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다음은 우리?…중국에 돌아선 필리핀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아들 마르코스 집권 2년 차… 친미 행보
전임자 두테르테의 친중 행보 폐기
미군에 군사기지 4곳 추가 사용 허가 등
한국의 5번째 수교국… 2024년에 외교관계 75주년 우방
중국 함정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 지역에서 물자 보급 작업을 지원하던 필리핀 선박을 향해 레이저를 겨냥했다. (6일, 마닐라불레틴 등 외신 보도)
“필리핀 남중국해에서 중국 함정이 필리핀 선박을 향해 군용 레이저를 비춘 것은 잘못이다.” (6일, 필리핀 대통령의 주필리핀 중국대사 초치)
“(필리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경제협력을 내건 일본의 미끼로 매개로 필리핀을 미국 주도의 중국 봉쇄와 남중국해의 군사화로 유인할 것이다.” (8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 기사)
“일본과 필리핀은 경제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9일, 일본·필리핀 정상회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공동 해상 순찰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대화를 계속할 것이고, 가까운 시일 안에 성과를 내놓을 것이다.” (22일, 호주·필리핀 국방장관 공동 기자회견·고위 관계자 발언)
이달 들어 파악되는 필리핀의 발 빠른 외교 흐름이다. 중국을 매개어로 삼을 경우 필리핀의 외교는 대중 압박으로 읽힌다. 새로운 대통령의 재임 2년차를 맞이한 필리핀이 외교의 축을 중국이 아닌 미국 쪽으로 무게의 추를 확실히 옮긴 느낌이다. 미국·필리핀 국방장관의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추가 사용 합의를 시작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일본 방문, 호주와 공동 해상 순찰 추진 합의에 이르기까지 필리핀 국방·외교 보폭은 거침없어 보인다. 필리핀의 발길이 향하는 쪽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우방으로 인식하는 일본과 호주이며, 겨냥하는 상대는 중국으로 분석된다.

필리핀의 급격한 미국 쏠림이 앞으로도 지속될지 아니면 독립·자주 외교의 일시적 실리변화인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이 외교정책 방향의 고민을 끝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재임 6년 동안 독립·자주 외교 노선을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중국 친화적인 행보를 펼쳤던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전문가와 외신도 필리핀 외교의 방향 변화와 보폭을 주목했다. 배긍찬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필리핀이 미국에 군사기지 4곳에 대해 추가적인 사용을 허용한 조치와 관련해, ‘필리핀의 귀환’이라고 규정했다. 배 위원은 최근 ‘세종 논평’에서 “동아시아 전략환경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간과돼서는 안 될 부분”이라며 “필리핀이 미·중 패권경쟁 또는 나아가 패권전쟁과 관련하여 특단의 전략적 선택을 결정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이번에 포함된 필리핀 루손섬 최북단의 카가얀 기지에서 대만까지는 불과 400km 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대만에서 600km가 넘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 비해 훨씬 더 가까운 거리”라며 “향후 필리핀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이 최단의 거리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아들 마르코스의 외교정책에서 필리핀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려고 하는 분위기마저 감지했다. 배긍찬 교수의 ‘필리핀의 귀환’이라는 평가처럼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이 비로소 이전의 입장으로 복귀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의 변화가 낯설지도 않고, 놀라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나라는 1951년 필리핀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동맹을 유지해 왔다. 스트롱맨이었던 양국의 통치자 두테르테·트럼프 집권 시기를 약간의 예외시기로 애써 규정지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국도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엔 전통 우방과의 관계 증진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국 변수를 더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이전에 비해 대중 신뢰지수를 낮추고 있다는 게 포린폴리시 등 외신의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전임 정부에 비해 필리핀과 안보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필리핀은 한국에게도 각별한 나라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몇 개월만인 이듬해 3월 필리핀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필리핀은 한국이 미국, 영국, 프랑스, 자유중국(대만)에 이어 다섯 번째로 수교한 나라였다. 필리핀에 앞서 외교관계를 맺은 다른 4개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필리핀에 대한 당시 한국 정부의 시각, 필리핀의 한국에 대한 지지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6·25전쟁을 대했던 필리핀의 정치·외교에서도 확인된다. 필리핀은 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 중 최대 규모인 7420명을 파병했다. 전쟁 발발 당시 유엔총회 의장이었던 필리핀의 까를로스 로물로 의장은 한국 지원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다. 6·25전쟁에 파병 부대의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피델 라모스는 이후 대통령이 됐다. 그런가하면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니노이 아키노는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딸 베니그노 아키노 역시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정부와 마르코스정부는 각기 지난해 5월과 6월 출범했다. 임기는 5년과 6년이다. 꽤 오랫동안 임기를 같이 할 양국 대통령은 임기 중인 내년 3월 양국 외교관계 수립 75주년을 맞이한다. 양국이 고위급 차원에서 관계를 증대시키고 있는 가운데 민간 교류도 활발하다. 지난해 필리핀은 한국의 수출 대상국 11위, 교역액으로 17위를 차지했다. 필리핀관광청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필리핀을 찾은 한국인은 198만9322명으로 거의 200만명에 육박했다. 다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처럼 필리핀의 한류 현상도 강렬하다. 가령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2003년 현지의 공중파 방송인 GMA7에서 한국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방영된 드라마가 약 300편에 달한다. 필리핀 국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코리아노벨라(Koreanovela)로 부르며 즐겨 신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의 필리핀 인프라(사회기반시설) 건설 참여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임 두테르테정부의 인프라 중시(Build, Build, Buil) 기조를 이어받아 보다 적극적인 인프라 정책(Build, Better, More)을 펼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남북철도사업(North·South Railway) 프로젝트에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에 수주회사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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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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