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의 두부는 어쩌다 '딜레마'가 되었나 [Vault@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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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로 웃은 풀무원이 두부 때문에 울게 됐다. 두부 수요가 넘치면서 국내외 곳곳에 공장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빚이 불었다. 갚자니 가진 돈이 충분하지 않고, 안 갚자니 이자 비용이 부담이다.

투자 확대로 줄어든 실적이 근래들어 좋아지나 싶었지만 지난해 다시 고꾸라졌다. 두부 원가가 오르고 있는데다, 두부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수익이 극적으로 늘긴 어려워서다.

재무 불안을 안정으로…신종자본증권의 마약같은 ‘착시현상’

올해 풀무원의 회계 장부는 불편한 변화를 맞는다. 원래 풀무원이 가지고 있던 돈인 것 처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던 자금 1830억원 중 1130억원이 올해 만기 도래한다. 엄연히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있고, 이자가 붙는 데도 빚이 아니다. 만기 30년짜리 영구채로 불리지만 사실상 3년 짜리 회사채나 다름없다. 부채의 성격을 가졌지만 자본의 옷을 입은 ‘신종자본증권’이다.

많은 기업들은 재무 지표 악화를 피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주로 신용등급 하락이나 자본 잠식을 막기 위해서다. 회사채 형식으로 돈을 빌리면 부채가 늘지만,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 부채가 늘지 않는다. 오히려 재무 상태가 좋아 보인다.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 모두 개선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모두 신용평가의 주요 지표다.

부채비율이란 총 재산 중에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차입금의존도는 총자본 중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차입금은 이자를 내는 부채다. 차입금의존도가 올라 간다는 것은 이자 비용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이들 지표는 낮을 수록 좋다.

통상 부채비율은 200%, 차입금의존도는 30% 이하일 경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별도 기준 풀무원의 부채비율은 32%, 차입금의존도는 17.3%로 양호한 수준이다. 다만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으로 분류된다는 전제에서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당시 풀무원은 BBB+ 등급을 받았다. 기업은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투자 적격 기업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종자본증권을 부채로 분류하면 어떨까? 지난해 말 기준 풀무원이 보유한 신종자본증권 1830억원이 자본에서 빠져나와 부채로 들어간다. 이를 바탕으로 주요 지표들이 모두 바뀌는 데 여기서 반전이 등장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올라온 풀무원 사업보고서, 한국기업평가 참고

별도 기준 풀무원의 부채비율은 3배 이상 늘어난 108%, 한국기업평가 기준으로 차입금의존도는 무려 13배 불어난 222.5%로 치솟는다. 풀무원의 재무 상태가 원래 불안정했다는 얘기다. 신종자본증권이 가져온 착시 현상이다.

나이스신용평가 자료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BBB등급의 경우 부채비율의 적정선을 150%~230%로 본다. 차입금의존도는 30~45%다. 풀무원이 1830억원을 부채로 둔다면 차입금의존도는 등급 기준보다 177.5%p 초과한다. 평가기준표에 따르면 풀무원은 B등급 이하에 해당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채 발행이 어려울 수 있다.

상환 충분치 않은 현금…만기 연장하면 이자 부담 ↑

풀무원이 신종자본증권을 모두 갚을 수 있다면 괜찮지만 곳간 사정이 넉넉치 않다. 지난해 말 별도 기준 풀무원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고작 46억원에 불과하다. 단기투자자산을 더한다 해도 800억원 가량이다. 잉여현금흐름(FCF)은 135억원이다. 잉여현금흐름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에서 영업비용이나 투자금을 뺀, 순수하게 기업이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즉 풀무원이 가진 돈을 다 끌어 와도 신종자본증권을 못 갚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만기를 늘리자니 이자 비용이 만만찮다. 풀무원이 보유한 신종자본증권은 총 다섯 종류다. 우선 2019년에 발행한 700억원 규모의 공모 전환사채는 오는 2024년에 중도상환할 수 있다. 최초 이자율은 4.8%다.

2020년에는 총 네 차례에 걸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올해 갚을 수 있는 날짜는 ▲390억원 8월 30일 ▲500억원 10월 29일 ▲40억원 11월 30일 ▲200억원 12월 17일이다. 최초 이자율은 4.9%다.

풀무원이 올해 갚지 않으면 대략 55억원의 이자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별도 기준 풀무원의 당기순이익은 82억원이다. 연결기준으로는 순손실 370억원으로 부담이 될만한 규모다. 풀무원은 차입금 이자율이 1% 오르면 당기 법인세비용차감전순손익이 약 6억원 정도 줄어드는 재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텝업(step-up) 금리는 2.5%다. 스텝업 금리는 최초 중도 상환이 가능한 날 부터 3년이 지날 때마다 가산되는 금리다. 채무 상환을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국고채 금리나 개별민평 수익률, 가산금리가 또 붙는다.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2020년 8월 31일 개별민평 금리를 기준으로, 풀무원이 2026년에도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하지 않으면 이자 비용은 55억원에서 89억원으로 불어난다. 2019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까지 더하면 이자 비용은 148억원이다. 평균 금리는 7.7% 정도다.

이 상태에서 신종자본증권을 갚기위해 회사채를 발행한다면 한국신용평가 기준 1년 만기 6.39%, 3년 만기 7.99%의 금리가 적용된다. 풀무원 입장에서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두부 수요 폭증에 공장 증설...'두부의 역설'

풀무원은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걸까? 바로 폭증하는 두부의 수요, 즉 ‘두부의 역설’ 때문이다.

풀무원의 매출 대부분은 두부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기준 두부와 콩나물 등의 판매 매출은 전체의 8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풀무원이 두부 공장을 늘리기 시작한 건 2017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이때 미국의 두부 수요가 폭증했다. 미국 시장에서 풀무원은 연평균 9.8%의 성장률을 보였다. 중국도 상황은 비슷했다. 두부 공장을 모두 가동해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풀무원은 두부 공장을 더 짓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설비투자(CAPEX) 자금이 투입됐다. 풀무원은 여기 저기서 자금을 끌어 모았다.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지금의 이효율 대표이사(67)와 김종헌 재무관리실장(57)이다.

당시 재무 지표를 보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2020년 말 기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지 않고 회사채 등으로 부채를 늘렸다면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악화됐을 것이 뻔하다.

당시 나이스신용평가는 “영구채의 신규, 차환 발행시 금리 상승으로 인해 조달 비용이 종전 대비 증가할 것이고, 만약 차환 환경 악화로 영구채 차환이 어려워지는 경우 자본의 차입 대체로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등 재무 지표가 저하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우려했다.

수익 '뒷걸음'...이효율 대표·김종헌 실장 책임 막중

대규모 투자에도 수익이 늘지 않아 재무 지표는 개선되지 않았다. 해외 공장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두부의 품질이 떨어졌다. 또 판로 개척에 따른 판매비, 유통망 증가에 따른 물류비 등 고정비가 크게 늘었다.

높은 매출 원가도 한 몫했다. 두부의 주 원료인 국산 백태 가격이 계속 오른데다, 수익성이 낮은 품목의 매출 비중이 늘면서 현금이 말라 갔다. 이 가운데 동종 업계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케팅 비용도 늘었다. 2018년과 2019년, 미국 지점은 각각 266억원과 19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각각 23억원과 7억원의 적자가 났다.

한국기업평가 참고

이는 풀무원(별도)과 풀무원의 자회사를 포함(연결)한 실적을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연결실적에는 해외 실적도 포함된다. 별도 기준으로 영업이익률은 꾸준히 두 자리를 기록하고 있지만 연결 기준으로는 대부분 1%에서 3%부근에서 머물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참고

손실 규모도 크다. 지난해 연결기준(잠정) 풀무원의 매출은 2조2258억원으로 전년대비 9.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87억원으로 57.8% 줄었다 이에 따라 당기순손실은 221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실적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얘기다.

한국기업평가 참고

잉여현금흐름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간 연결 기준 풀무원의 잉여현금흐름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016년 이후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로 계열 전반적으로 현금흐름이 둔화되고 있다”며 “중단기적으로도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사업 기반 강화를 위한 투자가 이어질 계획으로 당분간 잉여현금 창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올해 풀무원의 선택지는 이효율 대표와 김종헌 실장에 달렸다.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이효율 대표는 1983년 10월 사원 1호로 입사한 풀무원 최장기 근속자다. 2018년 1월 1일부터 대표를 맡아 풀무원의 재무 안정성에 대한 책임이 크다.

김종헌 실장은 2018년 4월에 입사하면서 풀무원의 살림을 총괄했다. 경북대 회계학과를 졸업해 희성소재 CFO와 LG유플러스 금융팀장을 지냈다. 풀무원의 곳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인 만큼, 올해 위기 돌파를 위한 고심이 깊을 것으로 추측된다.

풀무원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은 영구채로 분류돼 상환 의무가 없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올해 신종자본증권 상환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한 바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