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건설이 갚아야 할 1000억원어치의 영구채가 완전 자본잠식을 판가름할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상 빚임에도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특수 회사채인 특성 덕에 위기를 면하고 있지만, 당장 올해부터 내년 사이에 잇따라 조기상환권(콜옵션) 기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구채를 대신할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은 채 콜옵션을 행사했다간 완전 자본잠식 위기에 놓일 수 있고, 그렇다고 이를 상환하지 않고 계속 이자만 낸다면 조만간 두 자릿수 대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탓에 이수건설의 딜레마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수건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00억원이다. 발행 시기별로 보면 △2023년 9월 300억원 △2024년 9월 200억원 △같은 해 11월 500억원 등이다. 이 영구채들은 모두 표면 만기 30년, 금리는 연 8.5% 조건으로 설정됐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아예 없거나 수십년 이상으로 길어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상품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통상 영구채로 불린다. 이런 구조 덕에 영구채는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발행사는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수건설은 이런 영구채를 통한 자본 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해 말 자본 항목으로 잡힌 신종자본증권은 971억원이다. 같은 시점 894억원에 이르는 결손금을 신종자본증권이 가려주고 있는 셈이다. 결손금은 기업의 영업 활동에서 발생한 누적 손실이다. 이익잉여금을 쌓아 자본을 늘리기는커녕 적자가 자본을 갉아먹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영구채의 콜옵션 시점이 길어야 내년 이내로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이수건설이 2023년 9월과 지난해 9월에 내놨던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은 발행일로부터 1년6개월이다. 지난해 말 발행한 채권의 콜옵션은 1년으로 더 짧다.
그런데 영구채는 형식상 만기가 한참 남았더라도, 관례상 원금을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정해둔 콜옵션 시기에 발행사가 이를 행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회사채 콜옵션 첫 행사일을 투자금 회수의 날로 인식한다. 이따금 불거지는 대기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가 채권 시장의 유동성 불안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실제로 이수건설 역시 첫 콜옵션에 영구채를 갚은 경험이 있다. 이수건설은 현재 남아 있는 영구채들에 앞서 2023년 5월에 최초로 신종자본증권을 찍은 바 있는데, 지난해 11월에 이를 상환했다. 마찬가지로 1년6개월 기한으로 설정됐던 콜옵션 첫 행사일에 맞춘 조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해가 바뀌고 나서부터는 영구채 콜옵션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조기상환이 이뤄진 첫 번째 사례에 이어 두 번째 신종자본증권이 올해 3월로 콜옵션 행사 시점을 맞았지만, 이는 아직 갚지 못하고 이자만 내고 있다.
문제는 이수건설이 콜옵션 여력을 보유하고 있느냐와 별개로, 만에 하나 영구채의 자리를 대신할 규모의 자본 확충을 진행하지 않은 채 신종자본증권만 빠져나가게 되면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수건설의 지난해 말 자본총계는 422억원으로 자본금인 827억원을 한참 밑도는 부분 자본잠식 상태다. 이 상태 그대로 1000억원에 가까운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에서 사라지면 자본총계가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완전 자본잠식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 5월 유상증자를 통해 모회사인 이수화학으로부터 400억원의 현금을 수혈받았지만, 이를 더해 봐도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콜옵션을 미루고 일단 이자만 내며 버티자니 그것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가 오르는 이른바 스텝업 조항 때문이다. 발행일로부터 5년이 지나도록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이후 1년마다 금리가 3.0%p씩 오르는 식이다. 2023년 9월과 이듬해 9월에 발행된 신종자본증권이 이 같은 케이스다.
고비는 내년 초다. 이수건설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놓은 500억원 규모의 영구채는 첫 콜옵션 예정일이 올해 11월 말로 짧은 편이고, 발행일 기준 1년6개월만 지나면 스텝업 조항이 발동된다. 연내 조기상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상반기 중 금리 부담이 11.5%로 껑충 뛰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신종자본증권에 내야 하는 이자만 연 58억원에 가깝다.
IB 업계 관계자는 "영구채는 콜옵션 행사일이 사실상 상환 만기일로 인식이 된다"며 "그럼에도 이수건설의 콜옵션 행사 지연은 이수건설에 대한 재무 건전성에 대해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수건설이 수익 개선 없이 현 상황이 유지가 된다면 재무구조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황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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