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죽어라 달려야 했던 이유

조회수 2023. 5.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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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프린터> ⓒ 스튜디오 에이드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759] <스프린터> (Sprinter,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2021년 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영화 <스프린터>는 100m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세 명의 선수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이야기다.

최근 스포츠를 주제로 한 상업영화들이 대거 개봉해 흥행과 연을 맺지 못한 가운데, 독립영화 <스프린터>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0.01초로 승부가 바뀐다는 육상을 소재로 하지만(물론, 육상 경기 장면도 고속 촬영을 동원하면서 깔끔하게 연출됐다), 하나의 메시지보다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하나의 상황으로 만들어지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영화였다.

영화의 첫 번째 주인공은 한때 한국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지만, 흐르는 시간 앞에서 한계를 느끼는 30대 선수 '현수'(박성일).

아직도 달리고 싶었던 그는 "어차피 1등 많이 했잖아. 이제 후배들이 해야지"라는 아내 '지현'(공민정)의 '팩트 폭행'에도 선수 생활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

'지현' 역시 한때는 육상 선수였지만, 미련 없이 은퇴하고 트레이너로 전직한 인물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트랙을 떠나지 못하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남편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튼 '현수'는 선수의 운명이 다했음을 절감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국가대표에 도전한다.

심지어 '무소속'으로 말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정호'(송덕호)로, 현재 가장 빠른 20대 단거리 선수다.

확고한 목표와 욕망을 가진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비밀을 알아챈 코치 '형욱'(최준혁)에게 자신이 국가대표가 되면 전담 코치를 맡기겠다고 거래를 제안할 만큼 대범하면서도 뻔뻔한 면모를 지녔다.('형욱'도 '정호'의 잘못된 선택을 알고 나서도 국대 코치라는 제안에 눈을 감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정호'의 이면에는 부담감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연약한 내면을 감추고 있었다.

세 번째 주인공은 고등학교 육상팀 선수 '준서'(임지호)로, 그는 담당 코치 '지완'(전신환)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서 육상부가 해체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타고난 재능으로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한층 꺾인 자신의 성장세도 팀 해체의 좋은 구실이 된다.

갑자기 나타난 갈림길 앞에서 달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 '준서'는 간절함으로 코치를 설득해 마지막 선발전을 준비한다.

영화는 세 사람의 치열한 경쟁이, 한 사람의 10대, 20대, 그리고 30대로 합쳐지는 인상을 받게 하는 연출을 통해 차별화를 줬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와 닮은 부분이 많은 영화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최승연 감독의 바람이 들어간 것.

최승연 감독은 "<스프린터>의 경우에는 단락이 나뉘어 있는 보니 어떻게 이야기를 합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세부적으로 볼 때, 30대 '현수'의 부분은 컷이 의도적으로 단조롭고, 컷의 길이도 길다.

운동 공간도 좁고, 나무들로 감춰진 공원이다.

20대 '정호'의 부분은 조명의 명암이 강하며, 클로즈업이나 롱샷도 많이 있다.

전문적인 트레이닝 센터에서 운동하고 트레이닝법도 체계적이다.

10대 '준서'의 부분은 화면이 밝고, 컷도 일반 드라마 타이즈로 이뤄졌다.

운동 공간도 상대적으로 넓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언덕 위의 학교 운동장이다.

이런 방식으로 최승연 감독은 세 인물과 챕터에 차이를 두어 연출을 진행했다.

참고로 최승연 감독은 수색동에 살던 네 명의 우정이 재개발이라는 물질적, 사회적 문제에 얽히며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수색역>(2016년)을 통해 데뷔하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각본과 연출, 여기에 음악까지 손수 작업하면서, 그가 지나온 길, 현재 디디고 있는 곳, 앞으로 닿고 싶은 이상향이 각각의 캐릭터에 녹아 스크린 위를 달렸다.

문득 영화를 보면서, S.E.S.의 노래 '달리기'가 생각났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라는 가사와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이라는 가사는 영화 <스프린터>의 전반적인 주제처럼 느껴왔다.

2023/05/11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스프린터
감독
최승연
출연
박성일, 공민정, 임지호, 전신환, 송덕호, 최준혁
평점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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