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첫사랑’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유대감으로 알고리즘 어딘가에 단단히 묶여 있는 영화들이 있다. 이를테면 '건축학개론', '봄날은 간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같은 작품들이다. 이들의 정서적 공통점을 키워드로 말하자면,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미완성’이다.
넷플릭스 TOP 10 웹사이트(top10.netflix.com)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가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에 진입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연애 예능의 인기가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은 조금 다르다.

기존 연애 프로그램들이 어떤 사람이 나올지, 누가 누구와 커플이 될지가 마치 스포츠 중계의 선발 라인업과 결과처럼 중요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캐릭터보다는 서사가 훨씬 매력적이다. 아니, 매력적이라는 말보다는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요즘 모태솔로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 프로그램은 어느 순간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가슴 어딘가를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의 전개는 뻔하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연애 경험이 없던, 멀쩡하고도 서툰 청춘 남녀들이 등장한다. ‘썸 메이커스’로는 서인국, 이은지, 카더가든 등이 출연해 이들의 로맨스를 돕는다. 여기까지는 익숙하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끌리는 순간이 아니라, 감정이 어긋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여름 성경학교에서 짝사랑하던 누나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한 남성 출연자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성에게 향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흔들림은 다른 이성에게 호감이 있거나, 그 어긋남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자신처럼 20년 넘게 ‘모솔’로 살아온 그녀의 마음이 혹시 다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길지 않은 일정 동안, 상대방이 다른 선택지를 쉽게 택할 수 있게끔 호감이 없음을 표현하는 장면은 여타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마치 '건축학개론'의 승민처럼, '봄날은 간다'의 상우처럼, '조제' 속 쓰네오처럼 감정은 있지만 표현은 서툴고, 말하고 싶은 진심은 있지만 쉽게 건네지 못한다.
뜨겁게 사랑할 열정보다 상처 주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배려가 그의 생체 모든 기능들을 저하시킨다. 방 안에 들어와 혼자 우는 장면에서,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저 서툰 마음, 저 여린 마음, 저 착한 마음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그래, 우리는 모두 처음엔 모태솔로였다. 누구도 처음부터 어긋난 인연을 차선의 상대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듯, 감정을 계산기로 굴려가며 사랑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늘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진정한 상대를 찾아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른’이 된 뒤에야 할 수 있는 조언이다. ‘청춘’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다가가야 할 상대도, 다가오는 상대도 자신의 평생 살아온 모든 기관들을 마비시키는 존재다. 소중하고 싶고, 완벽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아프다’고 말하기엔,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감정의 집합체다.
앞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빛나고 아련한 청춘의 기록 같은 예능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처럼. 아니, 그 시절, 사랑할 줄도 몰랐던 우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