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역사 오도 '일본 상징' 바로 알자
일본은 서양 문장에 버금가는 ‘가몬(家紋)’이란 상징체계를 독자 발전시켜온 반면 우리에게 문장은 생소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상징 연구자의 입장에서 일본 압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일본 상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몇 가지 사례(잘 알려진 욱일 문양은 생략)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나라상징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절판된 신발
지난해 유명 글로벌 스포츠 업체의 운동화가 출시되자마자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웃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욱일’(旭日) 디자인을 사용해 공분을 샀다는 것. 신발만 따져도 스니커즈에서 자살특공대 이름을 붙인 브랜드까지 꽤 많은 아이템이 있었다. 개인 취향이긴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면서도 구매했을지는 의문이다.
축구 엠블럼
나라상징의 노골적인 경쟁을 볼 수 있는 영역은 단연 스포츠다. 지배-피지배의 민족감정이 실린 축구 한·일전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엠블럼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세 발 달린 까마귀’다. 1980년대 들어 일장기를 팔소매로 옮기고 그 자리에 삼족오를 달았다. ‘삼족오(三足烏)’는 우리의 전통 문양이 아니던가? 고구려 고분벽화나 금관 등에 등장하는 붉은 태양과 그 속의 삼족오는 태양처럼 밝고 순수한 하늘 백성의 정신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백제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우리 주장에 반해, 일본에선 ‘고대 신무천왕이 길을 잃었을 때, 꿈속에서 삼족오(야타가라스)가 그 길을 안내한 일본 고유의 신조(神鳥)’라는 입장이다.
사실 중국에도 그 흔적이 있어 고대 동아시아에서 두루 사용한 태양의 상징이라는 주장이 보편적이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 문양과 동일한 모양과 생김새를 하고 있지 않음을 잘 알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지역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의 공식 엠블럼으로 사용해 좀 위안은 된다.
침략의 상징
국장(國章)은 나라상징임에도 국기나 국화에 비해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국화(國花)인 ‘국화(菊花)’를 국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왕실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어 천왕보다는 총리가 정부를 대변하는데, 그 문장이 심상치 않다. 아래를 향해 세 갈래로 뻗은 오동잎 위에 꽃 세 송이가 나란히 솟아 있다. 가운데 꽃에는 7장의 꽃잎이 달렸으며 나머지 양옆의 꽃에는 각각 5장의 꽃잎이 달려 있다 하여 이른바 ‘오칠동문(五七桐紋)’이라 한다.
처음 접하겠지만, 사실 우리와는 500년 이상의 인연이 있는 특별한 문장이다. 물론 악연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깝게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우리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조선총독부가 이 문장을 사용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했던 문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 일본 총리는 과거 침략의 상징을 그대로 쓰는 셈이다.
일본 내각총리실 문장
만약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면 어떨까? 양국 정상은 저 오동나무 문장이 새겨진 단상에 설 것이고, 그 상징 위에서 우리 대통령이 연설하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불행하게도 불과 몇 년 전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하는 군기
최근 한미 정상회담 후,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어보(御寶)’ 두 점이 65년 만에 돌아와 화제였다. 군에도 이역만리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군 상징물이 있다.
나폴레옹 석관을 보관해 유명한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는 생루이 교회가 있는데 좌우 천장엔 60여 개의 깃발이 장식돼 있다. 이 가운데 파란 삼각 천에 하얀 글씨로 ‘친병제5대 우영(親兵第五隊 右營)’이 새겨진 군기가 있다. 우영은 지금의 인천지역을 방어하던 부대인데, 이 깃발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파견된 우영의 말단 부대로부터 노획한 것이다.
우승하고도 가장 슬펐던 영웅
패자는 국보에서 깃발까지 모든 것을 내줘야 한다. 이기고도 슬펐던 우리의 영웅이 있다. 1936년 손기정 선수와 그를 취재한 레니 리펜슈타인 감독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반추하게 한다. 손기정은 우승의 기쁨보다 설움이 복받쳐 몇 번이나 울어야 했고, 감독은 “왜 그토록 영광스러운 순간에 가장 슬퍼보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은 표정으로 시상대에 오르고, 울려 퍼지는 기미가요 사이에 아리랑을 목이 터져라 불렀으며,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었던 일들은 일제로부터 나라상징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장면
작은 디자인·깃발이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무게는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일단 결정되면 돌이키기 어렵다. 알아야 구분할 수 있고 빼앗긴 것도 되찾을 수 있다.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일본은 돌아간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윤동일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