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58분 만에 21명 전원 구출" 아덴만 여명작전, UDT 무전의 마지막 한 마디

2011년 1월 21일 새벽, 인도양 한복판에서 다섯 시간 만에 인질 21명 전원이 살아나왔습니다. 그 작전,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청해부대 아덴만 여명작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를, 국방부 자료와 위키 기록을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차 작전 실패 — 장병 3명 부상하고 후퇴

2011년 1월 18일 1차 구출작전에서 청해부대는 해상작전헬기(Lynx)와 고속단정으로 접근했지만, 백기를 든 척 기습 사격한 해적 때문에 우리 장병 3명이 다쳤습니다. 작전은 일단 중단됐습니다.

1월 21일 새벽, 5시간 만에 4번의 총격전 — 작전 종결

3일 뒤인 2011년 1월 21일 새벽, 청해부대 UDT/SEAL이 다시 진입했습니다. 4번의 총격전 끝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해적 중 2명이 사살되고 2명이 항복하면서 총 5시간에 걸친 작전이 끝났습니다.

인질 21명 전원 무사 구출 — 한국·미얀마·인도네시아 21명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한국인 8명,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전원이 무사 구출됐습니다. 해적은 8명 사살·5명 생포로 작전이 종료됐습니다. 한국 해군 사상 첫 해외 인질 구출 성공입니다.

석해균 선장, 7.62mm 총탄 5발 맞고도 살아 돌아왔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복부와 무릎에 AK 소총 7.62mm 탄 5발을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미 해군 SH-60 헬기로 오만 병원으로 후송된 뒤, 약 9개월간 치료와 재활을 거쳐 2011년 11월 4일 퇴원했습니다.

작전 직후 무전 — "인질 전원 안전, 작전 종료"

구출이 끝난 직후 청해부대가 본부에 보낸 무전 마지막 한 마디는 "인질 전원 안전, 작전 종료"였습니다. 한국 특수전이 해외 인질 구출에서 처음 남긴 공식 문장이 됐습니다.

이 작전이 남긴 진짜 의미는요?

아덴만 여명작전은 한국 해군이 '근해 방어'에서 '원해 작전'으로 영역을 넓힌 첫 실전 사례입니다. 5시간이라는 시간보다 더 큰 변화는, 한국 군이 해외 어디서든 자국민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인질 전원 안전" 그 한 줄이, 이후 청해부대의 모든 임무 기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