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참사 30주기…유족들 “억울한 희생 언제까지 반복할텐가”

박고은 기자 2024. 10. 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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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 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당신이,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 주십니다. 당신의 말은 나비가 되어 나의 하늘에서 춤을 추고() 하나의 별이 되어 어둔 밤을 밝힙니다."

21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위령비에서 열린 '성수대교 30주기 합동위령제'에서 김민윤(18) 무학여고 학생회장이 이해인 수녀의 시 '가신 이에게'를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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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인근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에서 제30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려 유가족들이 분향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지난 1994년 10월21일 오전 성수대교 상부가 무너지며 당시 등교중이던 무학여고 학생 8명 포함 시민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사고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 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당신이,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 주십니다. 당신의 말은 나비가 되어 나의 하늘에서 춤을 추고(…) 하나의 별이 되어 어둔 밤을 밝힙니다.”

21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위령비에서 열린 ‘성수대교 30주기 합동위령제’에서 김민윤(18) 무학여고 학생회장이 이해인 수녀의 시 ‘가신 이에게’를 낭독했다. 김양은 “무학여중·고등학교 선배님을 포함한 모든 희생자 분들과 그 가족 분들께 추모의 마음을 담아 이 시를 드린다”며 30년 전 무학여중·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듯 한 명씩 힘주어 읊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당시 김양의 또래이던 자녀, 언니, 동생을 잃은 유가족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위령제가 끝난 뒤 김양을 꼭 껴안으며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유가족도 있었다.

1994년 10월21일 아침 7시44분께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 4차선 도로가 순식간에 붕괴됐다. 당시 등교하던 무학여중·고 학생, 출근 중이던 시민 등 32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다쳤다. 30년이 지난 이날 유가족과 무학여고 교직원·학생, 성동구 관계자 등 40여명은 성수대교 위령비에서 30주기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의 죽음이 익숙하지 않은 듯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인근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에서 제30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려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지난 1994년 10월21일 오전 성수대교 상부가 무너지며 당시 등교중이던 무학여고 학생 8명 포함 시민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사고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유가족들은 아직도 참사 당일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막냇동생 고 김광수씨를 잃은 김양수 유가족 회장은 “참사 이전을 돌이켜보면 저 또한 사건·사고나 안전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며 “내 주변에서 일어날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동생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희생자라는 연락을 받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참사로 형 고 김중식씨를 떠나보낸 김학윤씨는 “참사가 일어난 게 30년 전인데도 변한 게 없다”며 “유가족이 목이 터져라 외쳤음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하고, 크고 작은 사고에도 국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언제까지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유가족들은 추모사에서 성수대교 붕괴 뒤에도 여전히 비극적인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수대교는 1979년 설치 뒤 교량유지 보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상태였으며, 붕괴 조짐이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있었지만 정부는 그저 맥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며 “사고 당일에도 미리 다리를 건넌 시민들이 다리가 이상하다며 신고했으나 관계기관에선 이상 징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대한항공 추락,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10년 천안함 침몰, 2014년 세월호 참사와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등 일련의 참사들을 언급한 뒤 “유가족의 단 한 가지 소망은 다시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인근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제30주기 합동위령제에서 무학여고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지난 1994년 10월21일 오전 성수대교 상부가 무너지며 당시 등교중이던 무학여고 학생 8명 포함 시민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사고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날 위령제에선 성수대교 북단 나들목(IC)에 있는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탑을 서울숲으로 이전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박주경 한국시설안전협회 명예회장은 “역사가 기억해야 할 참사임에도,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는 위치가 애매하고 공간이 너무 좁다”며 “접근성이 높은 위치로 옮겨 더 많은 시민이 추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30주기를 앞둔 지난 8월20일 성동구청은 유족의 요구로 서울시에 공문을 발송해 위령탑을 서울숲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 쪽은 산림 훼손이 우려된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이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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