랑스 정부의 선택에 따라 이 프로젝트가 재생할지, 아니면 유럽 방산 협력의 실패 사례로 역사에 남을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연말까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국 KF-21에게 찾아온 기회


FCAS의 좌초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KF-21 보라매에게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과 스페인이 플랜 B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시제기 비행에 성공하고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둔 KF-21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주목할 만합니다. 스페인은 FCAS에 33%를 출자하면서도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FCAS가 실제로 중단된다면, 스페인은 노후화된 F/A-18 호넷과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대체할 차세대 전투기를 시급히 확보해야 합니다.

이때 KF-21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고, 무엇보다 공동 생산이나 기술 이전에 개방적인 한국의 협력 방식이 FCAS에서 실망한 스페인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물론 KF-21이 당장 FCAS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FCAS는 6세대 전투기를 목표로 하고 있고, KF-21은 4.5세대에서 5세대 사이의 전투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040년대까지 기다릴 수 없는 유럽 국가들에게, 2030년대에 배치 가능한 검증된 전투기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KF-21은 블록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킬 계획이어서, 장기적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FCAS의 위기는 유럽 방산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동시에 한국 방산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폴란드,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성공적인 수출 실적을 쌓아온 한국 방산은 이제 유럽이라는 전통적 방산 강국 시장에서도 기회를 엿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FCAS의 향방이 어떻게 결정되든, KF-21을 비롯한 한국 방산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