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쓰의 21구‘라는 논픽션 산문이 있습니다. 야마기와 준지라는 일본 작가의 스포츠 논픽션 ‘슬로커브를 한 번 더’에 수록된 글인데 꽤 유명합니다. 에나쓰 유타카는 KBO 초창기 30승 투수였던 너구리 장명부의 정신적인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는 투수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60년대와 70년대 최고의 왼손투수로 군림했던 투수입니다. 무려 한 시즌 400개가 넘는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했고,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343개)과 신기록(344개)을 같은 타자, 오 사다하루를 상대로 기록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타이기록을 만들 때 오 를 상대로 삼진을 잡고, 타순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일부러 맞춰 잡는 피칭을 하다가 다시 오 를 상대로 삼진을 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면서 전성기를 달리던 에나쓰에게 시련이 찾아옵니다. 손가락에 혈행장애가 생긴 겁니다. 그는 긴 이닝을 투구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소속팀이었던 한신은 그를 난카이로 트레이드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전설의 명장 노무라 감독을 만나게 됩니다. 들려오는 일화는 이렇습니다. 노무라 감독은 트레이드에 상심해 야구를 그만두려 했던 에나쓰를 호텔방으로 불러서 함께 술을 한 잔 하자고 했습니다. 독한 일본 소주를 놓고 노무라 감독은 아무 말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에나쓰는 그 광경을 그냥 바라봤습니다. 시간은 흘러서 밤은 달아나고 멀리 창밖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노무라 감독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자네. 나와 혁명을 함께 하지 않겠나?”
노무라 감독이 말한 ’혁명‘이란 이기는 경기의 마지막 투수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전문 마무리 투수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에나쓰의 21구‘는 1979년 재팬시리즈 7차전 9회의 이야기입니다. 한 점 앞선 상황에서 재팬 시리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에나쓰가 무사만루의 위기에 몰리지만 그 위기를 탈출하면서 당시 소속팀이었던 히로시마에 첫 우승을 안기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이 논픽션이 담겨있는 책, ‘슬로커브를 한 번 더’는 한국에도 번역이 됐고, 저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김진성 선수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했습니다.
“언젠가 그날의 영상을 보면서 같이 공 하나하나를 분석해 보면 어때요?”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김진성의 8구입니다.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수원에서 열린 LG와 KT의 주말 3연전 두 번째 경기. LG는 9회말 정규이닝 마지막 수비에 들어갈 때 7:5로 두 점을 앞서 있었습니다.
첫번째, 지금부터 따옴표 안의 이야기는 김진성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위에 예를 들었던 논픽션 산문 '에나쓰의 21구'와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사진은 생략하고 글로만 1구부터 8구까지 표현했습니다.
머리로 상황을 그려주시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등판 전
김진성은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 있었다. 어차피 위즈파크 불펜은 가까웠고 몇 걸음만 옮기면 불펜에 갈 수 있었다.
“목요일, 금요일 모두 등판을 했었거든요. 요즘 3연투는 잘 안 하니까 그날은 그냥 경기를 보고 있었죠.”
한점 앞서있던 LG는 수순대로 마무리투수 유영찬을 마운드에 올렸는데 유영찬은 그날의 등판이 일주일 동안 세이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서 등판 기회가 없다가 오랜만에 오른 마운드였다.
“영찬이랑 저는 공통점이 많아요. 프로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주목을 받았던 적이 없었고, 큰 일을 맡았는데 그걸 잘 해내고 있는 게 공통점이죠. 그래서 참 조언도 많이 해주고 격려도 하고 그럽니다.”
오랜만의 등판이어서였을까?
그는 선두타자 김준태와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KT는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에서 동점주자가 무사에 출루하면서 희망을 되살렸다. 그리고 이어진 5번 타자 박병호도 2구째에 안타를 때려내면서 끝내기 주자까지 출루하게 된다. 6번 타자 황재균도 안타를 때렸고 점수차는 한점 차.
“지금 영찬이라면 저 상황에서 연속 안타를 맞는 건 상상도 못 할 텐데 말이죠. 지금 영찬이는 언터쳐블인데.”
중계방송 화면을 다시 보면서도 김진성은 한마디 한마디에서 유영찬을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타자는 7번 타자 배정대. 소위 우리는 그를 끝내주는 사나이, 승부사로 부르고 있다. 9회말만 되면 없던 힘도 살아나는 그 타자를 무사 1,2루에서 만나게 됐다. 그때까지도 LG의 불펜은 텅 비어있었다.
“딱 이때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보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요. 불펜으로 갔습니다. 팔은 원래 빨리 풀리니까 걱정은 안 했는데 3연투잖아요. 마음의 준비는 했죠. “
타석의 배정대는 작전을 수행했다. 번트 자세를 취했다 풀었다를 반복했고 LG의 내야진도 번트에 대비한 휠플레이(상대 번트에 2루 주자를 잡는 내야진의 수비형태)와 노멀 플레이(페이크 번트를 대비하는 내야진의 수비형태)를 번갈아 가며 펼쳤다. 그런데 유영찬의 공이 계속 볼이 들어갔다. 공 4개가 연속해서 볼이 들어가면서 볼넷. LG트윈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고 불과 몇 분 전까지 불펜이 아닌 더그아웃에서 승리를 즐길 생각을 하고 있던 그가 마운드에 올라라게 됐다.
제1구
“영찬아. 막아라. 제발 막아라. 몸을 풀면서도 이렇게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요. 몸은 다 풀려있기는 했죠. 저는 긴장감이 있는 상태로 몸을 풀면 몸이 금방 풀리거든요. 공 한 다섯 개 정도면 다 풀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풀고 나서 만약에 상황이 안 돼서 못 나가게 되고 나중에 다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돼서 몇 번을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 그게 어려운 거지 처음 몸 풀 때의 부담은 없어요.“
2분, 3분 만에 금방 몸을 풀고 올라간 마운드. 무사에 주자는 만루였고 타석에는 8번 타자 신본기(현 부산MBC 해설위원). 좋은 컨택능력을 갖춘 타자로 특히 이날은 홈런도 때리면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김진성의 1구는 몸쪽 살짝 높은 시속 140km의 직구가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저는 정교한 투수가 아니에요. ’바깥쪽 낮게 스트라이크를 던지자.‘ 올라가자마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 안 합니다.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게 중요한데 이 초구가 스트라이트가 되면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오! 이거 막겠는데?‘ 이런 생각이요. 이런 느낌이 맞을 때가 많거든요.“
등판 후 ‘초구의 감‘은 김진성에게 매우 중요했다.
“작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똑같았어요. 2차전에 4회 2사 만루에 나왔을 때요. 노시환 선수 상대할 때요. 그때도 똑같았어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이때와 똑같은 느낌이었어요.“
‘오! 이거 막겠는데?‘
제2구
2구는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 보다 약간 낮게 들어갔다.
‘볼’
로케이션으로 봤을 때 최고의 유인구였다. 그러나 신본기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공을 그냥 바라봤다.
‘포크볼을 던질 걸 미리 알고 있다.’
마치 신본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김진성은 신본기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는 마운드에 오르면 타자의 반응보다 제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물론 타자 반응도 살피기는 해야죠. 그래도 오롯이 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제3구
김진성과 허도환 배터리는 다시 한번 포크볼을 선택했다. 이번 공은 2구보다 살짝 더 바깥쪽에서 떨어졌다.
2구에도 미동하지 않았던 신본기는 더 멀리서 떨어진 포크볼에 반응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이때 신본기 선수는 중타이밍 - 직구와 변화구를 같이 보는 - 을 잡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 공이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니니까요. 빨라야 144~5 정도 나오는데 타자가 중타이밍 잡고 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칠 수가 있죠. 이때는 2,3구 둘 다 잘 떨어진 공인데 안 나오니까 도환이형도 낮은 공은 안 통한다는 생각을 했나 봐요. “
제4구
허도환의 사인은 직구였다. 그리고 살짝 바깥쪽에 앉아서 미트를 벌렸다. 그러나 김진성의 신본기 상대 4구는 반대투구가 됐다. 공은 신본기의 몸쪽을 향해서 파고들어 갔다.
볼카운트 2볼 1스트라이크. 타자가 유리한 이 배팅카운트에서 신본기는 ‘왔다!‘하면서 배트를 돌렸다. 그러나 중타이밍으로 잡고 있던 것이 신본기에게는 독이 됐고 공은 배트 끝에 조금 늦게 맞으면서 높게 떴다. 타구는 멀리 가지 못했다. 팝플라이. 심판들을 일제히 ‘인필드플라이‘ 신호를 보냈다.
1아웃.
“이 아웃카운트를 잡으니까 ’막을 수 있겠는데?‘였던 물음표가 ‘이거 막겠다!’라는 느낌표로 바뀌었고 세이브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반대투구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환이형이 바깥쪽에 앉았는데 공이 몸쪽으로 갔어요.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제 몸과 템포, 밸런스에 집중했습니다. 이 순간은 좋은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고요. 계속 기분 좋은 흥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순간 화면에 잡힌 김진성은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혼잣말을 계속했어요. 주문을 외우 듯이요. 제 확신의 언어를 계속 외우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 거죠. 이걸 계속 외우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제 자신에 집중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제5구
타석에는 9번 타자 조용호. SK 시절부터 훌륭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4할대의 출루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타자다.
“조용호라는 타자의 특징은 너무 잘 알죠. 눈도 좋고요. 그런데 일단 배팅 스타일이 컨택 위주니까 잘만하면 여기서 더블플레이로 경기를 끝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포크볼을 생각했는데 도환이형도 포크볼 사인을 냈어요.“
김진성의 포크볼은 좌타자 조용호의 몸쪽에서 떨어졌다. 조용호는 초구부터 배트를 돌렸고 이 타구는 3루수 구본혁 쪽으로 굴렀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던 타구. 대시하던 구본혁은 포구 과정에서 이 공을 한 번 품에서 튕겨냈다.
‘펌블’
그러나 구본혁은 필사적으로 튕겨나갈 것 같던 이 공을 다시 잡아서 홈에 뿌렸다. 3루에 있던 대주자 안치영도 동점을 노리면서 필사적으로 홈으로 달렸으나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2아웃.
“아니! 그런데 이거 본혁이가 침착하게 했으면 그냥 홈에서 1루 가서 더블플레이 아니었나요?”
제6구
2사 주자 만루에서 타석에는 1번 타자 천성호가 들어왔다. 현재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동료다. 천성호는 2024년 4월에 뜨거운 시즌 초반을 보냈는데 4할을 넘나드는 높은 타율을 기록하다가 5월부터 타율이 조금씩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날도 천성호는 경기 후반 대타로 경기에 투입됐다.
“도환이 형 사인 믿고 갔어요. 포크볼 사인이 났는데 바깥쪽으로 좀 빠져서 볼이 됐죠.“
다음 공은? 허도환은 다시 포크볼 사인을 냈다.
제7구
“이번 공은 좀 뒤쪽에서 놨는지 좀 높게 가다가 한복판으로 갔어요. 완전 한가운데 들어간 실투였죠. 아마 성호는 제 공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 제 포크볼이 어떤 느낌인지를 지켜본 것 같아요.“
사실 프로세계에서 투피치 투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제가 가진 구종이라고는 직구와 포크가 전부인데 이걸로 어떻게든 상대를 극복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NC에 있던 시절에는 제 장점을 살리는 투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깨닫지 못했어요. 당시는 코칭의 방향이나 제 마인드도 앞으로 끌고 나와서 던지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고요. LG로 이적해서 김경태 투수코치를 만났는데 경태 코치님이 릴리스가 높은 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서로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살리면서 점점 좋은 결과들이 나오고 자신감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2구 연속 포크볼. 천성호가 배트를 내지 않으면서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가 됐다. 이 상황의 볼배합을 모두 허도환의 선택에 맡긴 김진성은 다음 공의 사인을 접수했다.
제8구
다시 포크볼. 3구 연속 포크볼.
의심은 없었다. 아무리 타자가 공 두 개를 봤다고 해도 1,2구 포크볼 모두 원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하나만 제대로 떨어지면 됐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공을 던졌다.
“딱!”
타구방향은 3루 쪽이었다. 구본혁은 라인 쪽을 지키고 있었다. 그 타구를 잡은 구본혁은 3루를 밟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이요. 본혁이는 세리머니를 왜 했을까요? 세이브는 제가 했는데요. 더블 플레이로 못 끝냈던 게 머쓱해서 그랬겠죠? 본혁이 참 재밌는 친구예요.“
‘위대한 세이브, 그 후’
나는 이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김진성의 위대한 세이브였습니다.”
라고 콜을 했다. 충분히 ‘위대하다‘는 표현을 쓸만한 자격이 있는 세이브였다고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지난 2025년 5월 18일. LG 트윈스는 또 KT위즈와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는 김진성 선수의 아들들이 시구와 시타를 맡아서 화제가 됐는데 이 날, 아주 공교롭게도 김진성은 또 세이브를 기록했다. 8회 2사 1,2루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4개의 아웃카운트를 연달아 잡아내면서 ‘위대한 세이브‘ 1주년을 축하하듯이 다시 세이브를 챙겼다.
2025 시즌, 김진성은 꾸준히 승계주자(앞의 투수가 남겨둔 주자)를 받으면서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78번의 등판에서 무려 75명의 주자를 받았다. 이 부문 리그 1위였다.
영광도 따라왔다. 앞서 본인이 직접 이야기했던 2025 코리안시리즈 이야기. 그는 2차전 4회 2사 만루 위기에 등판해서 4번 타자 노시환을 삼진 처리하면서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40세 7개월 20일)가 됐다.
이 모든 일은 그 ‘위대한 8구 세이브‘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 이후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 확실히 바뀐 게 하나 있기는 하네요. 감독님이 만루가 되면 저를 계속 찾으세요.
뭐 저야 계속 막아야죠.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
이 인터뷰는 유영찬 선수가 부상을 당하기 전인 지난 4월 23일, 한화와 LG의 경기 전에 이뤄졌습니다.
유영찬 선수가 건강하게 회복해서 복귀해 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