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63세 산모도, HIV 산모도 분만…산과 의사 기피가 더 문제”

염현아 기자 2024. 10.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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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진료부원장
“고령·합병증 산모도 건강한 출산 가능
태아도 피·소변 검사, 수술 할 수 있어
산과 의사 절벽 상황…기피 해소할 것”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중신 산부인과 교수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위험 산모가 태아를 안전하게 품고 건강하게 만날 수 있도록 두 생명을 책임지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결혼 시기가 갈수록 늦춰지면서 출산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초산 연령은 32.6세다. 국제산부인과연맹(FIGO)과 세계보건기구(WHO)는 만 35세 이상을 노산(老産)으로 분류한다는 점에서 주위에는 노산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노산 기준은 66년 전인 1958년에 만들어진 만큼 기대수명이 86.6세까지 늘어난 지금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임신 후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비만, 다태아 임신, 고혈압·당뇨 병력, 유산 경험 등을 가진 산모도 모두 고위험 산모로 분류된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중신 산부인과 교수는 이러한 고위험 산모를 30년간 진료해온 전문가다. 박 교수는 “고위험 산모가 태아를 안전하게 품고 건강하게 만날 수 있도록 두 생명을 책임지는 게 제 역할”이라며 “요즘은 의학 기술이 좋아 산모와 태아 모두 치료할 수 있고, 얼마든지 건강한 출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고위험 산모는 일반 임산부에 비해 산모와 태아에 모두 합병증이 생겨 치료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러한 고위험 요인을 가진 산모는 지속적으로 늘어 전체 40%를 넘는다. 박 교수는 다양한 고위험 산모들의 안전한 임신·출산을 도운 해결사로 통한다.

몇 년 전에는 국내 최고령 63세 산모의 안전한 분만을 도왔다. 본인 또는 남편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산모의 임신과 분만도 국내 최초로 주도했다. 박 교수는 “나이가 많아서, 합병증이나 질환이 있어서 임신·출산을 망설이고 불안해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모두 아이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에 더 강한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국내 고위험 환자만 돌보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아시아-오세아니아산부인과학회(AOFOG) 부회장으로 취임해 개발도상국의 안전한 임신·출산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고위험 산모의 흔한 증상인 산후 출혈을 줄이는 약을 해당 지역에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국제 단체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벡스코에서 제28회 AOFOG가 대한산부인과학회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50국의 1300여명의 산부인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궁경부암 확대 방지와 폭력에 대한 여성 보호 등 여성 건강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논의를 했다.

지난 5월 16~20일 제28회 아시아-오세아니아산부인과학회(AOFOG)가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박중신 교수는 AOFOG 부회장을 맡고 있다./서울대병원

박 교수는 지난 달 대한모체태아의학회(KSMFM) 회장으로도 선출됐다. 박 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산모에 초점을 맞췄다면, KSMFM은 태아를 엄마의 일부가 아닌 한 명의 환자로 보고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동시에 책임지는 학회”라고 설명했다.

2년 임기 동안 가장 큰 목표는 두 가지다. 학회의 기본적인 과제인 학술 발전, 그리고 후학 양성이다. 현재 국내 산과 의사 감소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제도 개선을 통해 풀어내겠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최근 고위험 산모 추이가 궁금하다.

“통계상으로는 전체의 40%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건 의학적으로 노산인 나이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사실 서울대병원까지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고위험 산모다. 요즘 그만큼 절박한 상황일 텐데, 연령대도 10대부터 40, 50대까지 다양하다. 몇 년 전에는 63세 산모도 건강하게 출산을 했다. 이제 나이는 출산에 있어 그렇게 중대한 위험 요소는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산모의 병력이나 질환 유무다. 산모 본인은 물론 태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난도가 높은 환자가 많이 찾아왔다고 들었다.

“30년간 산모들과 만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보람을 느낀 경우가 몇몇 있다. 63세 나이에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한 국내 최고령 산모가 대표적이다. 사실 50대 산모는 대개 임신 중독증에 걸려서 조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은 시험관 시술로 임신 성공한 후에 끝까지 건강하게 잘 유지해서 재왕절개로 분만했다. 아주 성공적이었고, 최근에도 아이가 건강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이로 임신·출산을 망설이는 분들께 큰 희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기억에 남는 어려운 환자가 있나.

“산모 본인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됐거나, 남편이 감염된 케이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임신부터 출산까지 문제없이 진행했다. 아마 국내 최초였을 거다. HIV에 감염되면 에이즈(인체면역결핍증후군)에 걸린다. 지금보다 HIV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유없이 공포감이 컸던 시기였는데, 이 환자들 대부분 처음 갔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해 우리 병원으로 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둘 다 HIV에 감염된 부부였는데, 아이를 원해서 우리 병원 난임 전문 교수에 도움을 청했다. HIV에 걸리지 않은 정자를 골라 수정시켜 시험관 시술로 임신에 성공했고, 건강하게 출산했다. HIV에 감염돼도 건강하게 임신·출산할 수 있다.”

–엄마 뱃속의 태아도 치료한다는데.

“태아도 똑같이 소변, 초음파, MRI(자기공명영상), 내시경 등 방사선을 제외한 모든 검사가 가능하다. 수혈이나 수술도 할 수 있다. 태반에 비정상적으로 연결된 혈관으로 태아에게 혈액이 불균형하게 공급되는 수혈증후군이 쌍태아의 흔한 합병증인데, 이 경우에는 태아내시경 수술을 하면 된다. 엄마 뱃속에서 조기 치료를 받으면 완치까지 가능하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들 어떻게 하면 임신과 출산을 늘릴까를 고민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임신된 태아에 더 신경쓰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아픈 태아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이들 모두 치료를 통해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야 하지 않겠나.”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생소한 단체다.

“임산부·태아의학 연구 발전과 국내 모자보건 증진을 목표로 1994년 설립된 학술단체다. 태아는 엄마 자궁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지만, 90년대부터는 치료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태아의학회였는데, 국제적인 추세를 따라 2009년도에 모체태아의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다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익숙한데, 우리 단체는 잘 모르더라. 앞으로 열심히 홍보하려고 한다.”

–회장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회장 임기인 2년이란 시간이 생각보다 짧긴 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역대 회장 모두가 해오던 모체태아에 관련한 학술적인 발전은 디폴트(기본값)다. 또 하나는 바로 후학을 키우는 거다. 최근 의료 대란 이슈도 있었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산과 의사가 정말 없어지고 있다는 거다. 올해 모체태아의학을 전공하는 펠로우(전임의) 이수자가 국내 10여명 수준이더라. 이건 진짜 큰일이다. 산과를 기피하는 이유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건 바로 수가(보험이 정한 진료비) 인상과 법적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다. 수가 문제는 이미 얘기가 많이 돼서 이전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재왕절개 수술 비용이 반려동물 치료비보다 싼 게 현실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잘 논의해 풀어나가려고 한다.”

–정부가 의료사고 보상 금액을 3억원으로 올렸다.

“2007년에 책정된 보상 금액은 3000만원으로 17년간 유지됐다. 17년 만에 10배로 올렸으니 유의미한 변화이긴 하다. 그러나 민사 소송으로 가면 실제로 판결 배상 액수가 평균 10억원 이상이어서 3억원은 현실적으로 부족한 액수다. 대부분 민사소송 판결에는 피해자의 여명과 수입 등이 반영되는데, 태아가 사망한 의료사고의 경우 최저임금에 기대수명을 곱하니 액수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학회가 정부를 설득해 보상금 확대, 법 개정 등 다양한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것만 해결돼도 젊은 의사들을 유입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외에 우리 병원 교수들, 학회 차원에서 교육 시스템과 퀄리티(수준)도 많이 강화할 예정이다. 우리 과로 와 달라고만 하지 않고, 우리도 그들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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