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성적 올 F→대기업 5군데 합격"
여기 지방대 출신에 성적을 올 F를 받았지만 대기업 다섯 군데에 합격한 사람이 있다. 바로 9만 유튜버 무빙워터 이동수다. 이동수는 자신이 대기업을 다섯 군데나 합격한 비결이 다름 아닌 '높은 자존감' 덕분이라고 말한다. 지금 그는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아보이지만 유년시절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서 대기업까지 입사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동수는 태어날 때부터 한 시간에 버스가 한 대 오는 낙후된 시골에 살았다. 이동수의 어머니는 주변에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도, 간호사도 없이 그를 낳았다. 어머니는 태어나고 나서 납 뗌 일을 하셨는데, 뗌을 하며 발생되는 연기를 마시며 병원에 입원하시기도 했다.

반면 이동수의 아버지는 자연에서 활동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여름이 되면 낚시를 가서 큰 물고기를 잡으면 좋아하고, 겨울이 되면 사냥개들을 데리고 사냥을 다녔다. 아버지는 엽총으로 꿩을 잡기도 했는데, 그는 아버지가 잡아온 꿩고기를 학교 점심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기도 했다.
엽총으로 직접 잡은 꿩이었기 때문에 총알이 섞여 있던 경우도 있었는데, 그의 친구들은 그 총알을 보물로 오해하기도 했다. 이동수의 유년 시절은 '총알 박힌 꿩고기' 같은 퍽퍽한 느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겼고, 삶이 힘들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감당하기에는 다소 폭력적이었고 무책임한 부분이 있었다.

이동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방학 때에는 주유소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가,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주유소에 가서 일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 1998년이었는데 휘발유 가격은 1,111원, 경유 가격은 540원이었다. 하루 12시간을 내내 한 달을 꼬박 일하며 번 돈은 48만 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150만 원 내지 200만 원 정도는 되는 돈이다.
5만 원 지폐도 없고 계좌이체도 어려울 시절이었기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현금 뭉치를 받은 이동수는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동수가 스스로 처음으로 번 월급은 고등학교 입학금을 내는 데에 쓰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게 살짝 부끄럽기도 했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솟아나는 자부심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수백 명의 학생 중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입학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 사실이 이동수에게는 엄청나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더할 나위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다녔다. 초, 중, 고등학생 시절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본 적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19살에 치른 수능에서는 총 240점을 받았고, 20살 순천향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학창시절 '집이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스무살이 되면 집을 바로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자마자 바로 집을 나왔고, '이제부터 삶을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도 신용불량자가 되며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건 부모님의 삶일 뿐이었다.

이동수는 스무살에 20대 후반까지 못 사는 것은 당연하고, 30대부터 진짜 자신의 삶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2~3개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스스로 살 수 있는 자립심도 갖고 있었기에 행복한 시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공부는 별개의 얘기였다. 그는 1학년 1학기 때 학점 1.69점, 2학기 올F의 성적을 기록하며 학교를 자퇴하기에 이른다.
이동수는 자퇴를 하고 군대를 가기 전, 매일 같이 친구들과 아르바이트, 음주, 당구 치기, 노래방 가기 등을 반복하며 살았다. 군대에 들어갔을 때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를 들면, 이동수는 해외 여행은 부자들만 간다고 생각했는데 훈련병 때 만난 친구가 워킹홀리데이를 다녀 온 이야기를 들었다. 돈이 많이 없고, 외국어를 못 해도 외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들으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닫는다.
24살, 이라크 파병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겪다

이동수가 24살이 되었을 때, 그의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찾아온다. 바로 이라크 파병을 가게 된 것이다. 이라크는 워낙 기온이 높고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라 선글라스를 껴도 눈이 부신 지역이다. 이라크 부대는 실외가 너무 더운 탓에 축구 등 외부 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을 권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실내 활동을 하기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외국 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세계관이 확장된 이동수는 25살 전역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내가 모든 걸 바꾼다. 정말 열심히 산다. 딱 1년만 열심히 해보자.' 그는 다짐했다. 친구들을 불러서 1년 동안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공부에만 매진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때부터 이동수의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동수는 25살부터 3년 반 동안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나날들을 보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기 시작해 2년 반 동안 29번의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학점은 4.5점 만점에 4.31점으로 수석으로 졸업했다. 수도권 학교에 비해서는 비교적 학점을 따기 쉬웠기 때문에 외부 활동을 할 시간도 확보되었다.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 동안 그는 여러 활동을 했다. 일본어 자격증 따기, 일본 워킹홀리데이, 미래에셋 장학생, 미국 교환학생, 봉사활동 500시간 이상, 국가유공은장, 아프리카 연수생 동시통역, 대통령영어봉사활동, 태국봉사단장 등이다. 이동수는 인생에서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 할지는 모르지만 많은 것들이 남는다고.

"세상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이동수는 29살에 대학교를 졸업해 취업을 했다. 최종 합격한 회사는 누구라도 들어봤을 만한 대기업 다섯 군데다. 삼성, 한진, 웅진, 범한, BC카드였는데 그 중 BC카드에 취업한다. 입사 후 회사에 대한 만족감은 굉장히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