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돔 10연패, K-BASEBALL SERIES 일본1차전 4-11 대패!

도쿄돔의 천장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듯한 공기가 경기 내내 이어졌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일본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웃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야구팬들에게 익숙해졌지만, 막상 스코어 4-11이라는 숫자가 전광판에 박히는 순간엔 또다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야구가 걸어온 지난 시간의 문제가 한 경기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만큼 여러 장면이 아쉬움을 넘어 뼈아프게 다가왔다.

경기는 분명 좋게 시작됐다. 3회까지 곽빈은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직구 구속은 155km까지 나왔고, 일본 타자들의 배트가 뒤늦게 따라오는 장면도 보였다. 첫 실점 위기가 찾아온 3회도 슬기롭게 넘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마운드가 국제대회에서도 통할 힘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4회 초 젊은 두 타자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을 듯했다. 앞서 신민재가 중전 안타로 출루하자 안현민이 타석에서 박력 있게 풀스윙을 가져갔고, 공은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었다. 곧바로 이어진 송성문의 백투백 솔로포는 반짝이는 불꽃처럼 아름다웠다. 국제무대 첫 한일전에서 보여준 두 선수의 배짱은 그 자체로 박수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경기는 거기서 멈췄다. 혹은 한국이 멈춰버렸다고 해야 할까. 곽빈은 4회말 들어 갑자기 힘이 빠지듯 흔들렸고, 선두 타자에게 내준 볼넷이 악몽의 시작이 됐다. 어렵게 잡아낸 한 타구는 박해민의 호수비로 아웃 처리됐지만, 위기는 계속됐다. 결국 마키 슈고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점수를 내줬고, 이로운이 이어받았지만 일본 타선은 집요했다.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순식간에 동점이 됐다. 이쯤 되면 국제무대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위기 상황에서 변화구 제구가 흔들리고, 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다가 볼넷이 늘어나고, 결국 강하게 스윙하는 일본 타선에게 흐름을 통째로 넘겨주는 패턴. 이날도 흐름은 그대로 재현됐다.

5회는 사실 한국 야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이닝이었다. 김택연이 볼넷과 안타로 흔들리자마자 이호성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호성 역시 기시다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며 승부가 완전히 뒤집혔다. 이어 만루에서 올라온 성영탁마저 흔들리면서 추가 실점이 이어졌다. 이 한 이닝에서만 안타 5개, 볼넷 3개를 허용했고, 총 6점을 내줬다. 그 어떤 팀도 이 정도의 볼넷과 사사구를 남발해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류지현 감독이 경기 후 “11개의 사사구가 제일 아쉽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상 이날 패배의 절반 이상은 마운드가 스스로 무너진 데서 비롯됐다.

도쿄돔 환경과 스트라이크존의 차이는 분명 있었다. ABS에 익숙해진 KBO 투수들이 심판이 직접 판정하는 경기에서 적응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높은 존이 KBO보다 좁았다는 현장 반응도 있었다. 문현빈의 명백한 안타성 타구가 오심으로 아웃 처리됐던 장면은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타구가 분명 앞에서 한 번 튀었는데, 심판이 그대로 아웃을 선언했고, 4심 합의 후 번복되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졌다. 억울한 장면이었지만 한국은 그 순간 흔들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선수들도 감독도 그 이후 경기 흐름에 압도당한 듯했다.

타선 역시 1~3번이 만든 흐름을 받아줄 힘은 부족했다. 신민재는 3안타로 경기 내내 활기를 불어넣었고, 홈런 두 방도 나왔지만 노시환을 비롯한 중심타선은 단 한 개의 안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 시즌 32홈런을 때린 노시환이 체코전부터 이어진 침묵을 일본전에서도 깨지 못한 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평가전이라고는 해도 국가대표 4번 타자라면 큰 경기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고,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경기에서 얻은 게 없었던 건 아니다. 곽빈의 솔직한 인터뷰는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 곽빈은 “핑계 댈 게 없다. 제 실력이 더 좋았더라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자신이 확실히 개선해야 할 부분을 알고 있다는 뜻이며,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투수가 되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는 의미다. 변화구 제구, 위기 관리 능력, 긴 이닝 소화. 곽빈에게 필요한 건 경험과 완성이다. 이날 패배는 혹독하지만 필요한 예방주사였을지도 모른다.

한국 야구는 지금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KBO리그는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팬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국제경기에서는 여전히 일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멈춰 있다. 10연패라는 숫자는 냉혹하지만, 또다시 시작할 이유를 만든다.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실패를 교정하고, 다시 한 번 일본과 마주할 때는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평가는 끝났고, 진짜 승부는 내년 WBC에서 시작된다. 그때만큼은 오늘 느낀 고개 숙임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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