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입장에서 본 영화 ‘9명의 번역가’[Allie의 영어로 먹고사는 이야기]

비밀스러운 장소에 갇혀 번역을 해야 했던 번역가들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내 직업에 직업에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다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다

외출할 때마다 한증막 안을 걷는 듯한 습도와 온도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곤 한다. 문득, 나의 소중한 일인 통역가나 번역가에 관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자신의 직업에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영화에 그려지는 직업의 일상과 현실의 미묘한 차이와 괴리적 요소를 찾으며, ‘저것은 말도 안 돼, 납득할 수 없어!’를 외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함일까?

나의 직업에 대한 강력한 확신도,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의 정체성의 일부분이자 생계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중한 나의 ‘일’이 영화라는 현실이자 비현실 속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들이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이유에서였다. 그 실화라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믿기 힘들었었고,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기사를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모든 상황이 그려지며 미간이 절로 찡그러졌다.

벙커에 갇혀 모든 것을 통제받으며 작업하는 9명의 번역가들

영화는 전 세계 독자가 기다리는 소설 ‘더덜러스’의 최종편의 판권을 획득한 출판사 편집자 가 12월 동시 번역되어 3월에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승리의 확신에 찬 제작 발표회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짧은 한 마디 대사를 듣자마자 투덜거림은 시작되었다. “아니, 12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3월 서점에 판매되려면, 퇴고 작업까지 감안할 때 얼마 만에 번역을 완성해야 한다는 거야...…”

프랑스 공항에 세계 곳곳의 번역가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은 압수당한다. 엄청난 크기와 호와스러워 보이는 맨션에 도착. 각각 명찰을 받아 들고, 공항에서처럼 검색대를 지난다.

IT회사에서 근무했을 때 사무실을 출입할 때마다 거쳤던 소지품을 검색대에 스캔하는 과정을 거치고 수색봉에 몸을 맡겨야 했던 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핸드폰 카메라에 붙여진 보안 스티커를 잊어버리고, 높은 건물에서 아름다운 뭉게구름을 볼 때마다 열었던 카페라 어플에 드리운 까만 화면에 좌절했던 바보 같은 순간도.

녹음기와 개인 소지품 등을 모두 반납한 채 어리둥절한 영화 속의 번역가들. 고되지만 명성이 따르는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각기 다른 이유로 이들은 더덜러스 전편의 총 판매량 상위 순으로 모셔왔다는 달콤한 출판사의 말을 듣고는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하다. 이전 작업에 대한 치하와 큰 보상이 그들에게 갇혀 지내는 작업을 용인할 당위가 된 것이다.

너무나 혹독한 작업 규칙들

넓은 정원을 가진 맨션이지만 그들의 작업 공간은 하나이다. 공동작업을 위해 마치 학교에서처럼 모두 앞을 향해 나란히 정렬된 책상에 앉아 작업한다. 보안상 20 페이지씩 나누어 주고 매일 저녁에 회수. 한 달 동안 480페이지를 완성하고, 그 후 한 달간 교정작업이 주어진다.

인터넷은 당연히 사용할 수 없고, 자료조사는 충분히 준비된 책을 활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자료 조사하는데 충분히 시간과 공을 들인다. 맥락과 상황, 배경에 따라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좋은 번역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자료 조사는 30퍼센트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 불가라니. 도서관과 같은 자료 실에서 언제 책을 다 찾고 앉아 있냐는 말이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하릴없이 번역가로서 몰입하면서 스트레스가 온몸을 감싼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중의 한 명, 아니 10번째 번역가로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번역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홀로 작업하는 것이다. 나의 패턴과 생체, 무드 흐름에 맡기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국의 작업은 혼자 해내야 하기에 사무실에서 작업을 할 때조차 홀로 섬에 있는 듯 방해금지 에너지를 뿜어내며 작업할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이 그 정도에 머물렀을 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영화 속의 번역가의 시원한 대사 한마디.
“여럿이 일하는 게 좋으면 번역가 안 했죠”


게. 다. 가. 총을 든 러시아 시큐리티 요원들의 항시 감시. 끔찍하고 끔찍하다. 영화적 요소라지만 과연 저런 상황에서 작업이 가능할 까. 들어온 이상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저 나날들을 보냈을 것인가.

9명의 번역가 포스터

소설 속 한 장면을 번역하기 위해 직접 수영장에 빠진 여성 번역가(한 씬의 스포 있음)

영화 속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더덜러스>의 작가는 베일에 쌓여있다.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런 작가의 엄청난 팬이기에 번역 작업에 기꺼이 참여한 여성 번역가 카테리나.

하루 20페이지를 가장 먼저 읽는 독자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결말을 알 수가 없다.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뒷 이야기를 추측하고 작업하는 내내 작가를 추앙한다.

호화로운 맨션 안의 수영장. 아름다운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얼굴이 하늘을 향한 채 수영장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영어 번역가인 알렉스가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낸다, 아니 물에서 꺼내어 낸다.

그녀는 다소 어이없는 말로 선의의 그를 타박한다.

“(소설 속) 익사하던 레베카의 감정을 느껴보려던 거예요”

“번역가 치고는 방식이 희한하네요” 알렉스가 답한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하면서도 번역가의 입장에서 그녀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려 애를 써본다. 번역가이기 이전에 흠뻑 빠진 소설의 작가에 대한 가늠할 수 없는 애정이 소설 속 인물로 직접 뛰어들게 한 것일까.

번역해야 할 장면을 번역가가 그대로 재연해 보면 더 나은 번역이 나올 것인가? 영화적인 장면이지만 인공지능 기계번역이 번역의 영역을 점점 차지해 가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수 있는 차별점은 바로 이런 물리적인 경험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감정과 공감,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 아닐까. 그런 화두를 던지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너무나 궁금한 실화이야기

삼엄한경비속 공동 작업을 하는 번역가들_by Allie with ChatGPT

그렇다면 모티브가 되었다는 그 실화는 무엇일까? 번역 현장과 규칙은 어떠했을까?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은 시대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작품 <인페르노>를 번역했던 프랑스어 번역가인 카롤 델도르토(Carole Delporte).

그녀는 2013년 3월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번역가로 선발되었고 밀라노로 향했다. 파리에 있는 남편과 어린 두 딸에게만 그녀가 어디에 왜 갔는지 알린 채. 도시 외각의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에 도착해 지하로 안내받는다. 경비원 두 명이 핸드폰과 핸드폰을 락커에 넣도록 했다. 그리고는 6개국에서 온 10명이 작업하고 있는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영화에서처럼 럭셔리한 맨션은 아니었다. 출판사 몬다도리의 본사 건물이었다.

영화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실화의 현장

무장 보안 요원이 24시간 벙커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인터넷은 차단되었으며, 번역가들의 노트북은 절대 작업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나마 나은 것은 영화에서와는 달리 다행히도 번역을 위한 인터넷은 사용할 수 있었으나 4대를 공유하여 작업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기로 메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런. 데 보안 요원이 화장실 출입 내역을 기록했다고 한다. 화장실 출입 기록이라니. 인터넷이 안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할 것 같기도 하다.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특별한 경험히 영화화되는 것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It’s interesting to have made a film about our profession,” ... “It’s good because it sparks a discussion about our job.”

“제 직업에 관한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에요.”... “ 덕분에 이 영화가 우리 직업에 대한 토론의 불씨를 지필 수 있어 좋아요.”

이렇게까지 보안에 신경을 쓰며 극비리에 번역이 진행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트와일라잇>의 작가 스티븐 마이어의 베스트셀러 뱀파이어 시리즈의 5번째 책인 미드나잇 선(Midnight Sun)의 초고가 온라인에 유출되어 출판을 할 수 없게 된 선례가 있었다.

결말 추적 스릴러

영화 포스터에 적힌 구문이다. 이렇게나 인권이 배제된 듯한 혹독한 환경에서 출판사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릴이 시작된다. 소설 첫 10 페이지가 인터넷에 유출된 것이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나머지 원고도 유출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긴장은 고조되고 범인을 찾기 위한 추적이 시작된다. 이러한 환경에 몰아넣은 야망에 휩쓸려 있는 편집장과 대척하던 번역가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들에 휘말린다. 총격신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번역가들이기에 가능했던 장면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소 주관적인 시각으로 번역가의 입장에서 몰입하고, 인물들에게 공감하며, 추리물의 전개에 따라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탐정놀이를 하듯 추론하며 볼 수 있었던 영화이다. 통역사에 관한 영화는 몇몇 있었으나, 번역가를 주인공으로 놓은 영화는 흔치 않았기에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아, 영화를 보는 내내 또 한 가지 지 흥미로웠던 것은 자막이었다. 9명의 번역가들이 자국의 언어를 사용할 때 빨간색, 녹색 등등의 각기 다른 색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번역가들에 관한 영화를 번역한 영상 번역가들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참고 아티클 : The Gardian


글쓴이 :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출간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전 세계와 소통하며 그로 인해 확장된 경험을, 국내파로서 영어교육과 학습에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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