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다음은 우리?…중국에 돌아선 필리핀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박종현 2023. 2. 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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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귀환… 미국·호주·일본 우방 벨트 복귀, 중국을 겨냥하다
아들 마르코스 집권 2년 차… 친미 행보
전임자 두테르테의 친중 행보 폐기
미군에 군사기지 4곳 추가 사용 허가 등
한국의 5번째 수교국… 2024년에 외교관계 75주년 우방
“필리핀의 주요 군사기지 4곳에 대해 미국 군대가 접근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미국과 필리핀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6년 만에 남중국해에서 공동 해상 순찰도 재개한다.” (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미국·필리핀 국방장관 회담)
 
중국 함정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 지역에서 물자 보급 작업을 지원하던 필리핀 선박을 향해 레이저를 겨냥했다. (6일, 마닐라불레틴 등 외신 보도)
 
“필리핀 남중국해에서 중국 함정이 필리핀 선박을 향해 군용 레이저를 비춘 것은 잘못이다.” (6일, 필리핀 대통령의 주필리핀 중국대사 초치)
 
“(필리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경제협력을 내건 일본의 미끼로 매개로 필리핀을 미국 주도의 중국 봉쇄와 남중국해의 군사화로 유인할 것이다.” (8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 기사)
 
“일본과 필리핀은 경제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9일, 일본·필리핀 정상회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공동 해상 순찰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대화를 계속할 것이고, 가까운 시일 안에 성과를 내놓을 것이다.” (22일, 호주·필리핀 국방장관 공동 기자회견·고위 관계자 발언)
 
이달 들어 파악되는 필리핀의 발 빠른 외교 흐름이다. 중국을 매개어로 삼을 경우 필리핀의 외교는 대중 압박으로 읽힌다. 새로운 대통령의 재임 2년차를 맞이한 필리핀이 외교의 축을 중국이 아닌 미국 쪽으로 무게의 추를 확실히 옮긴 느낌이다. 미국·필리핀 국방장관의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추가 사용 합의를 시작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일본 방문, 호주와 공동 해상 순찰 추진 합의에 이르기까지 필리핀 국방·외교 보폭은 거침없어 보인다. 필리핀의 발길이 향하는 쪽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우방으로 인식하는 일본과 호주이며, 겨냥하는 상대는 중국으로 분석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바기오의 육군사관학교에 들러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바기오=AP연합뉴스, 필리핀 대통령실 제공
◆독립·자주 외교 노선에 전통적인 ‘친미 행보로 귀환’

필리핀의 급격한 미국 쏠림이 앞으로도 지속될지 아니면 독립·자주 외교의 일시적 실리변화인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이 외교정책 방향의 고민을 끝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재임 6년 동안 독립·자주 외교 노선을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중국 친화적인 행보를 펼쳤던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전문가와 외신도 필리핀 외교의 방향 변화와 보폭을 주목했다. 배긍찬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필리핀이 미국에 군사기지 4곳에 대해 추가적인 사용을 허용한 조치와 관련해, ‘필리핀의 귀환’이라고 규정했다. 배 위원은 최근 ‘세종 논평’에서 “동아시아 전략환경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간과돼서는 안 될 부분”이라며 “필리핀이 미·중 패권경쟁 또는 나아가 패권전쟁과 관련하여 특단의 전략적 선택을 결정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이번에 포함된 필리핀 루손섬 최북단의 카가얀 기지에서 대만까지는 불과 400km 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대만에서 600km가 넘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 비해 훨씬 더 가까운 거리”라며 “향후 필리핀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이루어질 경우 미국이 최단의 거리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언론은 필리핀이 중국의 불편한 시선 내지 경고에 위축되지 않고 미국 밀착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마르코스는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는 20년 넘게 필리핀의 최고통치자로 군림했던 독재자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코스 주니어로 불린다. 그의 아버지 마르코스는 필리핀 민주화운동인 ‘피플스 파워’로 1986년 실각했지만, 집권 기간에 미국 친화적인 행보를 지속했다. 아들 마르코스는 필리핀 외교정책을 미국 쪽으로 경사지게 하고 있는데, 마치 아버지 마르코스의 장기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지원을 기억이라도 한 듯하다. 이와 달리, 아들 마르코스의 전임자이면서 부통령 사라 두테르테의 아버지인 두테르테는 미국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면서 중국을 경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처드 말레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왼쪽)과 칼리토 갈베스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이 22일 필리핀 퀘존시티의 아귀날도 기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케존시티=로이터연합뉴스, 필리핀 국방부 제공
◆두테르테 시대 종언…남중국해·대만해협 갈등 결정적 변수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아들 마르코스의 외교정책에서 필리핀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려고 하는 분위기마저 감지했다. 배긍찬 교수의 ‘필리핀의 귀환’이라는 평가처럼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이 비로소 이전의 입장으로 복귀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필리핀의 변화가 낯설지도 않고, 놀라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나라는 1951년 필리핀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동맹을 유지해 왔다. 스트롱맨이었던 양국의 통치자 두테르테·트럼프 집권 시기를 약간의 예외시기로 애써 규정지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중국 입장은 미국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두테르테 시대의 종언이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대만 인근 지역에 있는 필리핀이 친미행보를 이어간다면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경우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앞서 1월 마르코스를 서둘러 초청해 ‘외교적 그림’을 미국 등 세계에 보여줬던 중국으로서는 곤혹감이 그만큼 클 것이다. 중국은 당연하게도 두테르테의 집권기를 그리워할 수 있다. 두테르테는 남중국해 공동순찰을 중단하며 미국과 곧잘 갈등을 펼치면서 중국의 입맛에 부합하는 외교정책을 구사했다. 남중국해 분쟁을 두고도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않았던 것이다.
남중국해의 도서들을 둘러싸고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인근 해역에서 중국 해군의 군함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이 보이고 있다. 스트래틀리=AFP연합뉴스
후임자 마르코스는 미국, 일본, 호주로 이어지는 광폭 연대를 드러내기 이전인 1월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과 관련, “밤낮으로 주시하라, 매순간 주시하라, (영해 침범이 이뤄지니) 매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한 치의 땅도 잃지 않을 것이며, 우리 영토와 주권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전부는 아니지만 아버지 변수와 함께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이 중국·대만의 갈등이다. 그는 몇 차례의 외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만 압박을 우려했다. 대만해협은 바로 자국 필리핀과 인접한 곳인데, 이 지역의 긴장이 자국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기에 매우 우려스럽다고 속내를 표출하곤 했다.
미국의 사실상의 안보 동맹인 호주, 일본 등과 필리핀의 관계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줘야 하는 상황이다. 호주는 미국에 비견될 정도로 필리핀과 굳건한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필리핀이 군지위협정과 방문군협정을 동시에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호주밖에 없다. 필리핀이 2가지 협정을 동시에 체결한 대상국은 미국과 호주 2개국이라는 이야기다. 호주와 필리핀이 상대국 군대의 훈련을 위해 자국 영토 이용을 용인한 것은 1922년부터다. 100년이 흐른 2023년 인도·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양국의 공통의 관심과 중국에 대한 대응은 더욱 중요해졌다. 호주·필리핀의 동맹체제는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시각은 그래서 더욱 타당한 추정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가운데)이 18일 바기오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 바기오=AP연합뉴스, 필리핀 대통령실 제공
◆한국·필리핀 1949년 수교…필리핀, 6·25전쟁 원조에 적극적

한국도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엔 전통 우방과의 관계 증진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국 변수를 더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이전에 비해 대중 신뢰지수를 낮추고 있다는 게 포린폴리시 등 외신의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전임 정부에 비해 필리핀과 안보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필리핀은 한국에게도 각별한 나라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몇 개월만인 이듬해 3월 필리핀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필리핀은 한국이 미국, 영국, 프랑스, 자유중국(대만)에 이어 다섯 번째로 수교한 나라였다. 필리핀에 앞서 외교관계를 맺은 다른 4개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필리핀에 대한 당시 한국 정부의 시각, 필리핀의 한국에 대한 지지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6·25전쟁을 대했던 필리핀의 정치·외교에서도 확인된다. 필리핀은 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 중 최대 규모인 7420명을 파병했다. 전쟁 발발 당시 유엔총회 의장이었던 필리핀의 까를로스 로물로 의장은 한국 지원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다. 6·25전쟁에 파병 부대의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피델 라모스는 이후 대통령이 됐다. 그런가하면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니노이 아키노는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딸 베니그노 아키노 역시 대통령이 됐다.

양국의 협력 수준이 다자 공동훈련 참여와 방산물자 거래·협상·무상 양도 등으로 국방·안보 협력이 심화하고 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뒷받침 하듯이 2017년 FA-50 전투기 12대를 비롯해 2021년 호위함 2척 및 초계함 2척, 2022년 원양경비함 6척이 필리핀에 수출됐다. 마르코스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대통령 전용기는 한국산 FA-50로 공군 편대가 엄호했다고 필리핀 대통령실이 밝히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마련된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윤석열·마르코스 양국 대통령 임기 5년 같이할 동반자

윤석열정부와 마르코스정부는 각기 지난해 5월과 6월 출범했다. 임기는 5년과 6년이다. 꽤 오랫동안 임기를 같이 할 양국 대통령은 임기 중인 내년 3월 양국 외교관계 수립 75주년을 맞이한다. 양국이 고위급 차원에서 관계를 증대시키고 있는 가운데 민간 교류도 활발하다. 지난해 필리핀은 한국의 수출 대상국 11위, 교역액으로 17위를 차지했다. 필리핀관광청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필리핀을 찾은 한국인은 198만9322명으로 거의 200만명에 육박했다. 다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처럼 필리핀의 한류 현상도 강렬하다. 가령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2003년 현지의 공중파 방송인 GMA7에서 한국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방영된 드라마가 약 300편에 달한다. 필리핀 국민들은 한국 드라마를 코리아노벨라(Koreanovela)로 부르며 즐겨 신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의 필리핀 인프라(사회기반시설) 건설 참여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임 두테르테정부의 인프라 중시(Build, Build, Buil) 기조를 이어받아 보다 적극적인 인프라 정책(Build, Better, More)을 펼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남북철도사업(North·South Railway) 프로젝트에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에 수주회사로 참여하고 있다.

대만해협 갈등과 필리핀의 미군 중시 외교로 미군 기지가 있었던 필리핀 수빅만이 군산복합산업기지로서 부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미군이 수빅만에서 철수한 지 30년이 흘렀지만, 군함을 이용했을 경우 대만에서 불과 1시간 이내 거리여서 활용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필리핀으로서도 자국 경제 부흥과 미·필리핀 협력 강화 차원에서도 수빅만을 활용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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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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