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디자인, 뛰어난 승차감과 정숙성 가졌지만 실패한 국산 세단

차명 '알페온'은 '가장 빛나는', '가장 중요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의 첫 번째 글자 '알파'와 '무한', '영원'을 뜻하는 '이온'의 합성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의 명성을 드높이는 차'라는 뜻으로 지어졌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GM 대우 브랜드가 고급차 판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디어 인정했는지 이번에는 알페온의 'A'를 형상화한 전용 엠블럼을 부착해 GM 대우의 다른 라인업과 차별화했어요.

2008년 선보인 뷰익 '인빅타 컨셉트'를 충실히 따른 외관은 GM 디자인 특유의 수수하면서도 강인함이 돋보이는 생김새였습니다. 경쟁차를 압도하는 전장에 굵은 선과 면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더해지니 박으면 무조건 이길 것 같이 단단해 보였고,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을 줬어요.

현대 그랜저나 기아 K7이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화려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이쪽은 묵직한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죠.

그렇다고 마냥 심심하지도 않았습니다. 별다른 장식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뷰익의 상징인 '폭포수 라디에이터 그릴'이 존재감을 끌어올렸고 마치 잘 다려진 정장 바지의 칼주름처럼 철판에 긴장을 준 것, 보닛의 양 끝에 방열구 장식을 더하면서 나름 개성도 뽐냈습니다. 헤드램프는 높낮이는 물론 조향하는 방향에 따라 빛을 조사해 주는 어댑티브 기능까지 품었어요.

측면도 두툼한 C필러, 견고한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로 전면부의 든든함을 이어가면서도 매끄러운 아치형 루프라인과 측면 유리창, 즉 그린하우스 면적을 줄여 차를 보다 날렵해 보이게 만드는 등 트렌드를 충실하게 반영했습니다.

철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자칫 둔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과거 뷰익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은 리본 형태의 캐릭터 라인을 더해 무게감을 덜어내면서 이를 해소했죠. 또 지금 기준으로도 거대한 19인치 휠을 신어 남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대신 가장 작은 휠이 17인치에 달하는데도 상대적으로 차가 확 저렴해 보이는 단점이 있었죠.

후면부 역시 날개 형태의 LED 테일램프를 기본 적용하고 대구경 듀얼 머플러 팁을 더해 멋스럽게 마무리했습니다. 근데 왠지 어떤 차가 겹쳐 보였는데요. 봉긋 솟아오르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과 테일램프의 형상까지 앞서 2009년 출시된 현대 신형 에쿠스와 많이 닮았는데 알페온의 컨셉트카가 이미 에쿠스보다 앞서 등장했고 이외에 별다른 논란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단순히 우연인 듯합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올란도와 모하비가 있었죠.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출시된 라크로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신형 에쿠스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빼닮았더라고요. 이것도 우연이겠죠?

이 밖에 당시에는 대우 로고를 다른 GM 계열사 로고로 바꾸는 드레스업이 유행이었는데 알페온도 이를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뷰익 로고를 구해다가 오리지널 라크로스를 만드시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실내 역시 GM의 최신 디자인 큐인 '듀얼 콕핏' 디자인이 적용됐습니다. 둥글게 이어진 랩 어라운드 스타일의 높은 벨트 라인, 부드럽게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는 센터패시아가 말 그대로 콕핏에 앉은 것처럼 탑승객을 감싸 안았는데, 보편적인 국산차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신선한 스타일로 안정감이 돋보였습니다.

어두운 가죽과 우레탄, 블랙 하이그로시 장식을 메인으로 중후함을 강조했고 오션블루 컬러의 조명과 엠비언트 라이트로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여기에 한글어에 신경 쓴 계기판의 컬러 LCD 정보창, 스테이츠맨의 트라우마를 날려줄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 파노라마 선루프 등 경쟁차 못지않은 사양으로 무장했고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편의장비인 통풍시트는 물론, 2013년식부터는 스티어링 휠 열선과 앞좌석 마사지 시트까지 추가됐어요.

특히 통풍시트는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에서 주로 사용하는 흡입식으로, 대부분의 국산차에서 만날 수 있는 바람을 뿜어내는 방출식보다 시원한 느낌은 덜 했지만 장시간 운전에도 쾌적하다는 장점이 있죠. 방출식은 처음에는 만족스러운데 오래 틀면 뭔가 시려서 중간에 끄게 되더라고요. 좋고 나쁨이 아닌 각자 장단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DMB, DVD를 지원하는 8인치 대화면 내비게이션과 도합 11개 스피커의 인피니티 프리미엄 사운드 등 멀티미디어 기능도 아쉽지 않게 갖췄습니다. 초기에는 내비게이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오디오 유닛이 들어갔지만, 2012년식부터는 8인치 디스플레이 오디오를 기본 탑재해 꽉 찬 느낌을 줬다는 점도 좋았죠.

후방 카메라도 없고 연식이 있다 보니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폰 커넥트 기능도 쓸 수 없었지만, 애프터마켓 장인들의 손을 빌리기가 수월했어요.

한편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스티어링 휠 왼편에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가 없는 게 참 허전했죠. 이는 알페온이 겪은 무리한 포지셔닝의 흔적이기도 했습니다. 고향인 북미에서는 프리미엄 E-세그먼트 차량들과 경쟁하기 위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원래라면 국내에서의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제네시스와 오피러스였죠.

하지만 판매 볼륨을 키워야 했기 때문에 그랜저와 K7, SM7 등 준대형 차를 타깃으로 삼았고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뒷좌석 듀얼 모니터, 고급 내장재 등 여러 호화 옵션들을 삭제해 단가를 맞췄습니다. 이후 후속격으로 출시된 준대형 세단 '임팔라'보다 알페온이 더 고급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래도 근본이 럭셔리인 만큼 뒷좌석 편의성은 공간과 편의장 비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전용 에어벤트는 물론 전동식 후방 블라인드, 누가 GM 차 아니랄까 봐 길이는 짧았지만 오디오와 공조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암레스트 버튼까지 마련해 고급감을 챙긴 것도 좋은 부분이었어요.

다만 의외로 트렁크가 좁았는데요. 내부를 부직포로 꼼꼼하게 덧대 고급스럽게 마감한 것은 좋았고 엄밀히 따지면 용량 자체는 충분했습니다만, 공간 구성이 애매해 골프백이 가로로 실리지 않는 등 실제 사용할 때는 동급 경쟁차들에 비해 불편했습니다. 이 급의 차량에서는 보기 드문 옵션인 6:4 분할 폴딩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이러면 뒷좌석에 한 분이 못 타잖아요.

파워트레인은 4기통 2.4, V6 3.0L 두 가지 직분사 가솔린 엔진에 모두 6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경쟁 모델과 동일하게 구성했습니다. 외관에서 짐작되듯 고급차에 걸맞은 묵직한 주행감과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기분 좋은 승차감을 제공하면서도 낭창낭창한 경쟁 차들과 달리 핸들링도 의외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같은 입실론 플랫폼을 사용한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고속주행 안정성도 돋보였어요.

특히 뛰어난 NVH를 강점으로 내세웠는데요. 4점식 독립형 엔진 마운트, 두툼한 흡차음재와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해 실내로 유입되는 진동과 소음을 크게 줄였어요. 정숙성을 높게 평가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과도 잘 맞았죠.

또 광고에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모델을 함께 등장시켜 강점을 어필한 것이 돋보였습니다. 주행 감각을 강조하기 위해 BMW 5 시리즈를, 조용하기로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은 렉서스를 광고에 등장시켜 뛰어난 정숙성을 강조했어요. 여느 비교 광고처럼 1:1 비교를 우세한 점을 따지기보다는 소위 리스펙하는 방식으로 각각 독일차와 일본차를 소유한 오너들이 알페온을 경험하며 느낀 장점을 설명하는 잔잔한 스토리텔링 광고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보령 미션으로 일컬어지는 6단 자동 변속기가 어김없이 말썽을 일으켰는데, 같은 변속기를 적용한 다른 라인업과 마찬가지로 고속, 항속 주행에서는 별다른 이슈가 없었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 주행에서는 원하는 타이밍에 변속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저속에선 바보가 되는 등의 단점을 그대로 공유했죠.

여기에 경쟁차 대비 약 200kg 가까이 무거운 몸무게도 문제였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 차는 사실 반체급 이상 큰 모델이었으니까요. 이는 당연히 연비 면에서도 불리했고 출력에서의 아쉬움으로도 이어져 '할배온'이라는 농담 섞인 별명과 함께 알페온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출시 초 전문 매체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는 시승 차량의 대부분은 3.0 모델이었던 반면 실제 대부분의 판매는 2.4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죠. 포지셔닝을 무리하게 준대형에 맞추느라 넉넉한 출력의 3.6L 모델을 제외한 것이 결국 자충수로 작용한 것인데, 차라리 3.0L 모델을 주력으로 채용하고 오리지널 라크로스의 3.6L 엔진과 AWD를 상위 모델로 함께 제공했다면 동력 성능에서의 불만은 크지 않았을 텐데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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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잘한 연식 변경을 거쳐 상품성을 개선했습니다. 2013년식부터는 폭포수 그릴의 디테일과 헤드램프의 블루링 장식을 더해 인상이 더욱 또렷해졌고, 이에 더해 기존 유압식 스티어링을 전자식 R-EPS로 대체해 6단 자동변속기도 신형으로 변경해 주행 감각 면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죠. 2014년에는 업그레이드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새로운 버건디 외장 컬러를 추가한 2014년형 모델이, 같은 해 여름 출시된 2015년형 모델부터는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을 전 트림 기본 적용하고 드디어 크루즈 컨트롤이 탑재되면서 허전했던 스티어링 휠 버튼이 완전히 채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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