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우택의카라이프 오우택입니다.
자동차 시장에는 예쁜 쓰레기라는 멸칭이 있습니다. 디자인은 기가 막히게 예쁜데, 막상 타보면 뒷좌석은 좁아터지고 트렁크에는 골프백 하나 싣기도 버거운 쿠페형 SUV들을 비꼬는 말이죠. 스타일을 얻는 대신 실용성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출시된 르노 필랑트(Filante) 1955 에디션을 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분명 루프 라인이 매끈하게 떨어지는 쿠페형인데, 트렁크 용량이 박스형 SUV인 그랑 콜레오스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격표를 보니 더 황당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르노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쿠페형인데 트렁크가 633리터? 물리법칙 무시한 공간 설계
보통 쿠페형 SUV를 사면 와이프나 가족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기 십상입니다. 뒷좌석 머리가 닿고 짐을 못 싣는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지만 필랑트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트렁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본 용량이 633리터입니다. 형제 모델인 그랑 콜레오스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수치입니다. 비결은 늘어난 허리에 있었습니다. 필랑트는 한국 시장을 위해 차체 길이(전장)를 4,915mm까지 늘렸습니다. 유럽형 모델보다 135mm나 더 깁니다. 지붕을 깎아서 줄어든 공간을, 차 뒤쪽을 길게 늘려서 깊이로 만회해 버린 겁니다.
뒷좌석 헤드룸도 마찬가지입니다. 루프가 꺾이는 정점(Apex)을 머리 뒤쪽 C필러까지 밀어버리고, 천장을 오목하게 파내는 스쿠핑 기술을 적용해 성인 남성이 앉아도 머리가 닿지 않습니다. 겉은 쿠페인데 속은 왜건급 공간이 나오는, 그야말로 반전 매력입니다.

가격표 오류 아닌가요? 풀옵션과 고작 3만원 차이
가장 충격적인 건 가격 정책입니다. 현재 판매 중인 한정판 1955 에디션의 가격은 5,218만 원입니다. 그런데 일반 모델 최상위 트림인 에스프리 알핀에 모든 옵션을 다 넣으면 5,215만 원이 나옵니다.
계산해 보면 딱 3만 원 차이입니다. 겨우 밥 한 끼 값 차이로 1955 에디션에는 화이트 나파 가죽 시트, 전용 20인치 휠, 블루 포인트 안전벨트, 그리고 2열 전용 액세서리(태블릿 거치대, 옷걸이)까지 다 들어갑니다.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수준입니다. 풀옵션을 고려하고 있다면 무조건 1955 에디션을 잡는 게 이득입니다. 1,955대 한정이라니 눈치 싸움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디테일 변태가 만든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1.5 가솔린 터보에 100kW급 모터를 조합해 합산 245마력을 냅니다. 말이 하이브리드지, 시내에서는 엔진 켤 일이 거의 없는 전기차 호소인 수준의 주행 질감을 보여줍니다.
디자인 디테일도 상당합니다. 후면부에는 와이퍼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스포일러로 바람을 유도해 빗물을 날려버리는 공기역학 기술을 썼기 때문이죠. 테일램프는 화살표 모양의 조각들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플로팅 디자인을 적용해, 밤에 보면 국산차 통틀어 가장 존재감 있는 뒤태를 보여줍니다.

총평
르노 필랑트는 한국 아빠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만든 차입니다. 남들에게는 섹시한 쿠페를 타는 멋쟁이로 보이고 싶지만, 주말에는 가족을 태우고 캠핑을 가야 하는 그 이중적인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킵니다.
신차 출고 후 썬팅이나 블랙박스 장착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휴된 티벡스(TBEX) 앱을 통해 투명하게 가격을 비교하고 예약할 수 있으니까요. 상품성, 공간, 가격, 편의성까지. 간만에 르노가 현대기아차를 긴장시킬 만한 제대로 된 물건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