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담자 협조 이끌어” vs “허위진술 우려”… ‘플리바게닝’ 도입 가능할까

유경민 2023. 4. 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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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형사법 아카데미서 논의
허위 진술로 수사 혼선 우려도
범죄수사에 협조한 내부자에게 불기소 등 혜택을 주는 ‘플리바게닝’(사법협조자 형벌제재 감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도의 부작용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지난달 31일 대검찰청은 플리바게닝을 주제로 ‘형사법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송강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이날 “최근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제한되면서 수사 단계에서 진술 증거를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한정된 수사 기법으로 하루가 다르게 진행하는 범죄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 매우 시의적절한 논의”고 밝혔다.

송 부장의 말처럼 플리바게닝은 최근 검찰의 관심 사안이다. 지난해 12월 이원석 검찰총장도 준 김(Joon H.Kim) 전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 검사장 직무대리를 초청한 강연에 참석해 “플리바게닝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검찰 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일각에선 내부자 자백과 증언을 통해 범죄의 ‘몸통’과 ‘윗선’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동지’이자 ‘내부자’였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대표의 배임 등 각종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잇따라 쏟아낸 것이 대표적인 내부자 자백 사례다. 다만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의 이 같은 진술 변화는 검찰의 회유 때문이 아니라 이 대표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경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법 아카데미 발제자로 나서 “내부 가담자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공범의 회유나 협박을 견뎌낼 정도의 법률상 혜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이날 제시한 플리바게닝 제도는 공범(주범)의 범죄 사실을 털어놓은 사람의 형량을 깎아주거나 불기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내에서도 2010년과 2018년 도입이 추진됐으나 ‘범죄자와 협상할 수 없다’는 반대론에 부딪혀 좌초됐다.
지난 3월 31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형사법 아카데미에서 ‘사법협조자 형벌제재 감면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제로 하는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과 이경렬 교수, 이정민 교수, 조성훈 변호사, 서강원 검사.  유경민 기자
◆“미국선 플리바게닝으로 90% 이상 재판 없이 사건 종결”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선 다양한 형태로 플리바게닝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다른 공범의 범행에 관해 증언하는 등 수사에 협조할 경우 검사가 기소하지 않거나, 형량을 줄이는 등의 혜택을 약속한다.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는 90~95%의 사건을 플리바게닝 절차를 통해 재판 없이 종결한다”며 “이 경우 재판에 가는 나머지 5~7% 사건에 품을 많이 들일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중죄 또는 경죄를 범하거나 범할 계획을 한 사람이 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의무적으로 형을 감면하거나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당초 테러범죄에 국한됐으나 법률 개정을 통해 일반 범죄로 확대됐다. 프랑스는 관련 규정을 통해 어떤 범죄에 어떤 혜택을 부여할 것인지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2018년부터 ‘수사·공판 협력형 협의·합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등 수사에 협력하면, 검사가 그 대가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등의 혜택을 주기로 합의하는 방식이다. 이때 검사와 피의자 또는 피고인 측은 합의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한다. 내부자 진술이 꼭 필요한 재정 경제나 마약·총기 범죄 등 특정범죄에 한해 활용된다. 또 자신의 형사사건이 아닌 타인의 형사사건인 경우에만 합의가 가능하다.

◆수사 과정 중립성·투명성 담보돼야

일각에서는 플리바게닝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허위로 진술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수사 기관이 바라는 대로 진술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조성훈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수사기관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체계의 배경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라며 “참고인 진술조서를 공판에서 증거로 사용하려면 취득 과정도 공판에서의 증인신문과 유사한 구조로 운영하고 반대신문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용 대상 범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민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한 법익침해를 내용으로 하는 사건이나 피해 감정이 강한 사건에 대해서 피해자나 유족을 포함한 국민의 이해를 얻기 힘들다”며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할 때 대상 범죄와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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