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 기업대출의 무게 추가 대기업으로 기울고 있다. 여신재편 과정에서도 대기업 대출은 빠르게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사실상 정체흐름을 보인다. 이에 따라 생산적 금융이라는 구호와 달리 자본효율과 건전성 관리가 우선순위에 놓이면서 자금배분의 양극화가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대기업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71조979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연도(162조2793억원)보다 5.9% 불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은 554조880억원에서 562조4385억원으로 늘며 증가 폭이 1.5%에 그쳤다.
지방은행의 온도 차는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5대 지방은행(부산·경남·전북·광주·제주)의 대기업 대출잔액은 2024년(8조8786억원) 대비 22% 증가한 10조810억원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88조3476억원으로 1년 전(86조6275억원)과 비교해 2% 늘어나며 거의 변동이 없었지만 대기업 대출은 크게 늘어났다.
대기업으로 대출이 쏠리는 배경에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 관리가 자리한다. 주주환원을 위해 CET1비율을 12~13%로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위험가중치(RW)가 낮은 대기업 여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같은 금액을 취급해도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은 위험가중자산 증가 폭이 작기 때문에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되는 국면에서 은행으로서는 자본 대비 수익률을 따질 수밖에 없다.
건전성 지표도 변수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89%로 대기업(0.16%)보다 높다. 이에 충당금 적립 부담을 감안하면 은행이 중소기업 여신을 공격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 확대'를 핵심 목표로 제시하면서도 우량차주 중심의 선별영업을 강조하는 이유다. 정책금융기관 보증이 붙은 중소기업 대출은 유지하되 순수 신용 기반 여신은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식이다.
지방은행은 거시경제 둔화에 지역경기 위축이 겹쳤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업 익스포저의 부담이 남은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확대하면 자산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 현장의 자금흐름이 간극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혁신기업과 전략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은행은 위험 대비 수익이라는 기본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지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환경은 더 빡빡해질 가능성이 있다. 담보여력이 부족한 기술 기반 기업이나 지역 제조 업체는 은행 대출이 막히면 금리가 높은 대체자금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 대기업 유치 경쟁이 중소기업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여신은 마진이 낮더라도 자산건전성과 자본비율 관리 측면에서 안정적"이라며 "RW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연체율 추이를 보며 중소기업 지원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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