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 ○○으로 월수 4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크리에이터
양국 간 편견 바로잡기 위해 뛰어든 개인방송
회당 조회수 평균 300만, 연간 억대 수입 올려
지난 3월 중국 창사(長沙)의 허룽 스타디움. 한국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8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앞 둔 시각.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든 한 20대 여성이 경기장 입구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예상 경기 점수와 승패 예측, 좋아하는 선수 등을 물었다. 중국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여성은 한국인 유지원(25)씨.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1인 방송제작자'(크리에이터)다. 방송에서는 '한국뚱뚱'(韓國東東,韩国东东)이라는 이름을 쓴다.
유씨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왕홍'이라 불린다. 왕홍(网红)은 중국 SNS 스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의 인기 BJ(방송진행자)와 비슷한 뜻으로 보면 된다.
중국 5대 소셜미디어 '빌리빌리·미아오파이·유우쿠·웨이보·위챗'에서 유씨의 방송을 구독하는 중국인은 약 50만명. 방송이 나갈 때, 평균 시청자 수는 300만명에 달한다. 첫 방송을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5대 소셜미디어에 567개(중복 포함)의 영상을 올렸다. 유씨는 올해 8월 중국 관영 영자신문사 '차이나데일리'가 선정한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명단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유씨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 중국에서 열린 양국 간 축구 경기 때, 경기장 반응을 전하는 방송을 실시간으로 했다. 한국 제품 불매 운동과 한류 스타에 대한 제재 조치가 취해지는 상황에서도 당시 유씨가 진행한 방송의 시청자 수는 500만명이나 됐다.
"저도 방송 들어가기 전에는 겁을 많이 먹었는데, 막상 방송을 시작하니 중국인 모두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해줬어요. 시청자 수도 평소보다 많았고요. 최근 진행한 방송 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뚱뚱은 무슨 뜻인가, 어떤 방송들을 주로 하나
"뚱뚱은 중국인들이 귀엽게 별명처럼 부르는 말이죠. 일종의 중국 '의성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아이들을 귀엽게 부를 때도 이 '뚱뚱'이라는 말을 쓰죠. 최근엔 팬분들이 '똥똥(東東)'이라고도 해주세요. 저를 옆집 동생처럼, 언니처럼 친근하게 받아주시거든요. 중국과 한국의 드라마나 인기가수 등을 소개하고, 패션과 화장품 등 다양한 컨텐츠를 주제로 방송합니다. 중국인에게도 생소한 현지중국전통 요리를 맛보고, 중국 시내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기도 합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주로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들이 방송을 시청합니다. 한국인인 제가 적극적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세요."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1년 열 살 때 아버지 사업차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 가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돌아왔으니 5년동안 지냈어요. 나이가 어려서 중국에 대한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생김새가 비슷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언어도, 생활도 모두 제겐 자연스러웠죠. 중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어요. 중국에서 살았다 하면 친구들 반응이 보통 부정적이었거든요. ‘위험하지 않냐’, ‘살기 불편하진 않냐’ 등의 질문을 받았어요. 한국과 중국 모두 제게는 똑같이 소중한 추억들이 있는 곳입니다. 양국간 오해를 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것도 한·중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해서였나
“네. 한국외대 중국어과(11학번)를 졸업했어요. 신문방송학도 같이 전공했죠. 학교 다닐 때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는 스타일이었어요. 한국에 관광 온 중국인들을 가이드하는 동아리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거든요. 서울 맛집 곳곳에 데려가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줬죠. 지금 제가 하는 방송도 그 때 동아리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언제부터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을 했나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서 방송을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죠. 끼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중국 친구들이 보내준 영상 링크를 통해 중국 ‘1인 방송’을 자주 접했어요. 중국은 재미있는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가 발달해있거든요.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는 ‘1인 방송’이 생소한 개념이었어요. 반면 중국은 일찌감치 1인 방송이 유행했습니다. 한국에선 전문 인력이 필요하거나 공식 채널을 통해야 하는 등 방송 제작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반면 중국 1인 방송은 쉽고 빠르게 방송이 만들어졌죠. 중국은 어떤 분야든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나요. 중간 단계를 건너뛸 때가 많아요. 영상 컨텐츠 소비 방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텔레비전에서 PC, 모바일 순대로 사용패턴이 변해가는데,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모바일에 친숙해졌거든요. 이런 과정을 보며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왜 관련 분야 취업이 아닌 사업을 하고 싶었나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규칙이나 틀에 얽매인 것 없이 두 나라의 문화를 자유롭게 경험하며 자랐거든요. 부모님도 취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끝에 얻은 답이 사업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던 건 아니었고, 처음에는 막연했죠. 졸업이 다가오자 친구들은 모두 취업준비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캠프에 등록했어요. 사업에 대한 아이템을 개발해보고 조언을 듣고자 했죠. 그 캠프에서 지금 함께 일하는 김정민 대표님을 멘토로 만나게 됐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 출신인 대표님은 당시 글로벌 기업들의 자문가로 활동하며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도 높은 분이셨어요.
모바일 중심으로 유통되는 1인 방송이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중요 컨텐츠가 될거라고 말씀해주셨죠. 캠프를 떠나서도 대표님과 자주 연락하며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차라리 네가 직접 방송을 해서 너를 브랜드로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중국의 경우, 저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를 쌓으면 제 가치를 내건 사업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도전을 해보기로 한거죠. 저와 함께 일하면서 김 대표님도 중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전문 소속사도 차리게 됐죠.”
-어떻게 준비했나.
“6개월간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국내 모바일 영상 서비스 업체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방송 컨텐츠는 무엇인지, 중국 시청자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석했습니다. 2016년 9월, 빌리빌리(哔哩哔哩·중국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첫 방송을 했어요. 중국 10~20대에게 인기가 많은 사이트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 패션, 화장품과 관련 방송 컨텐츠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죠.
첫 방송은 중국 인기 아이돌그룹 ‘티에프보이즈(TFBOYS)' 뮤직비디오를 보며 친구와 수다떨듯 감상평을 하는 내용이었어요. 한국어로 진행했죠. 첫 방송인 만큼 한국인이라는 제 정체성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중국어 자막을 넣었습니다. 올리고 다음날 확인해보니 조회수가 300이었어요.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높은 인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달 후엔 방송 조회수가 1만명 정도로 늘었고, 4개월 후에는 평균 3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왜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하나
“중국인이 K-POP을 보는 경우는 많은데, 한국인이 중국가수에 대해 평을 나누는 것이 신선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한국 사람임에도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 가수들의 과장된 표정과 격렬한 춤 동작을 한국인들은 어색해하죠. 일종의 ’중국스러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게 자연스러웠어요. 어려서부터 봤던 모습이니까요. 제가 방송에서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중국 시청자들은 ‘한국 사람이 중국 문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네? 잘 알고 있네?’ 라고 생각한거죠.
방송에서 화장도 거의 안했어요. 옷도 평소 입는대로 입었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소통했어요. 큰 욕심 없이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원칙 때문이었죠. 방송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어로 진행하다가 한국어를 사용해도, 그 뜻이 뭐냐며 물어보는 시청자도 많거든요. 방송에 한국어 자막을 다는데, 그 자막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야 이목을 끄는 것 아닌가
“제가 창작하고 싶은 컨텐츠는 자극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시청자에게 친근하고 다가가는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유행하는 인형뽑기 방에서 방송을 하거나 한강에서 치맥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죠. 훌륭한 실력은 아니지만 메이크업을 할 때도 있어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혼밥, 혼술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재밌게 놀고 수다떠는 제 모습을 보며 편안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라고 해주세요.”
-하루 스케줄은 보통 어떤지
“주로 편집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요. 저는 방송 녹화 시간이 40분에서 한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거든요. 기획이나 내용은 현장에서 바로 하는 편입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 내용을 메시지를 받아서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 화장품 신상 소개나 요즘 한국에서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달라는 문의가 많아요. 관련된 주제를 진행하기 위해 미리 상품을 준비해놓고 장소를 봐두죠. 1인 방송은 촬영부터 기획, 진행까지 모두 크리에이터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책임지기 때문에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중국 크리에이터가 돈을 버는 방식과 월 평균 수입은
“제 방송에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의 제안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방송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노출하는 간접광고(PPL)와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가 수입의 주된 원천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크리에이터를 광고 플랫폼으로 간주합니다. 중국인들은 인터넷 쇼핑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은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소개하고 보증한다면 제품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생깁니다. 이는 곧 제품 구매로 이어지죠.
초반에는 기업과 일회성으로 계약을 맺다가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으로 매출 상승이 입증되면 나중에는 6개월, 1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맺습니다. 저는 현재 직접 소개(브랜디드 광고)를 할 경우, 방송 1회당 1000만원 정도의 계약료를 받습니다. PPL은 건당 500만원 정도를 받습니다. 모델료, 기업체외의 공동 기획 등을 합하면 월 평균 4000만원 정도 수익을 냅니다.”
-앞으로의 계획
“당분간은 방송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크리에이터는 연예인과 달리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하는 문화 교류의 장이라면 어디든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제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 사업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입은 옷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많거든요. 중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한국 크리에이터분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중국 문화를 사랑하고 중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환영입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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