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인공사료 안먹이는 뉴질랜드 축산농가
닭장에서 키운 닭의 달걀도 '유통금지'
국익 앞세운 정치, 농사처럼 청렴·유연
같은 '천혜의 조건' 아르헨티나 '정반대'

아오테아로아(Aoteaora)

‘크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이 담긴 마오리語입니다. 12세기 무렵 뗏목에 의지해 남태평양을 떠돌던 마오리 민족이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붙였던 이름입니다. 훗날 대항해시대에 아벨 타스만이라는 네덜란드 사람이 이곳을 발견하고 자신의 고향인 Zeeland의 이름을 따서 Nova Zeeland(새로운 제일란트)라고 이름 짓고, 얼마 후 영국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네 식으로 New Zealand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아오테아로아'가 이 섬나라의 이름이었습니다. 한때 공식적인 나라 이름을 이 아오테아로아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의 하늘. 마오리어로 '크고 흰 구름의 땅' 아오테아로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키아 오라!(Kia Ora!)

우리 말의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마오리 인사말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오리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Hello나 Hi 대신 자주 쓰는 인사입니다. '홍이(Hongi)'라는 서로 코를 마주대고 비비는 마오리 전통 환영 인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여러분들도 익숙하실 것입니다. 이런 인사가 끝난 후, 마오리 사람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전통과 출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런 소개법을 페페하(Pepeha)라고 부르는데, 조상과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야기하고, 자기와 관련 있는 혹은 자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장소를 말하면서 소개를 합니다. ‘저에게는 피롱이아(Pirongia)산이 신성한 산입니다’, ‘와이카토(Waikato)강이 신성한 강입니다’, ‘저는 테 아와무투(Te Awamutu) 출신입니다’, ‘제 가족은 이러이러하고, 저는 누구누구와 친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이름은 무엇무엇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가 마무리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2006년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했을 당시 뉴질랜드 관계자와 '홍이' 인사를를 하고 있다.

이런 자기소개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토테미즘(Totemism) 성향이 강한 마오리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깊은 유대관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내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고 투박한 외모와 성향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전투 민족으로도 유명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입니다.

마오리 민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하면서 여기서는 '쿠마라(Kumara)'라고 불리는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고구마는 남미지역이 원산지입니다. 그때가 13세기 무렵이니 아직까지 유럽이나 아시아에 고구마가 전해지지 않았던 시절인데, 어떻게 이렇게 남태평양 한가운데 동떨어져 있는 섬나라에 먼저 고구마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유럽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면서 유럽에서 키우고 있던 각종 작물들과 소, 양 등을 가져다 키우게 됩니다.

연중 온화한 기온과 적절한 강수량을 기반으로 드넓은 초원지대에 농사와 목축을 하면서 1차산업을 중심으로 이 나라의 경제가 꽃을 피우게 됩니다. 뉴질랜드의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이고 양이 2,500만 마리 정도이니, 국민 1인당 5마리 꼴입니다. 소에게 곡물 사료를 먹이는 미국과 호주와는 달리, 뉴질랜드에서 사육되는 소와 양에게는 절대 인공사료를 먹이지 않고 100% 초원에서 방목합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쇠고기는 지방이 적어 다소 질긴 식감이 있고 누린내도 약간 나긴 하지만, 건강한 음식이기에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먹었던 바로 진짜 쇠고기의 맛입니다.

뉴질랜드에서 자란 쿠마라(고구마)를 찐 모습. 뉴질랜드 고구마는 한국에서 자란 것보다 좀 더 크고, 단맛이 강하다.

작년부터 뉴질랜드에서는 닭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달걀에 대한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방목해서 키운 닭이 낳은 것이라 달걀을 요리할 때, 껍질이 너무 두꺼워서 잘 깨지지 않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샛노란 노른자가 잘 터지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고 맛있는 달걀프라이를 보면 기분마저 좋아집니다.

이렇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1차산업 종사자의 비율이 무려 뉴질랜드 인구의 7%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1차산업 종사자가 2%인 것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2차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섰죠. 어쨌든 뉴질랜드는 이런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면서 19~20세기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를 통해 나라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짧은 기간에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그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땀흘린 농부들의 노고가 제일 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청렴하기로 이름난 정치인들과 그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유권자들의 공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93년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된 곳이 바로 뉴질랜드이며, 바로 그다음 해인 1894년에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제를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시행했던 곳 역시 뉴질랜드입니다.

자신의 표밭과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어떤 나라의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뉴질랜드의 보수당인 국민당 정권에서는 국가 경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세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리는 정책을 펼치기도 하고, 반대쪽인 노동당에서는 때에 따라 유연하게 감세와 복지를 축소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당의 노선과는 반대되는 입장의 정책을 취함으로 인해 표를 잃게 되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게 되더라도, 훗날에는 나라를 위해서는 잘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질랜드와 비슷한 시기에 유럽인들이 세운 나라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아르헨티나가 바로 그곳입니다. 이 나라에는 안데스산맥 옆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팜파스(Pampas)라고 불리는 광활한 초원지대가 있습니다. 기후대도 뉴질랜드와 비슷하게 연중 온화하고 적당한 강수량을 가지고 있는 이 풍요로운 땅에서 만들어지는 엄청난 양의 품질 좋은 농업 및 목축업 생산물을 항구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통해 유럽에 수출하면서,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이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는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 즉 순풍(順風)을 뜻한다고 합니다. 1800년~1900년대를 거치며 어느새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고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남미의 파리(Paris)’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도 몇 대 없던 시절인 1913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이미 지하철이 개통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잠시, 정치적인 불안정과 정경유착, 반복되는 포퓰리즘으로 인해 국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2020년에는 나라가 생긴 이래 9번째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2024년 3월 기준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그 1년전에 비해 287.9%나 올랐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선출된 뉴질랜드 노동당의 의원들. 이들을 포함 뉴질랜드의회는 성소수자, 여성 등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구성의 의원들이 선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땅을 소중히 여기고 그곳에서 흘리는 땀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차, 3차 산업을 부흥시키며 나라의 부를 이루었지만, 보다 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요즘의 추세를 볼 때 농업의 중요성은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꼰대 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이 땀흘려 일하는 직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지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전쟁의 잿더미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냈으며, 국가부도 사태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극복해내고 드디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정직하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한 정치인들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먼저 이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잘못된 선택이 잘못된 정치인들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교훈을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돌아보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우리의 소중한 땅이 하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겠죠.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