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나라인가, 아내인가
노국 공주 떠난 뒤 자제력 잃어
태조 이성계의 세자 선택도
신덕왕후 때문에 정당성 잃어
통치자는 개인 초월한 존재
나라 위해서 때론 악인 돼야
태종·세종도 인간적 연민 극복
지금 국민의 인내, 한계 달했다
칸트로비치(E. Kantorowicz)에 따르면, 왕에게는 ‘두 개의 신체’(two bodies)가 있다. 자연인의 신체와 왕의 신체다. 왕은 한 개인인 동시에 왕국의 통치자다. 한 몸에 둘이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왕의 영혼은 공인과 사인이 싸우는 거센 격투장이다. 공이 사를 이기면 나라가 산다. 그 반대면 나라가 망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그런 사례다. 늙은 리어왕은 왕국을 삼분해 세 딸에게 상속하려 했다. 조건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하지만 상속을 노리는 사랑은 불순하다며 막내딸 코델리아가 거부했다. 분노한 리어왕은 두 딸에게만 상속하고, 코델리아는 추방했다. 하지만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왕은 황야를 떠돌고,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가 죽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탐욕이다. 그러나 첫 불씨가 된 건 리어왕과 코델리아의 착각이었다. 왕가의 사랑을 공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오인했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많다.
고려말 공민왕은 총명한 애민의 군주였다. 전광석화처럼 친원파를 제거하고, 발본적 개혁도 단행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왕비 노국 공주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났다. 실성한 왕은 공주의 능을 무수히 배회하고, 초상화를 보며 흐느꼈다. 밤이면 만취해 내시들을 매질하다 암살당했다. 그는 고려 왕조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슬픔에 함몰되어 기울어가는 왕조를 더 깊은 수렁에 빠트렸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왜구의 살육에서 백성을 구한 영웅이다. 그런데 조선 건국 후 개국 1등 공신 이방원을 내치고, 이방석을 세자로 세웠다. 이방원의 생모는 향처 신의왕후 한씨고, 이방석의 생모는 경처 신덕왕후 강씨다. 시골 무사 이성계가 왕이 된 공의 절반은 강씨 몫이었다. 이성계는 강씨를 사랑했다. 그 소생을 세자로 세운 까닭이다. 본래 정당한 왕권 계승법은 본처의 장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공평성, 정당성을 모두 잃었다. 결국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이방석은 죽었고, 이성계는 왕위에서 쫓겨났다. 복수심에 불탄 이성계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켰다. 국가 안위는 안중에 없었다. 만년의 이성계는 깊은 밤 궁궐에서 일어나 슬피 울었다.
태종 이방원의 손은 피로 얼룩졌다. 정몽주를 죽이고, 이복형제를 살해했다. 친형과 칼을 겨누고, 아버지와 싸웠다. 외척의 화를 우려해, 제1차 왕자의 난 때 생사를 같이한 처남 4명도 모두 죽였다. 그 충격으로 왕비 원경왕후 민씨가 쓰러졌다. 태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 칼을 들고 일어선 여장부였다. 양녕대군이 실행을 거듭하자 폐세자하고, 충녕대군을 세웠다. 태종이 죽었을 때, 개국공신 101명 중 20여 명만 생존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일어난 패륜이었다. 하지만 태종 재위기에 건국 30년도 안 된 조선은 확고한 안정을 다졌다. 그 뒤를 이어 위대한 세종의 시대가 꽃피었다.
태종은 세종의 처가도 척결했다. 세종의 장인은 영의정 심온으로, 그 장녀가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다. 태종은 강상인 옥사에 연루시켜 심온을 반역죄로 처형하고, 그의 아내와 자녀는 관노로 만들었다. 세종은 소헌왕후를 사랑했다. 하지만 태종의 잔인한 처사에 대해 “내가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하였다”고 회고했다. 즉위 후에도 즉시 처가 식구들을 구하지 않았다. 다만 소헌왕후의 외조부 잔치에 참석시켜, 서로 멀리서 보도록 했다. 즉위 8년 뒤 신하들이 요청하자 비로소 노비를 면제시켰다.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는 한말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조선 주차(駐箚) 미 공사관 서기관 샌즈(W. F. Sands)는 “시대를 앞섰고, 여성을 초월한 정치가”였다고 그녀를 평가했다. 1894년 동학혁명 때, 명성황후는 청나라 군대의 차병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외국군에게 백성이 죽고, 다른 나라도 파병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 조정 대신들은 반대했다. 청병이 들어오자, 일본도 파병했다. 결국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은 열강의 싸움터로 변했다. 조선 왕조는 그렇게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왕과 대통령은 다르다. 그러나 통치자는 모두 개인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때로 악인이 되는 길도 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다. 통치자란 이처럼 인간과 야수의 경계에 선 존재다. 인간의 따뜻함과 거리가 먼 붕망(朋亡·사사로운 관계를 끊음)의 길이다. 태종이 그랬다. 성군 세종도 인간적 연민을 누르며 인내했다. 진정한 통치자의 과업은 인간성(humanity)의 가장 가혹한 시련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헌신은 종교적 순교보다 어렵다.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국민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와 아내,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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