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블랙이글스 8호기 정비기장 장명국 중사
무대 위 배우의 모습은 화려하다. 현란한 연기에 매혹돼서일까? 관객들은 종종 잊곤 한다. 감동적인 공연을 위해 배우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무대 아래서 묵묵히 땀 흘리고 있음을.
2017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7)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펼치는 블랙이글스 조종사가 ‘배우’라면 공군53특수비행전대 정비대대 장명국(36·공군 부사관 192기) 중사는 무대 아래 ‘스태프’다. 아이들은 조종사들에게 사인을 청하지만, 옆에 선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2015년부터 3년째 블랙이글스 8호기의 정비기장으로서 8호기 정비를 전담하는 경력 13년 차의 장 중사가 없다면 블랙이글스의 완벽한 비행도 없다는 것을. ‘병풍’처럼 조종사를 빛나게 하는 역할이 불만스럽진 않을까? 슬쩍 던진 질문에 그는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이글스는 공군을 대표해 우리 공군의 우수성을 알리는 존재입니다. 완벽한 정비로 블랙이글스의 안전한 임무 완수를 책임지는 제 역할에 충실하면 된 거죠."
무엇보다 그가 다른 이들의 환호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팬클럽’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7살, 5살의 예쁜 딸로 이뤄진 가족 얘기다.
"부대 근처에 살다 보니 딸들이 블랙이글스를 자주 봅니다. 그때마다 ‘어! 아빠 비행기다’라며 좋아해요. 딸들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지난 17일 ADEX 2017 개막식 때는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오셨습니다. 조종사뿐만 아니라 기장들과도 악수해 주셨죠. 가문의 영광입니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사랑하는 가족이 인정해 주는데 뭐가 부족하겠냐는 표정인 장 중사. 그는 블랙이글스 합류가 진정한 공군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현재 부대로 와서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정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이젠 정비는 기본이고 외적으로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비록 엑스트라 같지만 늘 관람객 앞에 서니까요."
해외에서 에어쇼를 할 때 조종사들과 함께 출국해 외국 관람객과 만날 기회가 많은 것도 이런 생각을 키워줬다.
"블랙이글스의 비행을 보면 다들 놀라워하십니다. 우리 조종사들의 기량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든요. 관람객이 바로 앞에서 포메이션(비행 대형)을 바꾸는데 그걸 높이 평가하더군요. 다른 나라의 경우 멀리서 포메이션을 바꿔 행사장으로 비행해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 쇼가 워낙 역동적이다 보니 일부 국가의 에어쇼는 제가 봐도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죠."
올해에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에어쇼에 참가할 정도로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돌발 상황도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할 때였습니다. 블랙이글스 항공기를 먼저 보내고 뒷정리를 한 후 수송기를 타고 막 출발하려는데 대만까지 갔던 항공기 한 대가 기체 결함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다들 열대 지방으로 가는 거라 여름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긴급하게 정비를 하느라 무지하게 떨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정비하고 숙소에 돌아왔더니 자정이더군요. 그래도 고생한 덕분에 무사히 항공기를 출발시켰죠."
비행 전후로 진행된 인터뷰 중에도 쉼 없이 8호기를 살피고 닦던 그는 직업인으로서의 ‘신념’을 강조했다.
"조종사든, 정비사든 모든 직업에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없다면 돈벌이밖에 더 되겠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정비로 방향을 정했지만, 기술을 익히기 전에 ‘내가 정말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정비사가 되고 싶은가’를 끊임없이 저 자신에게 물으며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확인하고 다졌습니다. 더위, 추위와 싸우며 실외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지만, ‘나는 비행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다. 조종사가 임무를 완수하게 하도록 일한다’는 신념이 있기에 참 행복합니다. 비행을 마친 조종사가 ‘오늘 비행기 좋네요’라고 말하면 정말 뿌듯하죠."
항공기 정비사를 꿈꾸는 이들이라며 새겨들어도 좋을 신념을 밝힌 장 중사는 앞으로도 관람객의 관심과 환호와는 관계없이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가장 첫째는 안전이지요. 안전한 비행을 위해 끊임없이 예방정비를 하고 퇴근 후나 주말은 물론 업무 시간에도 틈날 때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며 전문 지식을 쌓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인 공군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글·사진=김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