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 셰프를 알면 더 재밋어지는 '흑백 요리사'
안녕하세요. 1년에 전 세계 230곳 이상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를 다니는 이정윤 에디터입니다.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날카로운 평가로 도전자들을 긴장시키는 모수의 안성재 셰프, 도대체 어떤 요리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함께 심사하는 백종원 대표는 보다 친근한 요리로 대중과 소통하지만, 아무래도 한 끼에 30만원이 넘는 모수의 음식을 여러 번 경험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최고급 미쉐린 3스타 파인다이닝은 따져 보면 ‘비싸지만 정작 마진도 거의 남지 않는다’고 하죠. 알면 알수록 이 일을 왜 하는지 더욱 의아한, 그저 요리를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여겨지는 그의 요리,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안성재 셰프의 요리를 통해 <흑백요리사>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관전포인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심플함의 미학
먼저 인정하고 넘어갑시다. ‘세계 최고의 요리’를 규정짓는 절대적인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심플함’인데요. 심플하다는 것이 그저 적은 수의 재료를 나열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그 속의 깊은 마음에는 자연에 대한 존경이 있죠. 자연과 계절을 담은 좋은 식재료를 선택하고, 맛보는 사람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방법을 정확하게 사용해 요리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 목표입니다.
어떻게 가장 잘 요리할 것인지, 하나의 ‘정공법’을 알기 위해서는 셰프의 오랜 고민과 기술이 집약되어야 합니다. 상대를 죽을 때까지 두드려 패는(?) 방법이 아니라, 무림 고수처럼 우아하게 급소만 탁! 치고 사뿐히 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고수는 결국 하나의 길로 통한다는 것, 바로 그런 의미일 겁니다.
전 세계 요리사들의 전설로 손꼽히는 조엘 로부숑(Joël Robuchon) 같은 전설적인 셰프는 심플함을 정석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를 보유한 셰프 중 한 명이었으며, 복잡한 요리보다는 단순함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죠. 특히 시그니처 요리인 ‘퓨레 드 폼므(Purée de Pomme)’는 얼핏 보면 너무 간단해 보이는 매쉬포테이토예요. 감자, 버터, 우유 세 가지 재료로만 만들어지지만, 그 맛은 놀라울 정도로 깊고 풍부하죠. 재료 각각의 특징과 풍미를 온전히 살리면서도 천국에서 제조해 땅으로 배달 보낸 것처럼 섬세하고 실키한 질감과 여운을 보여주거든요.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분명 수많은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안성재 셰프의 모수
정교하게 계획된 요리
안성재 셰프가 ‘나폴리 맛피아’를 심사할 때 “맛도 안 나는 꽃을 쓸데없이 올렸다”며 좋은 평가를 주저하는 모습, 기억 나시나요? 이 또한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음식이란 혀로 맛보는 일차적인 감각을 넘어, 요리를 받았을 때의 시각적인 즐거움과 기쁨, 은은히 올라오는 음식의 향에서 느껴지는 후각, 그리고 서빙하는 직원들의 따뜻한 미소나 대화 같은 사회적인 맥락까지 모든 것이 합쳐져서 실제 우리 경험을 구성하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안성재 셰프는 확고합니다. “접시 위에 올라간 모든 것, 조리된 모든 방식에는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주의적이며 강렬한 철학은 그의 요리 세계를 이끄는 핵심적인 동기로 작용해 왔습니다.
출처: 넷플릭스
그저 장식을 하기 위해서 꽃잎을 뜯어 올리거나, 요리 가격에 대한 정당성을 주기 위해 트러플이나 캐비아를 올리는 것을 싫어하는 미쉐린 스타 셰프들은 사실 아주 많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셰프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맛과 밸런스에 신경도 쓰지 않고 무작정 캐비아 올리는 것, 자기 요리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심플함과도 연결됩니다. 번쩍거리는 금칠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셰프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수의 요리는 어떻냐구요? 안성재 셰프의 철학은 자신의 요리에도 잘 드러납니다. 그냥 예쁘기 위해서, 혹은 더 멋져 보이기 위해서 놓은 요소들이 없죠. 모수의 요리를 보면 단정하고 절제된 느낌입니다.
모수의 시그니처 요리로 보는
안 셰프의 스타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4를 공개할 당시 3스타를 받은 (현재는 휴업 중인) 모수 안성재 셰프의 시그니처 요리인 전복 타코를 한번 살펴보죠. 부드럽게 숙성된 전복과 직접 만든 유바 타코쉘, 신선한 시소와 씨겨자, 그리고 숯불의 은은한 향은 각각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각각의 요소 하나 하나가 미묘한 밸런스 속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표현합니다. 실수도, 과도함도 용납되지 않죠. 모든 것이 셰프가 계획대로 의도한 바이기 때문이에요. 안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하는데요, 이런 그가 3스타를 받기까지, 늘 모수의 메뉴 한켠을 지켜 온 전복 타코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완벽한 요리는 없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전복 타코, 처음엔 타코가 아니었다
“전복 타코? 사실 처음엔 타코 모양도 아니었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를 처음 열었을 때, 여러 식재료를 시도해 보면서 전복 요리도 고민했죠. 전복을 찌고, 튀기고,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 봤어요. 근데 뭔가 좀 더 특별한 게 필요했어요.” 아이폰도 맨 처음 제품이 있듯, 모수의 전복 타코도 초기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안 셰프는 유바(두유껍질)를 이용해 전복 껍질을 모방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부드럽게 찐 전복을 얹은 후, 감태와 시소 같은 바다 맛을 강조한 요소들을 추가해 왔습니다. 초기 버전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셰프는 전복을 찌고, 굽고, 튀기고, 때로 다른 재료들과 결합하며 수많은 시도와 수정을 거쳤죠.
샌디에고에서 온 타코, 서울에서 전복을 만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타코였을까요? 그 답은 안 셰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미국 샌디에고에서 자랐고, 멕시코 접경 지역에 살았던 그의 추억은 자연스럽게 타코로 이어졌다고 해요. “저한테 타코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향수였어요. 멕시코 길거리에서 먹던 타코는 언제나 제게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죠. 그래서 한국으로 모수를 옮기면서도 타코를 떠올렸어요.”
이쯤 되니 ‘본업도 잘하는 남자(오스틴 강)’이 만든, 멕시칸 양념으로 찐 갈비에 깻잎 페스토와 살사 프레스카를 올린 ‘나의 라라랜드’라는 요리를 떨어뜨린 이유가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안성재 셰프가 전복 타코를 만든 배경과도 같은 맥락에서 요리가 구상되었죠. 요리사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도 그저 직설적인 요소들을 나열하지 않는 것,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시킨 뒤에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기 위해 노력해 온 그의 개인적인 시간들이 겹쳐서 오히려 더 후하지 못한 평가를 준 것은 아닐까요?
전복 타코는 한국계라는 정체성,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의 삶, 일식 레스토랑에서의 배움 같은 것을 모두 담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전복 타코를 직접 먹어 본 소감은요? 전복 향과 유바의 부드럽고 파스라운 질감, 뒤로 이어지는 시소의 향미와 톡톡 터지는 씨겨자가 조화롭게 ‘나는 새롭게 탄생한 아이야’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군침 도는 멕시칸 타코집도, 고급 스시야의 전복찜도, 그렇다고 한식도 아닌 – 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적인 섬세한 맛과 풍미를 보여줍니다. 다른 레스토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게끔 하는 것, 그것이 위대한 셰프가 지향하고자 하는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전복 타코의 완성은 없다
안성재 셰프는 자신의 요리에 완성형은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은, 그의 요리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요리가 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전복 타코도 완성된 게 아니에요. 저는 요리에 대해 늘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무엇이든 발전할 수 있어요.” 맛과 식감, 복합적인 조화를 개선하기 위해 안성재 셰프는 오늘도 새로운 방식으로 유바의 두께를 조정하고 전복을 익히는 시간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손님이 편안하게 즐겨야 좋은 요리라고 말합니다. 셰프가 아무리 많은 디테일을 집어넣고, 말하고 표현하려고 해도 결국 손님들이 맛있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어야 좋은 요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정교한 요리법이 숨어 있어도, 자의식 과잉으로 손님들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 요리는 결코 편안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아닙니다
무대 밖에서는
결국 우리 모두가 심사위원
요리 심사위원이 되는 것은 단순히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업입니다. 안 셰프에게도, 뛰어난 요리사들이 대거 나오는 이번 자리의 심사위원이 무조건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은 아니었을 겁니다. 한 접시의 맛과 향을 분석하는 일은 마치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것과 같죠. 언제든 누구든 반론할 수 있는 구석이 있을테니까요.
훌륭한 심사는 요리의 각 요소—재료의 신선함, 조리 기술, 창의성 등—을 정확히 이해하면서도 요리의 맛과 가치를 진지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어쩌면 ‘세상 최고의 맛’은 존재하지 않은 허구이기에 노력과 열정을 쏟아낸 참가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완벽히 공정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더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죠. 흑백요리사는 백종원과 안성재를 짝수로 두고 때로 1:1 논쟁을 연출하며 음식을 보는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제안합니다.
만약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출전했다면, 무조건 이 경연에서 1등을 했을까요? 그 대답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뛰어난 셰프의 관점도 흥미로운 기준점 삼아, 우리 또한 오감으로 참가자들의 요리를 상상하고 맛보며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넷플릭스 화면이 꺼지면, 우리도 나름의 기준과 철학이 있는 한 명 한 명의 심사위원이 됩니다. 여러분의 저녁 테이블을 미식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심사위원의 무대로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