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다시 고개 드는 미국의 한국차 관세
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 내 완성차 생산대수는 모두 377만대다. 그런데 이 중 330만대를 해외로 수출했는데 주요 수출국은 미국과 캐나다 등의 북미다. 그 이유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이른바 ‘USMCA’라고 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어서다. 물론 멕시코가 미국에 무관세로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미국산 부품을 일정 부분 사용해야 하며, 멕시코 내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도 16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너무 저렴하게 만들면 생산 경쟁력이 커져 미국 내 자동차 생산이 줄어들 수 있음을 우려한 조치다. 그리고 이런 조치를 이끌어 낸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실제 멕시코에 공장을 둔 기아도 예외는 아니다. 생산의 70%는 미국과 캐나다로 수출한다. 이외 GM, 토요타, 현대차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멕시코 내수 판매가 140만대에 머무는 만큼 수출은 멕시코 내 자동차산업의 버팀목이다. 그런데 트럼프 후보가 이것도 미국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며 멕시코에서 생산된 완성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우회 진출하는 멕시코산 중국차에 대해선 관세 1,000%를 언급했다. 자신이 주도했던 USMCA 협상을 다시 개정해 자동차부문은 ▲미국에서 ▲미국 내에서 생산된 부품으로 ▲미국인이 직접 만들고 ▲미국인이 구입하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자 멕시코에 공장을 둔 완성차기업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돼 관세 부과를 현실화하면 멕시코 공장의 생산 물량을 미국으로 대폭 이전해야 하는데 미국 공장의 생산 여력이 없는 데다 멕시코 공장 생산 물량의 대체 시장도 마땅치 않아서다.
그런데 멕시코 완성차 관세 부과를 예의주시하는 또 다른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 또한 완성차의 미국 수출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된 완성차는 130만대로 전체 생산의 30%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 비중이다. 일본 또한 같은 기간 미국 수출대수는 150만대로 전체 자동차 수출의 33.9%를 차지한다.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멕시코에 관세를 높이면 다음 관세 인상 타깃은 한국과 일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셈이다.
과거 트럼트 대통령 시절, 한국은 자동차 부문 FTA 개정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미국에서 생산, 한국으로 수출되는 완성차 대수와 한국산 미국 수출 대수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무역 불공정을 언급했다. 반면 한국은 FTA 체결 이후 미국산 완성차의 국내 판매가 늘었고 대수보다 증가율을 봐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타협 결과 자동차 부문은 미국의 요구가 많이 반영돼 미국 내 안전기준을 충족한 자동차의 한국 수출 대수를 확대하고 미국의 배출 기준도 일부 수용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미국의 보호주의가 고개를 드는 시점이 2016년이었다면 지금은 미국 내 정치권 모두가 보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이 차이점이다. 따라서 트럼프와 해리스 후보 가운데 누가 집권을 하든 자동차 부문의 미국 내 산업보호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멕시코산 자동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미국 내 생산직 일자리 확대를 우선하겠다는 것과 같아서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부문을 다시 건드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군사 동맹과 별개로 자동차산업은 미국 중심으로 빗장을 걸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얘기하는 것은 단순하다. 자동차는 이제 각 나라가 각자 만들고 그 나라에서 판매하자는 것이다. 내연기관이든 전기차든 분야의 선택은 개별 국가가 하되 생산과 판매 만큼은 각자도생하자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그리고 이때마다 위기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저렴하게 생산해 미국으로 완성차 수출이 많은 기업이다. 그 중에는 한국차를 대표하는 현대차와 기아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자동차 부문의 협상력을 키우려면 한국과 일본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두 나라가 모두 미국의 동맹인 만큼 자동차 부문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한일 간의 여러 갈등은 그것대로 완화 방안을 찾되 공동 대응이 필요한 것은 분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도 치열하지만 때로는 공동 작전도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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