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임윤찬 뒤엔 그가 있었다… 19년 만에 입 연 ‘K-클래식 거목’[단독 인터뷰]
‘메세나’ 김일곤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일사불란 弦파동에 마음 빼앗겨
2004년 재단 세우고 본격후원
영재발굴 ‘특권’에 희열 느껴

김 이사장은 모태 클래식 애호가다. 오르간·피아노를 연주하던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국민학교 3학년 시절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 자리)에서 베토벤 교향곡 ‘운명’의 실제 연주를 처음 접했을 때 “일사불란하게 바이올린 현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어린 나이에도 전율을 느꼈달까, 확 빠져들었다”는 회고에 여전히 흥분이 실린다. “성인이 되고 직접 표를 살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부터는 유일한 취미가 음악회 가는 거였지. 연애도 늦게 했어요, 음악과 연애를 했으니. 클래식 음악은 평생의 사랑이자 내 일부입니다.”

여유가 생기면서는 본격적으로 음악가 양성에 힘을 보탰다. 재단 설립 전에도 서울대 음대 관현악 연습실 리모델링,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청각 교육실 등에 사재를 쾌척했다. 2005년엔 당시 무명이던 열일곱 살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발굴해 3000만원 장학금 등을 지원했고, 이듬해 한국인 최초의 리즈 콩쿠르 우승으로 이어졌다. “내가 발굴한 영재가 ‘대형 사고’를 치면 굉장한 희열을 느꼈죠. 문화재단은 기업이나 개인의 홍보 수단과는 아무 관계 없어요. 난 그저 클래식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글로벌 수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유료 관객 육성해 K클래식 초석
2014년 대통령표창 메세나대상
29일엔 전석 초청 신년음악회도
그는 이때의 수업을 돌이켜 “CEO 900명을 클래식 전사로 양성했다”고 표현한다. 소위 ‘남는 게 없는 장사’였지만 “우리 연주자가 세계 무대에서 높은 개런티 받으려면 자국에서부터 표 사주고 후원도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운영한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된 조성진이 17년 동안 민남규 케이디켐 회장에게서 꾸준히 후원받은 것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맺은 결연이 계기였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김 이사장에게 최고의 음악은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컴퓨터와 로봇이 완벽한 연주를 흉내내는 시대가 됐지만, 김 이사장은 “내게 LP와 CD도 많지만 무조건 라이브가 더 좋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에게도 ‘미스 터치’가 있습니다. 음정이 불안할 때도 있어요. 나는 그런 실수가 있는 실제 연주를 선호해요. 그런 음악에 자기의 세계와 영혼이 담겨 있거든요. 그건 기계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어요.”

生마지막 순간 귓가에 울렸으면
“봄의 아지랑이가 피는 3월 말, 4월 초에 골프 라운딩을 하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 2악장이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고도 귀띔했다. 집무실 한켠을 라운딩 기념 사진으로 가득 채웠을 정도로 젊은 시절 골프광이었지만 “나이가 드니 5시간 걷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그나마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러 운동을 나간다”고 했다.
인생의 곡으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마지막 악장을 꼽았다. 이유를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청년 시절이던 1965년, 객석에 앉아 들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내한 연주가 지금도 생생히 뇌리에 꽂혀 있다. 베토벤이 실제로 인생의 마지막에 작곡해 완숙함이 느껴지는 곡이기도하다. “수백, 수천번은 들은 노래죠. 그냥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면서 의식이 끊어졌으면 좋겠어요.”

4번 교향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오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했던 곡이란 의미도 남다르다. 신년음악회 역시 전석 초대로 열리는 사회공헌 공연이다. 좌석을 가득 채울 ‘예술의 후원자’들을 향해 ‘올해도 국내의 크고 작은 클래식 공연장 곳곳을 가득 채워달라’는 김 이사장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는 “‘양질의 청중’이 뭐 별거냐”며 “돈 주고 표 사서 공연장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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