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 465명 "'파우치 사장' 박장범 반대" 연명 성명
전무후무한 30개 기수 수백명 성명
기자들 "더 노골적 '용산 방송' 우려"
‘조그만 파우치’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박장범 ‘뉴스9’ 앵커가 차기 KBS 사장 후보로 내정되자 KBS 기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KBS 이사회가 박 앵커를 사장 최종 후보로 임명 제청한 다음날인 24일부터 29일까지 KBS 기자 30개 기수(18~28기, 29~35기, 37~43기, 45~48기, 50기)가 18개의 연명 성명을 냈다.
KBS 기자 465명이 성명에 참여, 30년차부터 지난해 입사한 막내 기수까지 사실상 기자 대부분이 박 앵커의 사장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건데 이 같은 기자들의 반발에 박 후보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KBS 기자 대다수의 박장범 사장 후보 반대 목소리에 힘입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조합원 대상 사장 신임 투표를 준비하고 있어 내부 반발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KBS 이사회에선 야권 이사 4명 모두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여권 이사 7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박장범 앵커는 1차 투표만으로 과반을 넘겨 사장 최종 후보로 선임됐다. 사장 후보 면접 대상자였던 박장범 앵커, 박민 사장, 김성진 방송뉴스주간 중 최종 후보를 가리는 해당 투표에서 박 앵커는 최소 6명의 여권 이사의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다. 박장범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의 임명재가를 거쳐 KBS 사장에 최종 임명된다.
당초 지난해 11월 보궐 사장으로 취임한 박민 현 사장의 연임 유력이 점쳐졌던 가운데, 이른바 “다크호스”, “여사 낙하산”으로 떠올랐던 박장범 후보의 사장 내정 소식은 충격적이고 예상 밖 결과라는 게 KBS 내부 전언이다. ‘대통령 친분설’이 돌았던 박민 사장을 제친 만큼 보도와 내부 인사 등에서 “현 사장보다 더 칼을 휘두를 것”이라는 기자들 우려도 나온다.
특히 박장범 후보의 사장 지원 당시부터 KBS 내부에선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24일 성명에서 “윤석열 대통령 대담 방송 이후 부끄러움을 느끼긴커녕 박장범이 대통령실로부터 직접 치하하는 연락을 받았다며 자랑스레 얘기하고 다녔다는 얘기까지 돈다”며 “실제로 박장범의 사장 도전 소문이 돈 것이 ‘파우치 대담’쯤부터다. 용산을 찾아가 자신의 대학 동창이라는 대통령실 주요 인사를 만나 사장 시켜달라 조른다는 얘기가 KBS 내부에서 돌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의 기명 성명에 공통적으로 나온 박장범 후보 반대 이유도 2월 박 후보가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신년 특별 대담 발언이다. 박 후보는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이라고 표현해 사안의 본질을 축소시켰다는 KBS 안팎의 비판을 샀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영부인 심기 보좌에 앞장섰던” ‘조그만 파우치’ 발언에 더해 “사실관계가 어긋나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기자들의 항의에도 앵커 멘트를 멋대로 고쳐 읽어왔던” 현직 앵커가 뉴스를 이용해 사장 후보로 직행했다는 점에서 “그는 ‘땡윤뉴스’를 넘어 그 어딘가로 가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KBS 내부에선 사장 후보를 두고 기자들 수백 명의 연명 성명이 쏟아진 건 사실상 전무후무한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2017년 KBS 기자 430여명이 국정농단 사태 보도 묵인,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보도 개입 폭로 이후 침묵 등 “KBS 통합뉴스룸 보도 참사”로 인해 고대영 사장 퇴진 연명 성명을 낸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다. KBS 기자협회가 24일 박장범 사장 후보 사퇴 요구 성명을 낸 후 2018년 입사자인 45기 기자들을 시작으로, 29일까지도 기수별 연명 성명이 대거 나오는 중이다.
성명에 참여한 한 KBS 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선 박장범 후보 내정 소식에 황당해하는 상황이었고, KBS 기자협회 성명과는 무관하게 기자들끼리 자발적으로 움직여 성명을 낸 것”이라며 “앞으로 더 노골적인 ‘용산 방송’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가장 컸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방송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걸, 그 어떤 권력에 기댄 보도에 대해 순응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은 “후배들이 이렇게 들고일어날지 사실 몰랐다. 지난 1년 동안 박장범 앵커 개인에 대한 내부 평가, 박민 사장 이후 KBS 뉴스에 대해 쌓여 있던 문제가 박장범 사장 후보 내정을 기화로 나온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24일 KBS 현직 야권 이사 4인은 이사회의 사장 후보 임명제청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과 박장범 사장 후보에 대한 직무 집행 정지 가처분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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